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친일파 해부 임종국선생 ‘총서’ 구상 햇빛

[단독]친일파 해부 임종국선생 ‘총서’ 구상 햇빛

이문영 기자
입력 2008-04-03 00:00
수정 2008-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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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 추진 3인의 공동연구협약서 발굴

학계에서 말로만 회자되던 ‘친일문제 연구가’ 고 임종국 선생의 ‘친일파총서’ 발간계획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총서의 골격은 공동집필자 가운데 한 명이던 김승태 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이 최근 자료정리 도중 선생과 함께 작성한 ‘공동연구협약서’를 찾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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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친일문제에 몰두, 지금까지 이어져온 친일청산 작업의 기초를 놓은 재야 학자 임종국 선생. 그의 작업은 ‘혼자 하는 반민특위’로 불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60년대부터 친일문제에 몰두, 지금까지 이어져온 친일청산 작업의 기초를 놓은 재야 학자 임종국 선생. 그의 작업은 ‘혼자 하는 반민특위’로 불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친일파총서’는 선생이 1989년 11월 폐기종으로 작고(당시 60세)하기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숙원사업이자,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친일파 연구의 집대성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총서의 이름은 선생의 사망 정황을 언급(“‘친일파총서’ 기획·집필 도중 세상을 떠났다”)할 때만 단편적으로 거론됐을 뿐, 총서의 실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선생이 발간 작업을 미처 시작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서 총서의 구상도 함께 묻혀 버린 까닭이다. 선생이 남긴 숙제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이란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연구소 또한 선생이 구상했던 발간계획을 확인하지 못한 채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분야별 모두 10권·친일인명사전 포함

김 전 실장에 따르면,1988년 당시 독립기념관 자료과장이던 그는 기독교의 친일문제를 다룬 논문을 쓰면서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이듬해 2월 그는 투병 중이던 선생으로부터 총서 공동집필을 제안받았다. 김 전 실장은 “건강악화로 혼자서 작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선생이 3월초 총서의 구상을 메모한 쪽지를 보여 줬고, 난 메모를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해 협약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작업의 방대함을 고려해 이명화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을 선생에게 소개했다. 협약서는 최종적으로 임종국, 김승태, 이명화 3인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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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서를 보면, 총서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됐다. 총론(서명:‘외세영합과 친일파’)을 비롯해, 사상(‘사상침략과 친일파’)과 정치(‘정치침략과 친일파’),1∼4공화국의 친일파(‘해방 이후의 친일파’) 부문을 선생이 맡고, 동·서양종교(‘종교침략과 친일파 1∼2’)와 사회교육(‘사회교육침략과 친일파’) 부문을 김 전 실장이, 경제(‘자원침략과 친일파’)와 만주·중국(‘대륙침략과 친일파’) 및 문화(‘문화침략과 친일파’) 부문을 이 연구원이 전담했다. 또 총서에서 인용한 친일논설의 원문만 모은 자료집을 각 권마다 한 권씩 제작해 총 10권의 ‘친일논설전집’을 만들고,1만∼2만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한 권 분량의 ‘친일인명·용어사전’ 편찬도 계획했다.

김 전 실장은 “선생은 이미 사전편찬을 목적으로 1만 5000여개의 인명카드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면서 “그 중 300여개의 기독교 인물카드를 종교 분야 집필에 활용하라며 건네 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선생은 자신이 정리한 자료와 쓴 글을 근간으로 보완작업을 진행하고, 종교와 대륙침략 등 새로 연구해야 할 분야는 김승태·이명화 두 사람이 맡았다. 자료는 서로 공유하되, 집필은 각자의 책임 하에 단독으로 진행키로 했다.

선생 타계로 편찬작업 전면 중단

하지만 선생의 타계로 작업은 전면 중단됐고, 총서의 구상을 담은 협약서마저 사라지거나 자료더미에 묻히면서 총서는 이름으로만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선생은 2∼3년 안에 한 권씩은 내자고 말했다.”면서 “다섯 권을 맡은 선생은 협약서 작성 당시만 해도 최소 10년은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생의 뜻을 좇아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세열 사무총장은 “친일청산 작업을 한층 앞당겼을 ‘친일파총서’가 제대로 출간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지금이라도 소문만 무성하던 총서의 구체적 뼈대를 확인하게 돼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친일파총서’의 구상을 모른 채 ‘친일문제연구총서’ 발간을 진행해 왔지만 둘의 내용은 큰 틀에서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선생의 작업에서 ‘친일인명·용어사전’은 마지막 단계에서 편찬되는데 비해, 연구소의 경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필두로 작업을 이어간다.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은 오는 8월 출간될 예정이다. 조 총장은 “연구소의 총서 작업이 선생의 총서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후배로서 무척 안도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친일청산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몸부림쳤던 선생의 진면목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8-04-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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