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 덮어라”

“그리스·로마신화 덮어라”

입력 2005-03-31 00:00
수정 2005-03-3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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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의 세계는 실로 다양하고 광대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다보니 최근 몇 년간 책도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반면 외래신화에 대한 이같은 몰입 이면에 숨은 우리 신화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졌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몇 편의 문헌신화가 전부인양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구전신화라는 방대한 신화의 세계가 존재한다. 다만 이를 제대로 수집해 체계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 이같은 관점에서 조각난 우리 구전신화를 온전한 신화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구전신화의 세계’(지식산업사)를 낸 국립민속박물관의 학예연구관 권태효(41) 박사를 만났다.


“우리 구전신화는 엄청나고 방대합니다. 거인에 의한 우주창조 및 지형창조, 홍수에 의한 종말 뒤 새로운 인류의 시작, 인간에게 집 짓는 법을 알려주는 문화영웅, 죽음의 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신의 이야기, 신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등이 구전신화에 담겨 있지요. 다만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구전되다 보니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면서 지나쳤을 따름입니다.”

“조각난 우리 구전신화 체계화”

권 연구관은 대표적인 것으로 무당들이 전승해온 무속신화를 꼽는다. 무속신화 속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비롯해 인간에게 복과 풍요, 수명을 내려주는 신 등 그 직능별로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는 것. 그러나 기록되지 않고 말로만 전해지다 보니 조각난 신화가 많고, 본래의 모습이나 성격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도 적지 않다. 때문에 구전신화의 온전한 모습을 찾아주기 위해선 찢겨져 나간 책을 이리저리 꿰맞춰서 읽듯 신화 조각들을 펼쳐놓고 하나씩 자리를 잡아주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구전신화의 세계’는 이처럼 조각난 구전신화 자료들의 본래 성격을 찾아 그 자리매김을 해주고, 우리 신화를 짜임새 있게 정리하기 위한 전단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제주도와 함경도에서 전승되는 무속신화를 대상으로 신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이되는지 그 양상을 다루었다.

“무속 중심으로 생명·변이 다뤄”

권 연구관은 우리 신화가 홀대받아온 이유에 대해 “역사적으로 유학자들이 신화를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해 연구를 기피한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 구전신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속신화인데, 무속을 천시했던 의식이 그 속의 신화마저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구전신화는 예전보다도 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며 “굿판이나 이야기판을 비롯한 전승의 현장을 찾아 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이런 보존이라는 측면과는 다른 각도로 우리 신화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신화집 정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우리 신화 전반을 체계적인 구성으로 아우르는, 세계 어느 나라의 신화집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 신화집을 완성하는 것. 바로 우리 신화 연구의 귀결점이자, 권 연구관의 목표이기도 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5-03-3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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