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9) 강원도 정선 동면 북동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9) 강원도 정선 동면 북동마을

이호정 기자
입력 2007-10-31 00:00
수정 2007-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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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굽이굽이 돌아가는 동강처럼 늘어지고 이어지는 아리랑 자락이 청승맞은 땅. 팍팍한 삶의 애환이 녹아, 슬프고 구성진 노랫자락이지만 이맘때 정선의 아리랑은 온 천지에 피어 있는 노란 산국처럼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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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 분교의 수업은 아침체조를 대신한 줄넘기로 시작한다.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난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상쾌해진다.
산골마을 분교의 수업은 아침체조를 대신한 줄넘기로 시작한다.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난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상쾌해진다.
외지다는 ‘아라리’의 고장 강원도 정선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동면 북동마을. 정선읍에서 동면 쪽으로 25㎞ 정도를 들어가 왼쪽의 큰 재를 넘어 숨어 있는 마을이다.20여 가구에 60여 명이 살고 있지만 집들이 워낙 떨어져 있어 몇 ㎞는 가야 한 채씩 볼 수 있다. 근처에 민둥산, 화암동굴이 유명해 등산객들이 자주 찾지만 북동마을은 까마득한 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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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입맛을 돋우는 쌉쌀한 맛의 고들빼기가 마을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고들빼기김치는 주민들 밥상에 빠지는 법이 없다. (2)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정선의 6년근 황기. 크고 때깔이 좋다. (3) 이장인 윤창옥씨가 들기도 힘든 커다란 호박을 따고 있다. (4) 마을 주민이 인진쑥을 가마솥에 넣어 삶고 있다. 새까맣고 끈끈한 진액이 나올 때까지 사흘 동안 달여 낸다. (왼쪽부터)
(1)입맛을 돋우는 쌉쌀한 맛의 고들빼기가 마을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고들빼기김치는 주민들 밥상에 빠지는 법이 없다.
(2)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정선의 6년근 황기. 크고 때깔이 좋다.
(3) 이장인 윤창옥씨가 들기도 힘든 커다란 호박을 따고 있다.
(4) 마을 주민이 인진쑥을 가마솥에 넣어 삶고 있다. 새까맣고 끈끈한 진액이 나올 때까지 사흘 동안 달여 낸다.
(왼쪽부터)
한때 새파랗던 너른 고랭지 배추밭에는 수확이 끝나 바싹 마른 옥수숫대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밭 한쪽에서는 6년생 황기 수확이 한창이다.13만 2000㎡(4만평)의 땅에 옥수수며 더덕 등을 키우고 있는 이장 윤창옥(54)씨.“농가 수익은 정말 보잘 것 없드래요.1년 동안 죽어라 밭농사 지어봐야 1,2천만원 버니까…. 그나마 고랭지 배추 한 번 잘못 하면 빚더미에 오르기 일쑤지요.” 배추농사는 특히 수급 예측이 어려워 수십년 농사꾼들도 위험이 크다. 때문에 수확하기까지 4∼6년 걸리더라도 안정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더덕, 황기 등 약초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북동마을 더덕과 황기는 전국 최고로 친다. 윤씨는 인터넷을 통해 인진쑥을 달여 낸 진액도 판매한다.

간(肝)에 특효라는 인진쑥은 세 가마솥 분량을 사흘 동안 끓여 내야 겨우 다섯되 정도를 얻을 수 있다. 인진쑥 진액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주문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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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마을 깊숙한 골짜기 끝에는 ‘함바위골(흰 바위골)’이라 불리는 계곡이 있고 세 집이 모여 산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일명 ‘옻물약수’로 유명한 곳이다. 옻나무 독을 치료할 만큼 효험이 좋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 약수물은 어린이 아토피 등 피부병에 특히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퍼가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반년치 먹을 물을 떠가는 사람도 있고 물을 떠다가 파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1년을 받아놔도 물때나 이끼가 안 끼지요.10년 넘게 치마를 한번 못 입어 볼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던 처녀가 이 물을 먹고 바르고 해서 병이 나았다고도 하니까요.” 창원에서 살다가 작년 4월에 함바위골로 들어온 이동환(55)씨의 자랑이다. 그는 지난해 지은 흙집을 보수하고 있었다. 여름 한낮 뙤약볕에 있다가 들어와도 시원한 흙집은 겨울에는 반대로 따뜻하다고 한다. 흙벽 두께가 40㎝나 되지만 환기성이 좋아 술 먹고 대취한 사람이 자고 일어나도 방에서 술냄새가 나지 않고 숙취도 없다고 흙집 예찬론을 편다. 마을 입구에는 전교생이 다섯명인 화동초등학교 북동분교가 있다. 교사는 두 명. 그나마 내년에 6학년 아이가 졸업하면 서로 의지해온 두 선생님 중 한 명은 다른 곳으로 떠날 처지다. 작년에 이곳에 부임한 김기동(36) 선생님은 “틀에 박힌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니 여유롭고 좋지요. 이런 저런 잡무나 통제도 없어 자유롭고요.”라며 웃는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은 체조를 대신해 줄넘기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한 군데 펼쳐놓고 나눠 먹는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스스럼없고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한낮의 짧은 햇볕에 새콤한 산골의 냉기가 조금 훈훈해진다. 점심식사 후 축구공을 차고 야구공을 주고받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산골에 메아리친다. 그들의 머리 위엔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그림처럼 흘러간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2007-10-3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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