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얼 찾는 게 얼빠진 일입니까”

“항일 얼 찾는 게 얼빠진 일입니까”

김정은 기자
입력 2008-03-01 00:00
수정 2008-03-0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선조 의병장 이교영 ‘공적찾기’ 35년… 칠순의 손자 이한택옹의 3·1절

“죽는 날까지 할아버지의 공적을 다 찾아 놓을 겁니다.”

의병장 이교영의 손자 이한택(71)씨는 35년째 할아버지의 항일 역사를 찾고 있다. 이씨가 살고 있는 경북 영주시 영주동 민족문제연구소 경북북부지회 건물에 딸린 다락방에 들어서면 수북히 쌓여 있는 할아버지의 항일 자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료 더미 탓에 한 사람이 눕기도 좁게 느껴졌다.

“조상 공적은 후손들이 알아서 찾으라니”

이미지 확대
의병장 이교영의 손자 이한택옹
의병장 이교영의 손자 이한택옹
이씨의 할아버지 역사 찾기는 1974년 “의병장이었던 할아버지를 꼭 찾아 그 공적을 만천하에 알려라.”는 할머니의 유언에서 시작됐다. 철도공무원으로 비교적 편한 삶을 살던 이씨의 삶은 그때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확실한 것은 족보에 기록된 ‘이교경’이란 할아버지의 이름 석자뿐이었다. 무작정 부산문서보관기록소와 대구형무소를 찾았고, 국사편찬위원회도 수십번 들렀다. 하지만 ‘이교경’이란 의병장은 없었다.

“후손 혼자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수집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보훈처에 수도 없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상의 공적은 후손이 알아서 찾으라.’는 답변뿐이었어요. 훈장받은 독립유공자 2000여명의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2004년 어느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과천의 국사편찬위원회를 찾아 ‘의병활동사’란 책을 찾아냈다. 며칠 밤을 새워 읽던 중 ‘이교영’이란 비슷한 이름을 발견했다. 영주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했으며,‘용담’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이씨의 눈 앞이 환해졌다.‘용담’은 바로 할머니의 이름이었다. 당시 의병장들은 신분 노출을 우려해 가명을 많이 썼고, 할아버지도 교영, 용담, 교철, 춘삼 등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1995년 이미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상태였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倂呑)한 해인 1910년(경술국치년) 의병장 이교영은 일본 재판정에서 “나는 조선의 선비다. 너희 왜놈들에게 내 목숨을 맡길 수 없다.”면서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

이미지 확대
보훈처에 주민등록등본, 족보, 지역이름 변경서류, 할아버지의 재판기록 등을 제출했지만 자신이 손자라는 사실을 입증받지 못했다. 일본까지 건너가 할아버지의 재판기록을 번역했다. 일제 재판 기록은 할아버지의 진술뿐이어서 공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공훈록에는 강원도에서 교철, 충청도에서 춘삼, 경북에서 이장군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할아버지의 행적이 빠져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문서보존기록소에서도 추가로 할아버지의 자료를 챙겼다. 정신나갔다는 주위의 비아냥도 들리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2005년 4월21일 대법원에서 의병장 이교영의 손자가 맞다고 인정받았다.

“할아버지 공적찾기 죽을때까지 계속할 것”

뒤늦게 의병장의 손자임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할아버지 찾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1주일에 사흘은 강원도 원주, 충북 단양 등에서 보낸다. 의병장 손자로서 세 번째 맞는 3·1절을 앞두고 이씨는 “후손이 조상의 공적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민족을 위해 싸웠던 독립유공자들의 흔적은 국가도 함께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주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2008-03-01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