“제 작품 야한지 야하지 않은지 제대로 읽어보고나 욕하세요”
“힘든 일을 여러번 치른 탓에 이제는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요즘 시중에 나가보면 내 것보다 야한 작품들이 많이 나와 있는 데도, 오로지 내 작품만 보면 불령한 눈초리로 자꾸 검열을 하려고 들어요.”마광수 시인·소설가
곧 출간될 ‘귀족’은 변변찮은 대학에 다니지만 준수한 외모의 남자 대학생과 30대 여성의 섹스 이야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웨이터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결국 호스트바로 흘러들어 몸을 파는 3류대 남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나나 그녀나 모두 몸을 파는 똑같은 신세인 데도, 그녀는 부자에게 몸을 팔아 돈을 많이 받으니 ‘귀족’이고 나는 몸 파는 여자에게 또 몸을 파는 처지이니 ‘천골’로 여기는 것이지요.”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요즘 대학생들의 삶의 정황을 살폈다는 마 교수는 “‘귀족’의 원고가 이미 출판사에 넘어가 있다.”고 귀띔한다.
마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숱한 곡경(曲境)을 치러야 했다.1989년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펴내 강의권이 박탈됐고 19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가 출간되자 외설이라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재임용 탈락 위기와 이에 따른 정서불안증, 제자의 시 표절로 인한 폐강….
이런 파란곡절을 겪다 보니 그의 가슴 속에는 불만의 응어리가 칭칭 똬리를 틀고 있다.“‘즐거운 사라’가 나올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소득은 높아졌지만 문화의 민주화는 한참 멀었습니다. 내가 책을 펴내려면 자기 검열, 출판사 검열, 서점 검열, 간행물윤리위원회 검열, 검찰 검열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게 무슨 민주화가 된 나라입니까.” 마 교수는 여전히 의기소침해 있다.“내 책에는 이미 ‘주홍글씨’가 박혀 있어요. 출판사는 출판하기를 꺼리고, 설사 출판사를 찾더라도 검열을 거쳐야 하고….” 그는 ‘즐거운 사라’와 같은 작품을 쓰고 싶지만 검열에 걸리는 탓에 “안 걸리면서 야한 작품을 쓸 수 없을까 하고 목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시·소설·평론·수필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마 교수는 시를 쓰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시는 짧으니까 아무래도 함축적이어서 가장 예술다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 문단에는 ‘문학은 교양을 줘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사고가 팽배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학 신성주의’에 빠져 너무 어려운 글들만 판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소설은 논문이 아닌 만큼 재미있고 쉬우며 리듬감이 있는 게 잘 쓴 글입니다.”
소설 ‘해저 2만리’의 작가 줄 베르느와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애드거 앨런 포를 좋아한다는 그는 “‘귀족’이 나온 뒤에는 또 다른 장편소설을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제 시집이나 소설이 야한지 야하지 않은지는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나 욕하세요.”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008-04-12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