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원정기’ VS ‘너는 내 운명’.
형식에 내용이 지배되진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23일 개봉하는 ‘나의 결혼원정기’(제작 튜브픽쳐스, 이하 원정기)는 흥행멜로 ‘너는 내 운명’(이하 내 운명)과 틀거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비교선상에 놓일 작품이다. 농촌총각의 절박한 현실에서 출발해 멜로대열에 줄서는 두 이야기에는 엇비슷한 장치들이 많다.“‘책’(시나리오)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나?”란 의문들이 나올 정도다.
어느 쪽이 비교우위를 점하느냐를 따지는 건 의미없다. 전반적 분위기나 목표점이 엄연히 다른 작품들인데다 둘 모두 외풍을 타지 않을 만큼의 튼실하고도 고유한 감상포인트를 갖췄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비교충동이 일어나는 까닭은 다름아니다.18세 관람등급의 ‘내 운명’은 이미 전국 310만명을 동원한, 국내 멜로사상 최고의 흥행작.‘원정기’ 역시 그에 못잖은 흥행이 감지되는 기대작이기 때문이다.
#정재영 vs 황정민…최민식 잇는 ‘뜨거운’ 배우들
언젠가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을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연기를 할 배우”로 지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장담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에이즈에 걸린 티켓다방의 여자를 목숨바쳐 사랑하는 ‘내 운명’의 황정민이 있었다면,‘원정기’에는 정재영이 있다.KBS 인간극장 ‘노총각, 우즈베크 가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영화에서 정재영은 여자와는 눈도 못 맞추는 38세의 쑥맥 노총각 홍만택. 할아버지,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죽마고우 희철(유준상)과 함께 신부감을 찾으러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들을 엮는다.
만택과 희철의 상황을 통해 답답한 농촌현실을 코믹 어조로 역설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무대를 옮긴 영화는 현지 통역관인 라라(수애)를 끼워넣어 멜로 구도를 짜나간다. 어색한 양복차림으로 낯선 나라 여자들 앞에서 진땀을 빼거나, 그런 한편으로 생활력 있고 다부진 라라에게 조금씩 수줍은 감정을 내비치는 만택의 순정파 연기는 장면장면들이 ‘진국’ 그 자체이다.
저런 질감의 연기를 또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 오버랩되는 얼굴이 황정민.“그냥 쉬게 해주고 싶어” 여자(전도연)를 대낮에 여관방으로 불렀던 ‘내 운명’의 순정파 시골 노총각(극중 황정민도 필리핀으로 신부감을 찾아나선 것으로 설정됐다.)의 질박하고도 뜨거운 미소가 만택과 꼭 닮았다.“다 자쁘뜨러”(‘내일 또 만나요’의 우즈베키스탄어)를 외치며 라라와 이별하는 만택의 눈물,“안 변해요, 사랑”이라고 꾹꾹 눌러말하던 황정민의 감정 연기도 한줄에 포갤 만하다.
만택의 때묻지 않은 감수성이 빚어내는 돌발 해프닝 덕분에 ‘원정기’는 유머가 관통하는 훈훈한 드라마로 포장됐다. 그러나 돈벌이용으로 맞선을 주선해주는 중개소, 또 다른 꿍꿍이로 한국행을 노리는 현지 여자들의 씁쓸한 풍경 사이로 영화는 라라의 신분을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다니는 탈북자로 노출시킴으로써 드라마의 갈등을 예고한다.
#현실에 발 디딘 ‘휴먼 멜로’
추상형 묘사가 아닌 구체적 사건을 통한 캐릭터들의 감정 진행, 사실주의적 기둥 소재를 통한 현실발언 덕분에 이 투박한 영화는 진정성이 넘쳐나는 휴먼멜로로 다듬어졌다. 에이즈에 걸린 여자의 실화로부터 최루성 멜로를 사뭇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킨 ‘내 운명’이 그랬듯 이 영화 역시 사실성 충만한 멜로(라라가 필사적으로 대사관 철문을 넘는 장면 등)로 거듭났다. 답답한 농촌현실과 탈북 문제가 교차한 드라마임에도 내내 유쾌하고 유연한 감수성으로 관객의 신경줄을 풀어 놓는다.
선명한 계몽적 메시지가 영화의 ‘태생적 촌티’를 차원높게 승화시키진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하지만 정재영, 수애, 놀랍도록 흡인력 있게 캐릭터를 소화한 유준상은 엄연한 흠집들을 가려줄 만큼 균형잡힌 연기를 선보였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정재영
어느 쪽이 비교우위를 점하느냐를 따지는 건 의미없다. 전반적 분위기나 목표점이 엄연히 다른 작품들인데다 둘 모두 외풍을 타지 않을 만큼의 튼실하고도 고유한 감상포인트를 갖췄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비교충동이 일어나는 까닭은 다름아니다.18세 관람등급의 ‘내 운명’은 이미 전국 310만명을 동원한, 국내 멜로사상 최고의 흥행작.‘원정기’ 역시 그에 못잖은 흥행이 감지되는 기대작이기 때문이다.
#정재영 vs 황정민…최민식 잇는 ‘뜨거운’ 배우들
황정민
만택과 희철의 상황을 통해 답답한 농촌현실을 코믹 어조로 역설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무대를 옮긴 영화는 현지 통역관인 라라(수애)를 끼워넣어 멜로 구도를 짜나간다. 어색한 양복차림으로 낯선 나라 여자들 앞에서 진땀을 빼거나, 그런 한편으로 생활력 있고 다부진 라라에게 조금씩 수줍은 감정을 내비치는 만택의 순정파 연기는 장면장면들이 ‘진국’ 그 자체이다.
저런 질감의 연기를 또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 오버랩되는 얼굴이 황정민.“그냥 쉬게 해주고 싶어” 여자(전도연)를 대낮에 여관방으로 불렀던 ‘내 운명’의 순정파 시골 노총각(극중 황정민도 필리핀으로 신부감을 찾아나선 것으로 설정됐다.)의 질박하고도 뜨거운 미소가 만택과 꼭 닮았다.“다 자쁘뜨러”(‘내일 또 만나요’의 우즈베키스탄어)를 외치며 라라와 이별하는 만택의 눈물,“안 변해요, 사랑”이라고 꾹꾹 눌러말하던 황정민의 감정 연기도 한줄에 포갤 만하다.
만택의 때묻지 않은 감수성이 빚어내는 돌발 해프닝 덕분에 ‘원정기’는 유머가 관통하는 훈훈한 드라마로 포장됐다. 그러나 돈벌이용으로 맞선을 주선해주는 중개소, 또 다른 꿍꿍이로 한국행을 노리는 현지 여자들의 씁쓸한 풍경 사이로 영화는 라라의 신분을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다니는 탈북자로 노출시킴으로써 드라마의 갈등을 예고한다.
#현실에 발 디딘 ‘휴먼 멜로’
추상형 묘사가 아닌 구체적 사건을 통한 캐릭터들의 감정 진행, 사실주의적 기둥 소재를 통한 현실발언 덕분에 이 투박한 영화는 진정성이 넘쳐나는 휴먼멜로로 다듬어졌다. 에이즈에 걸린 여자의 실화로부터 최루성 멜로를 사뭇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킨 ‘내 운명’이 그랬듯 이 영화 역시 사실성 충만한 멜로(라라가 필사적으로 대사관 철문을 넘는 장면 등)로 거듭났다. 답답한 농촌현실과 탈북 문제가 교차한 드라마임에도 내내 유쾌하고 유연한 감수성으로 관객의 신경줄을 풀어 놓는다.
선명한 계몽적 메시지가 영화의 ‘태생적 촌티’를 차원높게 승화시키진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하지만 정재영, 수애, 놀랍도록 흡인력 있게 캐릭터를 소화한 유준상은 엄연한 흠집들을 가려줄 만큼 균형잡힌 연기를 선보였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5-11-1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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