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세계 속의 문화세력이 되려면/마크 러셀 문화비평가

[글로벌 시대] 세계 속의 문화세력이 되려면/마크 러셀 문화비평가

입력 2008-01-14 00:00
수정 2008-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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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에서 영화산업만큼 세계화와 깊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90년대 한국 영화산업이 창의성을 활발히 꽃피우는 데 있어 외부세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술측면과 투자측면 모두에서 한국 영화의 중요한 발전을 가져 온 사람들은 외국에서 최소한 몇년간의 교육을 받은 인재들인 경우가 많다.CJ 엔터테인먼트와 이미경 부회장,‘친구’의 곽경택 감독,‘헨젤과 그레텔’,‘괴물’의 류성희 미술감독 등이 그러한 예이다.

사실 세계 영화시장은 한국 영화산업의 발생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1920년대와 30년대 한국은 할리우드에 있어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유망한 영화시장으로 주목을 끌었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유나이티드 아티스츠,MGM,RKO 등 주요 영화 제작사들이 당시 한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었다. 한국전쟁 후에도 해외 영화는 한국에서 한동안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1980년대 중반 국내 영화사들에 치명적일 것으로 여겨졌던 외국 직배사들에 대한 영화시장 개방도 많은 면에서 한국 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에서 세계화의 교훈들은 잊혀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박스오피스에서 한국 영화가 외국 영화보다 훨씬 더 성공적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영화들은 국내산업에 대한 위협으로 비쳐지고 있고, 스크린쿼터제는 여전히 가장 민감한 이슈로 남아 있다.

심지어 한국 영화배우들은 그들의 매니저들이 영어에 친숙하지 않거나 외국에서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주요한 해외 영화에서 배역을 잃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곤 한다. 문제는 세계화가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세계로부터 자신을 차단해 버리면,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창의성으로부터 차단당하게 된다.

한국 음악산업은 서태지 붐 이래로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10대 팝 우상들만이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 TV드라마는 한때 아시아에서 훨씬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대안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신선함을 잃고 서서히 시청자들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어 온 영화산업은 상업적이고 진부한 내용과 단지 몇몇 혁신적인 감독들만이 남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는 투자 규모와 첨단기술을 겸비하고 있으나, 창의성 측면에서 의미있는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2007년 한국 영화산업이 1997년에 비해서 훨씬 더 적은 수의 재미있고, 도전적이며, 색다른 영화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한류’가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 수준의 생산, 배급 및 관련 기술을 도입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국을 아시아의 대표적 문화 콘텐츠국가로 만들었다. 이제는 창의성에 초점을 둔 또 다른 흐름이 분명히 요구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미래에도 중요한 문화 세력으로 자리잡고자 한다면 몇몇의 스타 감독들로는 충분치 않다. 한국 영화 산업은 구조적으로 창의성을 영화개발 과정에 투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제작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산업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대형 제작사들은 실험적이고 유망한, 재능이 양성되고 촉진될 수 있는 틈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자동차, 전자 등 세계로 진출한 많은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교훈을 수년 전부터 익혀왔다. 저가의 복제품을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진정한 가치는 혁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말이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자 한다면 그 제품은 세계수준의 혁신성을 보여줘야 한다.

마크 러셀 문화비평가
2008-01-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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