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리포트] (20) 문화외교의 달인들

[프렌치 리포트] (20) 문화외교의 달인들

입력 2007-03-16 00:00
수정 2007-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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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프랑스’ 문화 우월성 과시

지난 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프랑스의 르노 돈느듀 드 바브르 문화장관과 UAE의 벤 타눈 알니안 관광장관은 오는 2012년 문을 여는 새 국립박물관 이름에 ‘루브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는 국가간 합의문에 서명했다.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박물관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2037년까지 30년 동안 루브르라는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4억달러(약 4000억원)를 받는다. 박물관이 완공되면 10년 동안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예술품을 대여해줄 계획이다. 대여 기간은 작품당 2년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여졌다. 루브르 소장 예술품을 대여하는 데 UAE정부가 지불하는 비용은 7억 5000만달러(7500억원)로 알려졌다.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은 프랑스의 대외 문화정책이 21세기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사막에 루브르를 수출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는 인류 역사의 학습장을 만든다는 계획 아래 루브르궁을 박물관으로 바꾸고 왕족 소유의 회화와 조각 등 예술품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1793년의 일이다. 루브르의 소장품은 현재 44만 5000점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의 보고(寶庫)를 찾은 방문객은 지난해 830만명이나 된다. 이런 상징적인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을 아랍 산유국에 설립한다니 프랑스 사람들이 분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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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사막 루브르’ 계획이 발표되자 프랑스에서는 비난여론이 폭등했다. 미술사학자, 고고학자,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을 비롯해 시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반대 서명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가 세계시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프랑스의 영혼을 파는 행위’라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가 루브르 아부다비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이득보다는 중동 문화권에서 프랑스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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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시가 있는 걸프만에 조성되는 사다야트 문화지구에 들어설 예정인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은 프랑스의 대표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를 맡았다. 수많은 방들로 구성된 거대한 돔 형식으로 연건평 2만 4000㎡에 전시공간만 8000㎡에 이른다. 사다야트 문화지구는 루브르 박물관 외에 프랑크 게리의 구겐하임미술관, 다다오 엔도의 해양박물관, 자하 하디드의 공연예술센터 등이 들어서 거장 건축가들의 미래적인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사다야트 문화지구를 찾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문화적 파워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할 것은 당연하다.

중국 상하이 ‘퐁피두센터´ 분관도

루브르 박물관 외에도 2010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유럽 최대의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분관을 오픈한다. 브라질에는 로댕미술관 분관 설립을 검토 중이다. 러시아·인도·아프리카·남미 등과 박물관 파트너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내적으로는 문화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문화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문화시설의 세계화를 통해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는 박물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르본 대학 위성캠퍼스가 아부다비에 생겼고, 카타르에는 생시르육군사관학교의 훈련아카데미가 설립될 예정이다.

문인들을 외교사절로 발탁해 문화 외교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전통이지만 대외 문화정책이 체계화된 것은 2차대전 이후이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인도차이나·아프리카 등 해외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면서 프랑스 문화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대외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1945년 외무부 내에 문화관계 총괄사무국을 신설, 대외적인 문화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프랑스어권 국가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 국제적 문화예술 협력을 통해 프랑스의 문화를 새롭게 전파시키는 것이 임무였다. 프랑스 문화원, 외국의 프랑스 초·중등학교, 알리앙스 프랑세즈 등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알리는 조직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이때부터다.

“문화는 프랑스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당시 외무부 장관 조르주 비도의 말은 무척 인상적이다.

드골 대통령 때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프랑스 문화의 세계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모나리자의 도쿄전시회 등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프랑스 문화의 우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프랑스의 대외 이미지에 문화적 색채가 강해진 것은 모두 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보면 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문화다양성으로 대항

프랑스의 대외 문화정책은 미테랑 대통령 시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1980년대 초반은 할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몰개성·무국적의 미국 문화가 급속도로 파급돼 각국의 문화정체성을 위협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회당 정부에서 문화장관을 지낸 자크 랑은 프랑스의 문화를 보존·발전시키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문화의 독점적 확산을 견제하기 위해 각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아랍문화연구소, 국제문화의 집, 다문화연구소 등을 만들고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를 중심으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추진했다.199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 문화의 범람에 맞서 자국 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처음 제안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5년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과됐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07-03-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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