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메마르고 각박해질수록 그 소중함이 빛나는 건 가정이요 가족이다. 내가 실패를 해도,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해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가정이 아닐까. 자고 나면 생활고로 인한 자살, 부모·형제를 해하는 패륜범죄 소식이 마음을 얼어붙게 하지만, 그래도 지친 현대인의 마지막 피난처는 여전히 가정이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 무심코 지내다가도 이때쯤이 되면 한번쯤 자신을 둘러싼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 가정의 소중함, 가족의 진정성을 주제로 한 책이 많이 나왔다.
먼저 사랑합니다, 내게 하나뿐인 당신(옹기장이 펴냄,1만800원)은 ‘미치도록 사무치고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이다. 기억의 주인들은 김수환 김점선 손숙 이윤택 이철수 이홍렬 장경수 정동영 주철환 최완수 최윤 한승원 홍신자 등 13인. 성직자에서 소설가, 화가, 방송인, 정치인까지 다양하다. 순종과 반항, 조화와 갈등이 점철된 기억의 스펙트럼 또한 모두 다르지만, 결국 이야기의 매듭은 ‘지금의 나를 키운 것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는 것이다.
소설가 한승원의 아버지 기억은 폐부 깊숙이 찌르는 ‘통회(痛悔)’의 기억이다. 고교 졸업후 시골 아버지를 도와 농사와 바다일을 하던 그는 ‘머슴살이’하듯 살림살이를 이끌었다. 살림이 어려웠던 그때 아버지는 이발비도 주지 않고 직접 가위로 아들의 머리를 잘라 주었다. 거울에 비쳐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던지, 그는 울분이 끓어올라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어버렸다. 한데 후일 아버지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를 통회케 한 것은, 호통 한마디 없이 민머리를 하고 있는 아들을 애써 외면하시던 모습이었다.
한승원은 ‘부부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면 환장하게 좋은 일들만 새록새록 떠올라 목 놓아 슬피 울고, 부모 자식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면 궂은 일들만 굽이굽이 떠올라 통회(痛悔)하면서 운다.’고 했다.
글 속의 저자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코흘리개 아이가 되기도 하고,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 소녀가 되기도 한다. 부모는 글만 겨우 깨우친 무학의 부모이기도 하고, 지식인 아버지, 손 귀한 집안의 외며느리 등 다양하지만,‘자식’이라는 나무에 거름을 주며 성장하도록 이끈, 빛나는 가르침을 준다.
열두 편의 가슴시린 편지(행복공작소 펴냄,9500원)는 가난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애틋한 기억을 모은 책이다.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 시인 도종환, 조류학자 원병오, 부총리를 지낸 한상완 등 12명이 ‘아들의 아버지’‘딸의 아버지’‘딸의 어머니’‘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가슴 시린 사연을 풀어놓았다. 고국의 자식을 버리고 일본에서 가정을 이루어 살다가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 유해를 10년 만에 모셔오며 “아버지 가십시다…. 이제 바지게를 받쳐 두시고 어머니와 함께 손을 모아달라.”고 외치는 정채봉. 아들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분단시대의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아들을 키워낸 이야기를 풀어냈던 농사꾼 아버지의 연설이 가슴을 쳤다는 시인 도종환. 각기 사람과 사연은 다르지만, 그 참혹한 가난의 강을 건너게 했던 힘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두 책이 과거의 기억을 통해 가족의 진정성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면 모녀지정(김선미 지음, 북라인펴냄,9000원)은 이 시대의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조명한 책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예전처럼 어머니가 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 하지도 않고, 딸도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애써 벼르지도 않는, 요즘의 모녀는 한결 부드럽고 편안한 관계다.
책에서 소개하는 20인의 어머니와 딸은 이같은 우리시대 모녀관계를 크로키하듯 발빠르게 그려나간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조한혜정과 딸 전주원, 연극배우 박정자와 딸 이연수, 발레리나 강수진과 어머니 구근모 등. 처한 상황은 달라도 이들 어머니와 딸들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속에 그대로 투영되고, 종종 잊고 살지만 문득문득 깨닫는 것이 바로 모녀지정임을 일깨워준다.
■ 가족의 소중함 일깨우는 기타 책들
가족의 비밀(세르주 티스롱 지음, 정재곤 옮김, 궁리 펴냄) 가족간에 존재하는 비밀이 어떤 것이며, 비밀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정신분석학자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본 책이다. 가족의 비밀은 아이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며, 세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성장·대화·정신장애를 겪게 하기 때문에, 비밀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9800원.
불량가족, 희망여행을 떠나다(대니얼 글릭 지음, 정명진 옮김, 세종서적 펴냄) 마흔다섯살에 상상치도 못한 이혼을 당하고 형이 암으로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가장이 아이들과 함께 150일간 희망을 찾아 세계 생태여행을 떠난다. 아빠와 아이들은 지구 곳곳에서 위기에 처한 희귀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잃어버렸던 대화를 되찾고, 아내와 엄마를 이해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빠의 따뜻한 시선 속에 아름다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1만500원.
아버지 자리찾기(자녀사랑을 실천하는 아버지 모임 엮음, 뜨인돌 펴냄) 가정이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일깨워준다.‘아이를 안을 때는 왼쪽가슴으로 안자’‘한 달에 한 번씩 영화나 연극 등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자’‘서로 등을 밀어주자’ 등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실천할 수 있는 제안들을 담았다.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먼저 사랑합니다, 내게 하나뿐인 당신(옹기장이 펴냄,1만800원)은 ‘미치도록 사무치고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이다. 기억의 주인들은 김수환 김점선 손숙 이윤택 이철수 이홍렬 장경수 정동영 주철환 최완수 최윤 한승원 홍신자 등 13인. 성직자에서 소설가, 화가, 방송인, 정치인까지 다양하다. 순종과 반항, 조화와 갈등이 점철된 기억의 스펙트럼 또한 모두 다르지만, 결국 이야기의 매듭은 ‘지금의 나를 키운 것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는 것이다.
소설가 한승원의 아버지 기억은 폐부 깊숙이 찌르는 ‘통회(痛悔)’의 기억이다. 고교 졸업후 시골 아버지를 도와 농사와 바다일을 하던 그는 ‘머슴살이’하듯 살림살이를 이끌었다. 살림이 어려웠던 그때 아버지는 이발비도 주지 않고 직접 가위로 아들의 머리를 잘라 주었다. 거울에 비쳐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던지, 그는 울분이 끓어올라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어버렸다. 한데 후일 아버지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를 통회케 한 것은, 호통 한마디 없이 민머리를 하고 있는 아들을 애써 외면하시던 모습이었다.
한승원은 ‘부부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면 환장하게 좋은 일들만 새록새록 떠올라 목 놓아 슬피 울고, 부모 자식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면 궂은 일들만 굽이굽이 떠올라 통회(痛悔)하면서 운다.’고 했다.
글 속의 저자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코흘리개 아이가 되기도 하고,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 소녀가 되기도 한다. 부모는 글만 겨우 깨우친 무학의 부모이기도 하고, 지식인 아버지, 손 귀한 집안의 외며느리 등 다양하지만,‘자식’이라는 나무에 거름을 주며 성장하도록 이끈, 빛나는 가르침을 준다.
열두 편의 가슴시린 편지(행복공작소 펴냄,9500원)는 가난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애틋한 기억을 모은 책이다.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 시인 도종환, 조류학자 원병오, 부총리를 지낸 한상완 등 12명이 ‘아들의 아버지’‘딸의 아버지’‘딸의 어머니’‘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가슴 시린 사연을 풀어놓았다. 고국의 자식을 버리고 일본에서 가정을 이루어 살다가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 유해를 10년 만에 모셔오며 “아버지 가십시다…. 이제 바지게를 받쳐 두시고 어머니와 함께 손을 모아달라.”고 외치는 정채봉. 아들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분단시대의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아들을 키워낸 이야기를 풀어냈던 농사꾼 아버지의 연설이 가슴을 쳤다는 시인 도종환. 각기 사람과 사연은 다르지만, 그 참혹한 가난의 강을 건너게 했던 힘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두 책이 과거의 기억을 통해 가족의 진정성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면 모녀지정(김선미 지음, 북라인펴냄,9000원)은 이 시대의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조명한 책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예전처럼 어머니가 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 하지도 않고, 딸도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애써 벼르지도 않는, 요즘의 모녀는 한결 부드럽고 편안한 관계다.
책에서 소개하는 20인의 어머니와 딸은 이같은 우리시대 모녀관계를 크로키하듯 발빠르게 그려나간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조한혜정과 딸 전주원, 연극배우 박정자와 딸 이연수, 발레리나 강수진과 어머니 구근모 등. 처한 상황은 달라도 이들 어머니와 딸들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속에 그대로 투영되고, 종종 잊고 살지만 문득문득 깨닫는 것이 바로 모녀지정임을 일깨워준다.
■ 가족의 소중함 일깨우는 기타 책들
가족의 비밀(세르주 티스롱 지음, 정재곤 옮김, 궁리 펴냄) 가족간에 존재하는 비밀이 어떤 것이며, 비밀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정신분석학자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본 책이다. 가족의 비밀은 아이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며, 세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성장·대화·정신장애를 겪게 하기 때문에, 비밀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9800원.
불량가족, 희망여행을 떠나다(대니얼 글릭 지음, 정명진 옮김, 세종서적 펴냄) 마흔다섯살에 상상치도 못한 이혼을 당하고 형이 암으로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가장이 아이들과 함께 150일간 희망을 찾아 세계 생태여행을 떠난다. 아빠와 아이들은 지구 곳곳에서 위기에 처한 희귀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잃어버렸던 대화를 되찾고, 아내와 엄마를 이해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빠의 따뜻한 시선 속에 아름다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1만500원.
아버지 자리찾기(자녀사랑을 실천하는 아버지 모임 엮음, 뜨인돌 펴냄) 가정이라는 소중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일깨워준다.‘아이를 안을 때는 왼쪽가슴으로 안자’‘한 달에 한 번씩 영화나 연극 등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자’‘서로 등을 밀어주자’ 등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실천할 수 있는 제안들을 담았다.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5-05-07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