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이 침체되어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땅한 묘책을 내는 사람도 없다. 흔히 “3D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또 “젊은 세대의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이유를 들이대지만 진짜 원인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는 돈을 먹고 산다. 시장이 없으면 돈도 없다. 돈 될 일이 없으니 권투 글러브를 끼는 선수도 없다. 스타가 없으면 시장도 죽기 마련이다. 먹이사슬 같은 일련의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한국 복싱은 지금 고사 직전이다.
‘3D 스포츠’니,‘새로운 트렌드’니 운운하는 것도 현재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시장을 보면 딱히 전폭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들에겐 돈이 있고, 쟁쟁한 프로모터들이 줄지어 있다. 그나마 ‘제법 하는’ 선수들이 K-1 등 격투기로 빠져나간 것도 더 이상 복싱판에선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복싱평의회(WBC) 세계타이틀을 보유했을 당시에도 최요삼은 “타이틀 스폰서가 없어 방어전을 치르기도 힘든데 챔피언 벨트가 무슨 소용이냐.”고 한탄했었다. 먼 옛날 일이긴 하지만 지난 1968년 김기수가 WBA 3차 방어전 당시 받은 파이트머니는 5만 5000달러(당시 환율로 약 1500만원)였다. 당시 서울의 집 한 채 값은 100만원 정도.25일 최요삼이 벌인 타이틀전의 대전료는 당시보다 물가가 수십배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3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몸값’이 쥐꼬리인 마당에 스타 탄생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프로의 산실인 아마추어판도 갈수록 선수 기근에 시달린다. 김기수를 비롯해 박찬희 문성길 변정일 김광선 등 우리가 기억하는 ‘스타 복서’들은 죄다 아마추어 링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고령화도 당연시된다. 최근 신인왕전에서 30대 이상의 선수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내 프로복싱을 관장하는 한국권투위원회(KBC)의 체질개선은 가장 시급한 문제다. 선수들이 건강보호를 위해 파이트머니의 1%를 적립하고 있는 건보 재원은 지난 7월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한편 최요삼은 뇌수술 이틀째인 26일에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심각한 뇌 손상으로 회복 가능성은 10% 미만”이라는 병원 측의 비관적인 전망도 전해졌다. 다만 그의 미니홈페이지에 쇄도하고 있는 누리꾼들의 격려 문구, 그리고 생사의 기로에 선 한국복싱과 최요삼의 부활을 바라는 팬들의 염원만이 유일한 희망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