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여담] 그리워라,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황수정 문화부 기자

[여담여담] 그리워라,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황수정 문화부 기자

입력 2005-12-17 00:00
수정 2005-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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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이어지는 송년모임. 학부모 신분이 둘만 끼어도 십중팔구 그 자리는 교육문제로 클라이맥스를 맞기 일쑤다.

며칠전 모임에선 예비 중학생 아들을 둔 직장인 엄마의 만시지탄이 있었다. 자녀교육에서만큼은 절대적 ‘열등 모(母)’일 수밖에 없는 그녀. 아이 공부를 이젠 맘먹고 한번 시켜볼까 싶어 강남의 학원가를 둘러본 게 화근(?)이었다. 초등생 상대로 민사고·특목고반을 짜서 수준별 맞춤강의를 한다는 얘기에 기가 질렸는데, 유치원에도 SKY(서울·고려·연세대)반이 있다는 소리엔 말문이 닫혀버렸다고 했다.“안 됐지만 현재 댁의 아이 수준으론 또래 학습진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진단에 맥없이 돌아왔다는 거였다.“저학년반으로 (아이를)주저앉히든지 일찌감치 냉수 먹고 속 차리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그녀의 흥분은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몇달 전쯤 대학수능 성적과 부모의 경제력이 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신문에 실린 적 있었다. 믿기 께름칙했던 현실이 비로소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강남 거주자의 명문대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통계치도 애써 외면했던 게 얼마나 현실감각 없었던 일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처음과 끝이 예측가능한, 투자(그것도 현물투자)한 만큼 수익을 보장받는 규격화된 인생들.

그러고 보면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한 풍경은 한참 전부터였던 것 같다. 배가 고파 뛰었고, 그 ‘헝그리 정신’의 성공담으로 세상을 감동시킨 스포츠 스타가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게 언제였나. 온식구가 모여 자는 단칸방에서 명문대 수석이 나왔던 일화도 많았었다. 가진 것 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들의 성공기는 오래오래 마음의 등불이었다.

희망을 거세당한 시속(時俗). 그래서 이 세밑은 더 추운지 모르겠다. 사람살이엔 산도 강도 있고 오르막 끝엔 내리막도 있다는, 삶의 메타포를 되돌려놓을 묘수는 정말이지 없는 걸까.

그리워라,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여.

sjh@seoul.co.kr
2005-12-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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