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서울에 박수근 미술관을/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영문학

[문화마당] 서울에 박수근 미술관을/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영문학

입력 2007-08-02 00:00
수정 2007-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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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김홍남 국립중앙미술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지금 사대문 안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 등을 보세요. 모네 전, 비엔나 미술 박물관전, 중국국보전 등 온통 외국 전시 일색입니다. 우리 것은 간 데 없고, 문화 사대주의가 따로 없습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화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교류해야 발전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불교미술도 토착적으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인도 및 중국 등과의 문화 교류에서 얻어진 것이다.‘빛의 화가’ 모네의 그림은 프랑스 파리까지 가서 보아야만 하는 세계적인 유산에 속하는 명화들인데, 우리가 서울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필자는 수련을 그린 모네의 그림을 보면서, 사대주의보다는 자연을 빛의 변화에 따라 다원적 시각으로 포착했을 때 나타난 아름다움이 ‘추상화의 출발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기에 바빴다.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사대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고급한 독립 미술관을 갖는 것이다. 서울에도 물론 경복궁, 종묘, 국립미술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간송미술관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내외의 관객들에게 한국 미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쉽게 보여주기에는 미흡할 뿐 아니라, 그것을 다시금 찾아와서 보기를 갈망할 만큼 그들에게 큰 미학적인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값진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가. 우리에게도 한국인의 특성과 정서를 오롯이 보여주는 세계성을 지닌 미술품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박수근 그림이다. 그러나 서울에는 파리의 모네 미술관과 같은, 박수근 미술관이 없다. 박수근 기념관은 강원도 양구에 있지만 아직 그 수집 내용이 너무 빈약하고, 서울에서 너무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정부와 뜻있는 사람의 힘을 모아, 프랑스 파리처럼 서울에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한곳에 집대성할 수 있는 독립된 미술관을 건립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막대한 경제적인 투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성취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6.25전쟁 때문에 우리가 그의 그림 가치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암흑기에 미국인 실리아 지머맨과 밀러가 첫 상설 반도 화랑을 세워 그를 후원하는 동안 200점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또 지난 5월 박수근의 유화 ‘빨래터’는 45억 2000만원에 낙찰되었고, 그의 유화,‘앉아있는 아낙과 항아리’가 몇 년 전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23만 9500달러에 팔렸으니, 위에서 언급한 일이 얼마나 어려울 것이란 것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수집가들이 그의 그림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해 그것을 벽장 속에 사장시키지 않고, 우리 민족은 물론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생각해서 박수근 미술관에 기증해 세상의 빛을 보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사업은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서 황홀경에 빠져 바라보았던 미술품들이 모두 다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이름 아래 새겨진 또 다른 이름의 사람에 의해 기증된 것이란 사실을 알고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다.

정부에서 일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세계화 시대에도 국제 문화교류를 ‘사대주의’란 말로 폄훼할 것이 아니라, 산업화 이전 한국인의 소박함과 성실함을 화폭에 담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박수근 미술관을 파리의 모네 미술관 못지않게 독립된 형태로 수도 서울에 세우는 일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영문학
2007-08-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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