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인간견문록] 언론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

[최재천 인간견문록] 언론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

입력 2007-10-19 00:00
업데이트 2007-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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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지난 3월27일 정부가 각 부처에 있는 기자실을 개방형 브리핑실로 바꾸고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취재를 금지하는 ‘기자실 개선 및 정례 브리핑제 도입 방안’을 발표한 지 6개월여 만에 드디어 취재기자들이 복도로 쫓겨났다. 벌써 몇 년째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고 싶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이 나라에 지금 이 순간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것인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탓인지 나는 사실 얼마 전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사전에 실리기 전까지는 ‘놈현스럽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논쟁하기를 즐겨 하고 당신 스스로 논객처럼 행동하던 임기 초기의 노무현 대통령을 보며 나는 그가 임기 내내 적어도 언론과는 신명 나게 놀 줄 알았다.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기자들을 몰아내는 그를 보며 참으로 ‘놈현스런’ 그의 언론 정책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우리 역사가 남긴 유물 중 으뜸으로 친다. 세계 어느 곳에 그런 기록을 남긴 민족이 또 있단 말인가? 그런 엄청난 역사의 기록을 있게 한 주인공은 바로 붓 한 자루에 목숨을 걸었던 올곧은 사관들이었다. 사관의 궁극적인 임무는 역사를 편찬하는 일이었지만 그에 앞서 보고 들은 그대로 사초를 작성함으로써 왕권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 역시 그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왕권 견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론에 귀를 대고 있는 국민 모두가 사관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정부 부처들과 언론의 관계는 조선시대 항상 임금의 지근거리에 머물며 왕명 출납을 담당하던 승지와 그들의 시정활동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사관의 관계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역사학자 박홍갑 박사의 저서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에 따르면 이들의 불편한 관계는 사관제도가 미처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조선 초기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임금에 따라 종종 불거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성군일수록 사관의 입시에 관대했고 태종, 세조, 연산군 등 떳떳하지 못했던 임금들일수록 사관의 접근을 꺼려했다.

박홍갑 박사는 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 초기 사관 민인생(閔麟生)과 태종이 벌인 설전을 상세하게 전한다. 그 일화를 간략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태종이 편전에서 정사를 보고 있는데 도승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밀고 들어온 민인생에게 편전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민인생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비록 편전이라 하더라도 대신이 일을 아뢰고 또 경연의 강론을 하는데, 신과 같은 사관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갖추어 기록하겠습니까?”

이에 태종은 민인생을 달랠 심산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내가 편히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하다. 비록 대궐 밖에 있더라도 어찌 내 말을 듣지 못하겠는가?”

그러자 민인생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

이에 박홍갑 박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유교를 이념으로 창건된 조선에서는 하늘이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하늘이 곧 백성이었다. 사관은 하늘과 백성을 ‘빽’으로 두었으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유교 시대가 이럴진대 민주시대인 지금 하늘은 훨씬 더 무서운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하늘은 곧 언론이자 국민이다.

청와대 경내에는 ‘춘추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건물이 있다고 들었다. 춘추관 또는 춘추예문관이란 본래 사관들이 역사를 기록하고 편찬하던 기구가 아니던가. 대못질을 하려면 그곳부터 해야 할 것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2007-10-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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