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건물’들 화장실·비상구는 ‘흡연 해방구’

‘금연건물’들 화장실·비상구는 ‘흡연 해방구’

입력 2005-01-28 00:00
수정 2005-01-2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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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건물은 모든 구역이 금연지역입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흡연을 절대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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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금연 건물인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
27일 금연 건물인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 27일 금연 건물인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모습. 금연구역 표지판 앞에서조차 공공연하게 흡연이 이뤄지고 있다.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27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6층 복도. 금연건물이란 것을 알리는 ‘국회 의원회관 관리담당’ 명의의 금연 표지판이 무색할 정도로 주위는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연구역 흡연은 단속 대상이지만, 정작 법률을 만들어낸 국회에서는 금연지역에서도 공공연하게 흡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금연지역 흡연을 한차례 집중 단속했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자 올들어 다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국회 금연건물에서도 버젓이 흡연

한 의원실 여직원은 “비나 눈이 와서 창문을 닫아놓기라도 하면 복도는 온통 뿌연 연기로 가득하다.”면서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에서 현행법을 어기는 아이러니에 가끔 한심한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경찰이 국회로 들어와 흡연을 단속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의원회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보좌관은 “지난해 국회 조사 결과 국회의원의 17%, 사무처 남성 직원의 41%가 흡연자로 나타났다.”면서 “그러나 의사당과 의원회관 모두 금연시설임에도 건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대형 화재 위험에도 담배꽁초 곳곳에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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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건물.‘연면적 2000㎡ 이상의 복합건물에 300석 이상 공연장을 갖춘 곳’으로 지난해 건물 전체가 금연시설로 지정됐다.

하지만 백화점이 같은 건물에 들어 있고, 지하철역과 가까워 유동인구가 많은 탓인지 비상구 계단 등 건물 곳곳은 담배 자국으로 거뭇거뭇했다. 건물관리소측이 바닥타일도 갈고 도색도 다시 해봤지만 2∼3일만 지나면 다시 지저분해진다고 하소연했다.

화재의 위험 때문에 경비원과 관리직원 50여명이 흡연자 감시에 나서고 있지만 담뱃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호소했다. 시설관리를 맡고 있는 윤모(41)씨는 “잠시 건물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시민의식이 아쉽다.”고 말했다.

흡연실도 무용지물

흡연실을 따로 설치한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도 사정은 비슷했다. 환경미화원 김인식(61)씨는 “멀쩡한 흡연실 놔두고 왜 엉뚱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도통 모르겠다.”면서 “이젠 싸우기도 지쳤다.”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가 들고 있는 쓰레받기에는 100개가 넘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터미널측은 한쪽에 4평 남짓한 흡연실을 마련했지만, 그나마 여성흡연자는 갈 곳이 없다. 조모(25·여)씨는 “여성흡연자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화장실같이 외진 곳을 찾는다.”고 털어놓았다. 신도림역이나 영등포역·용산역 등 지상에 승강장이 있는 지하철 역사도 금연구역이지만, 흡연을 즐기는 시민은 줄지 않고 있다.

경찰,“가장 난감한 것이 흡연신고”

경찰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거리질서 확립차원에서 금연장소의 흡연을 집중 단속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2년 당시 흡연단속은 86만 7000건이 넘었다. 하지만 단속이 느슨해지면서 2003년 15만여건,2004년 8만 5000여건으로 적발 건수가 크게 줄었다.

용산역 일대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흡연 신고는 회피 대상 1호”라고 귀띔했다. 그는 “방금 피우고도 안 피웠다고 우기면 난감해진다.”면서 “노인들을 단속하다가 한바탕 호통을 듣는가 하면,‘왜 함정단속을 하느냐.’는 핀잔도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2005-01-2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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