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때’ 벗겨내는 붓질 50년

‘마음의 때’ 벗겨내는 붓질 50년

입력 2005-05-30 00:00
수정 2005-05-30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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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을 하는 것은 마음의 때를 벗기는 작업이지요.(때를)벗기면 벗길수록 깨끗하고 진실한 작품이 나옵니다.”

‘만다라 작가’로 유명한 전성우(71) 화백. 올해 고희를 맞아 50년 그림 발자취를 뒤돌아 보는 자리를 갖고 있다.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불화(佛畵), 만다라. 그는 60년대 이후 줄곧 흑·공간·색동·광배 만다라 등 만다라 시리즈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왔다.90년 이후 최근까지는 조선시대 청화백자의 기품에 영감을 받아 청화 만다라를 선보이고 있다. 동양정신을 서구의 추상표현 기법으로 담아낸 그의 독창적인 추상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세계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간송 전형필. 전 화백은 일제시대 국보와 보물 등의 문화재를 두루 수집,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아낸 간송의 아들이다. 간송의 정확한 소장품 목록은 지금도 베일에 싸여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화백은 “‘귀한 땅을 팔아 사금파리를 사는 미치광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부친의 소장품을 6·25때 북측이 가져 가려고 나무상자에 담아놨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측이 그대로 두고 떠나 소장품이 살아 남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 차를 한대 내줘 부산으로 무사히 피란갔으며 소장품이 있는 부산 창고를 매일 밤 지키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서울 환도 후 그곳 부산창고가 1주일 만에 불이 나 소장품을 다 잃을 뻔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 남은 간송의 소장품들은 이제 간송미술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아버님은 영원히 못 올라갈 산과 같다.”는 전 화백에게 소장품을 팔라는 유혹이 없느냐는 질문에 “우리(자손)들은 건드리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이 각인돼 있다.”고 잘라 말했다.

부친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유화세트를 사주면서 시작된 그의 그림 그리기는 부산 피란 시절 서울대 미대를 다니다 19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추상표현주의를 접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 유학중 시애틀 인근의 무인도에서 3개월 동안 혼자 생활하며 작품활동을 한 후 그는 독자적인 자신의 예술영역인 ‘만다라 세계’로 가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가 50년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볼스화랑과 전속계약을 맺고 판매한 180여점의 작품 중 20여점을 수소문 끝에 찾아내 보여줘 전 화백의 초기 화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50년대 작품이 다시 돌아온 것은 잃어버린 아들을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이제 미국에서 팔려 나갔던 자신의 젊은 시절 작품들을 애틋하게 되찾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됐다.

현재 그는 간송미술관장이자 보성중·고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6월19일까지 가나아트센터.(02)3217-0233.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2005-05-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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