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수진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ESPN 칼럼니스트 닐)
한국 드림팀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최고의 ‘짠물피칭’(방어율 1.33)을 앞세워 6연승, 무패행진을 질주했다. 종주국 미국과 숙적 일본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원동력은 역시 ‘지키는 야구’. 김인식(59) 감독이 총지휘를 하지만 마운드 운용에 관한 한 재량권을 가진 선동열(43) 투수코치의 작품이다.
선 코치는 ‘지키는 야구’의 신봉자다. 감독으로 데뷔한 지난해 고참들의 반발과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 팀컬러를 완전히 뜯어고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방망이는 기복이 심하지만 마운드와 수비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야구관이다.
이번 WBC에서 선 코치의 마운드 운용은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줄곧 선발로만 뛰었던 박찬호(샌디에이고)를 마무리로 돌린 것도 그의 작품. 뒷심이 약한 한국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험이 풍부하고 뱃심 좋은 박찬호를 활용하겠다는 의도였다.
결과는 족집게처럼 들어맞았다.‘소방수’ 박찬호는 1라운드 타이완, 일본전 그리고 8강 조별리그 멕시코전까지 3세이브로 뒷문을 잠갔다.
선 코치는 또 한번 승부수를 띄웠다. 김 감독에게 건의해 16일 일본전에 박찬호를 선발로 원대복귀시킨 것. 역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박찬호는 5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선 코치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반 박자 빠른 투수교체는 ‘선(SUN)의 매직’이란 찬사를 듣기에 충분했다. 오른손-왼손-잠수함 등 완전히 다른 전형의 투수를 번갈아 내보내 상대 벤치와 타자들의 대응을 원천봉쇄했다.‘감’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해 내린 판단이 척척 맞아떨어진 것.14일 미국전에서 치퍼 존스(애틀랜타)가 서로 다른 4명의 투수를 상대하게 만든 장면은 투수교체의 백미였다. 선 코치는 “나도 30년을 마운드에 섰기 때문에 투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안다. 컨디션이 100%가 아닌 상태에서도 선수들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이번 WBC는 ‘국보급 투수’였던 선 코치가 ‘세계 명장’의 반열에 서는 무대가 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