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제주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손원천 기자
입력 2007-12-27 00:00
수정 2007-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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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언제 가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숨겨진 곳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요.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욱 이어집니다. 특히 새해 해돋이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이 많지요.

자, 이쯤 해서 제주의 아픔이 서려 있는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슬포 인근, 우리나라 최남단 산인 송악산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이란 곳이 있습니다.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답니다. 연말연시를 제주에서 보낼 계획이라면 한번쯤 들러보시지요. 가슴 뭉클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자녀들과 간다면, 살아 있는 역사공부 등으로 더욱 값진 여행이 되겠지요.

왜냐고요?시계추를 잠시 1941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일본은 한때 태양의 제국을 꿈꾸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태양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이카루스가 죽음으로 증명했음에도, 자신들만은 예외라고 믿었습니다.

그 해 12월8일 일본은 제국건설의 걸림돌이었던 미국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합니다.

일본은 승기를 이어가다 1942년 6월5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주력 항공모함과 우수한 전투기 조종사 대부분을 잃고 미국에 참패하게 됩니다.

미국 등 연합국이 여세를 몰아 규슈 등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해 교두보로 삼을 만한 곳이 어딜까요. 일본군 지휘부는 그곳이 제주도, 특히 서남부 모슬포 해안일 거라 판단합니다. 그래서 모슬포 앞바다를 낀 알뜨르 비행장을 선봉으로 주변에 고사포 진지, 해안 어뢰정 기지 등 군사시설들로 가득 채우지요. 제주 앞바다를 1차 저지선, 중산간오름을 2차 저지선, 그리고 어승생악을 3차저지선 삼아 제주도 전체가 요새화됩니다.

이렇듯 현재 일본을 제외하고 태평양전쟁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 제주도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제주에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흔적, 알뜨르 비행장 주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 일대가 ‘제주평화대공원’으로 조성된다고 하니, 번듯하게 정비된 전적지보다 다소 황량하긴 해도 현재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가는 김에 꼭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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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국을 꿈꿨던 일제는 아름다운 제주에 흉칙한 잔재를 많이도 남겨 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들의 오만을 조롱하는 듯하다.
태양의 제국을 꿈꿨던 일제는 아름다운 제주에 흉칙한 잔재를 많이도 남겨 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들의 오만을 조롱하는 듯하다.


# 태평양 전쟁의 거점기지 모슬포

알뜨르의 ‘알’은 ‘아래’ 혹은 ‘낮다’는 뜻이고,‘뜨르’는 너른 들녘을 말한다. 즉 모슬봉 아래 너른 들판이란 뜻이다. 이처럼 정겨운 이름의 내면에는 전쟁의 아픈 기억이 숨겨져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근대문화유산 제39호)조성계획이 처음 수립된 것은 1926년. 중일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중국대륙 공격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1931∼1936년 1차 조성공사가 끝나면서 약 60만㎡(18만평)의 비행장이 완성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알뜨르 비행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중국 난징과 상하이 등을 공격하기 위해 일제는 본토 나가사키현의 오무라항공대를 제주도로 이동하고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제로젠’과 연습용 비행기 ‘아카톰보(Akatombo·일명 잠자리비행기)’의 격납고 20개를 만드는 등 2차 확충작업을 벌인다. 당시 알뜨르 비행장에서의 난징 출격횟수는 36회, 연 600기였고, 투하폭탄은 총 300t에 달했다.

알뜨르 비행장이 현재 크기와 비슷한 265만㎡(80만평)까지 확장된 것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모슬포 해안 일대를 미군 등 연합군의 가장 유력한 상륙지점으로 꼽았던 일본군 지휘부는 ‘결(決)7호 작전(작전지역 1∼6호는 일본 본토)’을 통해 알뜨르비행장을 확장하고, 모슬봉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는 등 군사시설 확충을 서두르는 한편, 만주 관동군 소속 111사단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총 7만 5000명의 병력을 제주도에 집결시킨다. 당시 조선 내 일본군 병력이 21만명가량이었다고 하니, 총 병력의 3분의1이 제주도에 배치된 셈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도 알뜨르 비행장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나가사키 등에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제주도가 최후의 결전지 ‘아마겟돈’이 될 수도 있었던 것.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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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특공대 가이텐, 가미카제의 흔적도

현재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는 풀로 뒤덮인 활주로와 격납고 20기, 관제탑, 지하벙커, 샛알오름 고사포 진지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같이 제주도 주민 등 강제 노역에 끌려나간 부역자들의 밭은 숨결이 배어 있는 곳들이다. 돔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격납고는 가로 15∼20m에 높이 6m, 두께 1∼4m로 튼실하게 지어졌다.20기 중 19기는 원형이 보전됐고 1기는 잔해만 남았다.

알뜨르 비행장 옆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섬뜩한 형상의 해안동굴들이 있다.3∼40m 크기 15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일오동굴(등록문화재 제313호)’이라고도 부른다. 일제가 제주도에 만든 5곳의 자살특공전 기지 중 한 곳. 소형 어뢰정을 숨겨 놓고 미국 함대가 나타나면 어뢰정을 탄 자살 특공대가 돌진해 자폭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졌다. 이 ‘인간어뢰’부대를 ‘가이텐(回天)’이라 불렀는데, 비행기를 타고 자폭했던 가미카제(神風)특공대와 같은 임무였다.

# 지하 갱도진지의 절정 가마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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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사이판이 함락되는 등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 지휘부는 이를 계기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대비해 거대한 지하참호 건설을 시작한다. 나고야현에 천왕이 대피할 마쓰시로 대본영 등을 짓는 한편 제주도에도 지휘소, 통신실, 숙소 등이 갖춰진 지하 갱도진지를 조성하게 된다. 제주도내 지하갱도의 총연장은 32㎞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송악산 샛알오름 아래 1.2㎞짜리 동굴진지를 비롯, 제주도내 360여개 오름 중 약 120곳에 지하 갱도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경면 청수리의 가마오름 진지동굴이다. 높이 140m의 가마오름 기슭에 자리잡은 진지동굴은 일본이 미국과 최후의 일전을 대비해 구축한 진지 중 최대 규모다. 약 2㎞ 길이의 1,2,3땅굴 가운데 제1땅굴 약 300m 구간이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지하갱도 곳곳에 강제 노역에 시달린 제주도 주민들의 피와 땀이 엉겨붙어 있는 듯하다.

참혹한 과거의 흔적 위에 현재는 평화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강제 노역했던 고 이성찬씨의 아들 이영근(55)씨가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2004년 사재를 털어 조성했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군수품과 각종 땅굴작업용 도구들을 볼 수 있다. 관람료 3000∼5000원.peacemuseum.co.kr,772-2500.
2007-12-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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