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미디어와 영상미디어, 즉 문학과 영화의 상호교류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영상의 시대에 영화가 문학에서 상상력의 원천을 얻고, 소설이 영화적 기법을 차용하는 건 더이상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두 장르의 관계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여왔다. 영화가 적극적으로 문학을 끌어들인 반면 문학은 영화적 특성의 일부분을 소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온 게 사실.
‘문학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런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물꼬를 튼 곳은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출판사중 하나인 문학과지성사(문지)다. 지난 30년간 순수문학을 고수해온 문지가 최근 ‘색다른 실험’(혹자에겐 ‘무모한 모험’)을 시도했다. 중견 작가 김형경의 소설 ‘외출’이다. 새달 8일 개봉하는 허진호 감독, 배용준·손예진 주연의 영화와 같은 제목, 같은 줄거리다.
영화를 원작으로 한 소설의 출간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트렌드라고 할 만큼 이제 일반화됐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는 개봉전 책이 먼저 나왔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도 소설로 각색됐다. 이밖에 ‘남극일기’‘꽃피는 봄이 오면’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대다수 ‘영상소설’들은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들이 영화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을 채우는 보조 매체나 영화홍보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고, 문단은 이를 ‘문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설 ‘외출’은 영화 시나리오를 뼈대로 한 소설이 종속예술이 아닌 본격문학으로 재창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지의 김수영 주간은 “동일한 서사구조를 갖되 서로 다른 개성을 충분히 살려 문학과 영화가 만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물론 한국문학의 해외진출 돌파구로서의 역할도 염두에 뒀다.‘욘사마’ 배용준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 와니북스출판사와 초판 10만부 계약을 맺었다. 중국어, 영어로도 곧 번역출간된다. 국내에서도 초판 1만부에 이어 재판을 찍을 예정.
하지만 문지의 이런 실험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한류 열풍에 편승해 문학의 위기를 너무 손쉽게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서사의 독창성’을 두고 책 출간을 결정하기까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방현석 중앙대 교수는 “영화와 문학의 상호협력과 모방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이다. 문제는 진지한 미학적 성찰과 모색의 결과인지 얄팍한 상업적·대중적 관심에 편승한 것인지의 여부”라고 말했다.
‘영화의 소설화’와 더불어 시나리오를 문학 장르로 편입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계간지 ‘21세기문학’은 지난 여름호에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수록한 데 이어 가을호에 김기덕 감독의 ‘빈집’시나리오를 게재했다.
해외에선 우디 앨런의 작품 등이 본격문학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우리 문단에서는 도외시해 왔다.‘21세기문학’의 홍영철 발행인은 “독자가 없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다. 문학의 영역을 확대하는 측면에서 좋은 시나리오를 선별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영상이 소설을 압도하는 시대, 문학과 영상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길은 무엇일까. 앞의 두가지 시도가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문학 스스로 상업화의 진흙탕에 발을 내딛는 자멸 행위로 판명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작가 김형경
‘문학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런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물꼬를 튼 곳은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출판사중 하나인 문학과지성사(문지)다. 지난 30년간 순수문학을 고수해온 문지가 최근 ‘색다른 실험’(혹자에겐 ‘무모한 모험’)을 시도했다. 중견 작가 김형경의 소설 ‘외출’이다. 새달 8일 개봉하는 허진호 감독, 배용준·손예진 주연의 영화와 같은 제목, 같은 줄거리다.
영화를 원작으로 한 소설의 출간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트렌드라고 할 만큼 이제 일반화됐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는 개봉전 책이 먼저 나왔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도 소설로 각색됐다. 이밖에 ‘남극일기’‘꽃피는 봄이 오면’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대다수 ‘영상소설’들은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들이 영화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을 채우는 보조 매체나 영화홍보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고, 문단은 이를 ‘문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설 ‘외출’은 영화 시나리오를 뼈대로 한 소설이 종속예술이 아닌 본격문학으로 재창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지의 김수영 주간은 “동일한 서사구조를 갖되 서로 다른 개성을 충분히 살려 문학과 영화가 만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물론 한국문학의 해외진출 돌파구로서의 역할도 염두에 뒀다.‘욘사마’ 배용준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 와니북스출판사와 초판 10만부 계약을 맺었다. 중국어, 영어로도 곧 번역출간된다. 국내에서도 초판 1만부에 이어 재판을 찍을 예정.
하지만 문지의 이런 실험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한류 열풍에 편승해 문학의 위기를 너무 손쉽게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서사의 독창성’을 두고 책 출간을 결정하기까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방현석 중앙대 교수는 “영화와 문학의 상호협력과 모방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이다. 문제는 진지한 미학적 성찰과 모색의 결과인지 얄팍한 상업적·대중적 관심에 편승한 것인지의 여부”라고 말했다.
‘영화의 소설화’와 더불어 시나리오를 문학 장르로 편입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계간지 ‘21세기문학’은 지난 여름호에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수록한 데 이어 가을호에 김기덕 감독의 ‘빈집’시나리오를 게재했다.
해외에선 우디 앨런의 작품 등이 본격문학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우리 문단에서는 도외시해 왔다.‘21세기문학’의 홍영철 발행인은 “독자가 없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다. 문학의 영역을 확대하는 측면에서 좋은 시나리오를 선별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영상이 소설을 압도하는 시대, 문학과 영상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길은 무엇일까. 앞의 두가지 시도가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문학 스스로 상업화의 진흙탕에 발을 내딛는 자멸 행위로 판명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8-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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