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女아나키스트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女아나키스트

김상화 기자
입력 2006-04-04 00:00
수정 2006-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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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아내로 살며 조선을 사랑하다 숨진 일본여인의 묘지가 한국에 있어 일본인의 발길이 늘고 있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자리잡은 묘의 주인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박열(朴烈·1902∼1974)의사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

일본 요코하마 출생인 가네코는 문경 출신인 박열 의사의 도쿄 유학시절인 1922년에 만나 일제에 항거하는 아나키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가난에 찌든 어린시절, 신문을 팔며 힘든 생활을 했던 이력도 작용했다.

박 의사와 동거하던 1923년 9월1일 간토(關東)대지진 때 가네코는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죄로 박 의사와 함께 검거돼 1926년 3월25일 둘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일본 당국은 가네코가 그해 7월 우쓰노미야 형무소 여죄수 독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감생활 중 박열과 가네코가 옥중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옥중에서 임신까지 하게 돼 당국이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낙태수술을 하다가 숨졌다는 설도 있다.

이후 박 의사의 형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네코의 시신을 수습해 집안 선영인 문경읍 팔령리에 안장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죽은 일본인이 한국에 묻히게 된 배경에는 조선의 남자를 사랑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2003년 11월 마성면 박열 의사의 생가 뒤편으로 가네코의 묘를 이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열 의사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해에 도쿄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친일파에 대한 테러활동도 전개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회장을 지낸 뒤 1974년 1월17일 사망했다.

일본 릿교(立敎)대 교수를 지낸 야마다 쇼지는 2003년 국내에서 발간된 ‘가네코 후미코: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에서 죽음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네코의 일생을 그렸다. 가네코의 짧지만 극적인 삶은 1972년 일본에서 일대기를 그린 ‘여백의 봄’이 출간된 뒤 일본에서 연구모임까지 결성될 정도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가네코의 고향인 야마나시현(山梨縣) 학습추진센터 회원들로 구성된 문인 14명은 3일 문경을 방문, 그의 삶을 기렸다.

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2006-04-0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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