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속 한자이야기] 野合(야합)
儒林(383)에는 ‘野合’(들 야/합할 합)이 나오는데, 이 말은 ‘夫婦(부부)가 아닌 男女(남녀)가 서로 情(정)을 통하거나 좋지 못한 목적(目的)으로 서로 어울림’을 뜻한다.‘野’의 原字(원자)는 ‘’(야)이다.‘’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과 거기에 세워놓은 ‘男根石(남근석)’의 모양을 본뜬 ‘ ’(두)를 합한 會意字(회의자)라는 설이 흥미롭다. 이 글자는 뒷날 밭(田)과 흙(土)을 합하고, 다시 音符(음부)에 속하는 ‘予’(여)를 더한 형태인 ‘野’로 바뀌었다.用例(용례)에는 ‘野心(야심: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下野(하야: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관직이나 정계에서 물러남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合’자는 뚜껑이 덮인 그릇 모양을 본뜬 것으로 ‘그릇’이 본래 의미였으나 점차 ‘서로 합하다’‘모이다’‘만나다’ 등과 같은 派生(파생)된 뜻이 더 널리 쓰였다.用例로는 ‘合格(합격:시험, 검사, 심사 따위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어떠한 자격이나 지위 따위를 얻음),談合(담합:서로 의논하여 합의함),意氣投合(의기투합: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음)’ 등이 있다.史記(사기)에 의하면 숙량흘(叔梁紇)은 안씨(顔氏)의 딸과 野合(야합)하여 孔子(공자)를 낳았다. 이때의 野合을 ‘正式(정식) 婚姻(혼인)을 하지 않은 두 남녀의 通情(통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唐代(당대)의 張守節(장수절)이 해석하는 野合은 의미가 다르다. 남자는 8개월이면 乳齒(유치)가 나고,8세에 永久齒(영구치)가 난다.8과 8을 합하면 16이 되는 바, 남자는 16세에 陽道(양도)가 형성되어 通(통)하다가,8과 8을 곱한 64세에 이르면 陽道(양도)가 消滅(소멸)한다. 여자는 생후 7개월 무렵부터 젖니가 나고,7세부터 영구치가 난다.7과 7을 더한 14세면 陰道(음도)가 通(통)하기 시작한다.7과 7을 곱한 49세에 이르면 陰道가 모두 斷絶(단절)된다. 이를 벗어난 연령의 婚姻(혼인)을 ‘野合’이라는 것이다.
신라 제 29대 太宗(태종:金春秋)과 金庾信(김유신)의 막내 누이 文姬(문희)도 野合에서 婚姻(혼인)으로 이어진다.文姬는 언니 寶姬의 꿈이 至尊(지존)을 孕胎(잉태)할 胎夢(태몽)이라고 보고 언니로부터 꿈을 샀다. 그로부터 열흘 뒤 김춘추는 유신과 놀다가 옷고름이 떨어졌다. 김춘추는 옷고름을 달기 위해 김유신의 집에 들렀고, 여기서 문희와 눈이 맞아 姙娠(임신)을 하고 말았다. 김춘추와 문희의 情分(정분) 所聞(소문)이 왕에게까지 이르렀다. 결국 두 사람은 婚事(혼사)를 서둘렀고, 둘 사이에서 난 아이가 훗날 三國統一(삼국통일)의 偉業(위업)을 이룬 文武王(문무왕)이다.
신라의 高僧(고승) 元曉(원효)와 瑤石公主(요석공주)의 野合도 흥미롭다. 이미 출가한 신분이었던 원효는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려나, 하늘 받칠 기둥을 깎아 보고싶구나’(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라는 노래를 읊조리고 다녔으나 그 뜻을 아는 이가 없었다. 태종(太宗)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瑤石宮(요석궁)에 홀로된 공주에게 원효를 불러들이게 하였다.宮吏(궁리)가 왕명을 받들고 원효를 찾아가니, 그는 蚊川橋(문천교)를 지나다가 일부러 물 속에 빠졌다. 요석궁으로 案內(안내)된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구실로 그곳에 留宿(유숙)하면서 공주와 운우의 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신라 十賢(십현)의 한사람인 薛聰(설총)이다.
김석제 경기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2005-07-23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