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들 이제 조용히 해주세요.학교밖 사람들과 차가 앵글에 들어오네요.빨리 통제해줘요.…”
지난 4일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의 촬영현장인 경기 부천시 도원초등학교 운동장.리허설이지만 실제 녹화 못지않게 분위기가 자못 진지하다.눈내린 장면을 연출하느라 연신 소금을 뿌려대는 스태프들은 촬영지가 주택가인지라 신경을 곤두세운다.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에,길가의 자동차와 행인들을 막으랴,불청객처럼 터지는 소리를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생활의 발견’까지 일상성에서 독창적 디테일을 포착하는 데 솜씨를 보여준 홍상수감독은 “일어 설 때 바짝 붙어!”라며 주연 유지태의 동선을 고쳐주는가 하면 “너무 조용해 움직임이 없다.”며 단역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점검한다.생각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은 듯 줄담배를 피우면서 촬영을 거듭한 끝에 리허설을 끝냈다.
지난해 9월10일 크랭크인 한 뒤 10일 크랭크업을 앞둔 ‘여자는…’은 홍감독의 5번째 영화.7년만에 재회한 대학 선후배인 현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가 이전에 시차를 두고 사랑했던 선화(성현아)를 회상하다가 찾아가서 만나는 과정을 다룬다.같은 여인을 회상·현재·상상 속의 모습 등 다양하게 변주한다.
이날 촬영신은 선화가 운영하는 칵테일바에서 밤새 술을 마신 현준과 문호가 약수터로 올라가다가,문호가 축구하러 온 제자들을 운동장에서 만나 잠깐 백일몽에 빠진 뒤 깨어나는 장면이다. 1시간 남짓한 리허설을 마치고 녹화에 들어가기 전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돈다.철봉에 눈이 없다는 촬영팀과 “땅이 너무 깨끗해 눈은 그만 뿌리고 흙색이 나오게 좀 해달라.”는 감독의 주문이 이어진 뒤 슛에 돌입하려는 찰라 헬기가 출현했다.굉음이 가시길 기다리는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슛에 들어갔다.무사히 끝나나 싶었는데 저쪽 끝에 누군가 지나갔다는 스태프의 지적에 홍감독은 다시 한번 하자고 다독였고,결과는 다행히 “OK”사인.하지만 같은 장면을 그늘에서도 찍고 비교할 요량인 만큼 반만 끝난 셈이다.잠시 쉬는 동안 만난 홍감독은 그날그날 시나리오를 쓰는 특유의 방식에 대해서 “현장 분위기를 촉발해서 좋다.”며 여유를 보인다.
이어진 두번 째 슛.유지태는 “막 깨어난 보슬보슬한 느낌을 연기하라.”는 주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걸어간다.다시 찍은 장면을 보면서 “54초에 끊자.OK입니다.”라는 홍감독의 사인이 떨어진다.54초의 분량을 찍느라 2시간을 매달렸던 배우들과 스태프 사이에서 “와!”하는 환호성이 이어진다.안도의 한숨도 잠시.바로 ‘무시무시한’ 현장총괄 스태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내일 아침 촬영은 8시입니다.시간 맞춰 나오세요.”
이종수기자
거꾸로 가는 남자 유지태
“독특한 영상미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주는 홍상수 감독님의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처음엔 힘들었지만 갈수록 상투적 연기를 피할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유지태(28)는 또다시 연기변신에 나서는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20년의 시차를 둔 사랑에 설레거나(‘동감’),사랑의 아픔에 힘겨워하는가하면(‘봄날은 간다’),복수의 화신이 되기도 하는(‘올드 보이’) 등 연기폭을 넓혀온 그가 ‘여자는…’에서 보여줄 역할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진지한 성격의 대학강사.함께 출연하는 김태우가 “지금껏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사변적이고 묵직한 역을 소화하느라 몸무게를 20Kg이나 늘렸다.
그러나 카메라가 멈추고 난 촬영장에서는 막내같다.리허설 장면을 찍은 녹화필름을 보다가 “노숙자 같다.”고 말해 웃음을 번지게 하거나 자신의 대사 장면을 보면서 연신 소리내 웃으며 팽팽하게 당겨진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든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욕심은 남 못지않다.“감독님과 생각이 다르면 주저없이 말하는 ‘야당 성격’”이라고 자평한다.이어 “그렇다고 홍감독님이 작품에 반영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성현아나 김태우처럼 “꼭 한번은 홍감독과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참여 동기를 들려줄 정도로 ‘홍상수 마니아’배우의 하나다.
이종수기자 vielee@
꿈결같은 여자 성현아
“이제 다음 영화는 무슨 재미로 찍죠?”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 성현아(30).아직도 촬영해야 할 분량이 적지않게 남아있지만,극중 ‘선화’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벌써부터 서운한 듯했다.그만큼 ‘선화’역에 푹 빠져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내가 과거에 ‘선화’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공감하며 촬영에 임했다.”면서 “연기자로서의 경력에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역할”이라며 활짝 웃었다.
‘보스상륙작전’이후 2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녀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믿음 하나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어떤 역할인지,작품 내용은 또 어떤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평소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감독님의 작품 모두를 좋아했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꼭 출연하고 싶었죠.”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과거와 현재,미래를 넘나들고 문호(유지태)와 헌준(김태우) 사이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면서도 “내 습성·말투 하나하나를 극중 캐릭터에 그대로 살려주는 감독님 덕택에 시간이 갈수록 역할을 소화하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고 다시 홍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이영표기자 tomcat@
지난 4일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의 촬영현장인 경기 부천시 도원초등학교 운동장.리허설이지만 실제 녹화 못지않게 분위기가 자못 진지하다.눈내린 장면을 연출하느라 연신 소금을 뿌려대는 스태프들은 촬영지가 주택가인지라 신경을 곤두세운다.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에,길가의 자동차와 행인들을 막으랴,불청객처럼 터지는 소리를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생활의 발견’까지 일상성에서 독창적 디테일을 포착하는 데 솜씨를 보여준 홍상수감독은 “일어 설 때 바짝 붙어!”라며 주연 유지태의 동선을 고쳐주는가 하면 “너무 조용해 움직임이 없다.”며 단역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점검한다.생각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은 듯 줄담배를 피우면서 촬영을 거듭한 끝에 리허설을 끝냈다.
지난해 9월10일 크랭크인 한 뒤 10일 크랭크업을 앞둔 ‘여자는…’은 홍감독의 5번째 영화.7년만에 재회한 대학 선후배인 현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가 이전에 시차를 두고 사랑했던 선화(성현아)를 회상하다가 찾아가서 만나는 과정을 다룬다.같은 여인을 회상·현재·상상 속의 모습 등 다양하게 변주한다.
이날 촬영신은 선화가 운영하는 칵테일바에서 밤새 술을 마신 현준과 문호가 약수터로 올라가다가,문호가 축구하러 온 제자들을 운동장에서 만나 잠깐 백일몽에 빠진 뒤 깨어나는 장면이다. 1시간 남짓한 리허설을 마치고 녹화에 들어가기 전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돈다.철봉에 눈이 없다는 촬영팀과 “땅이 너무 깨끗해 눈은 그만 뿌리고 흙색이 나오게 좀 해달라.”는 감독의 주문이 이어진 뒤 슛에 돌입하려는 찰라 헬기가 출현했다.굉음이 가시길 기다리는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슛에 들어갔다.무사히 끝나나 싶었는데 저쪽 끝에 누군가 지나갔다는 스태프의 지적에 홍감독은 다시 한번 하자고 다독였고,결과는 다행히 “OK”사인.하지만 같은 장면을 그늘에서도 찍고 비교할 요량인 만큼 반만 끝난 셈이다.잠시 쉬는 동안 만난 홍감독은 그날그날 시나리오를 쓰는 특유의 방식에 대해서 “현장 분위기를 촉발해서 좋다.”며 여유를 보인다.
이어진 두번 째 슛.유지태는 “막 깨어난 보슬보슬한 느낌을 연기하라.”는 주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걸어간다.다시 찍은 장면을 보면서 “54초에 끊자.OK입니다.”라는 홍감독의 사인이 떨어진다.54초의 분량을 찍느라 2시간을 매달렸던 배우들과 스태프 사이에서 “와!”하는 환호성이 이어진다.안도의 한숨도 잠시.바로 ‘무시무시한’ 현장총괄 스태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내일 아침 촬영은 8시입니다.시간 맞춰 나오세요.”
이종수기자
거꾸로 가는 남자 유지태
“독특한 영상미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주는 홍상수 감독님의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처음엔 힘들었지만 갈수록 상투적 연기를 피할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유지태(28)는 또다시 연기변신에 나서는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20년의 시차를 둔 사랑에 설레거나(‘동감’),사랑의 아픔에 힘겨워하는가하면(‘봄날은 간다’),복수의 화신이 되기도 하는(‘올드 보이’) 등 연기폭을 넓혀온 그가 ‘여자는…’에서 보여줄 역할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진지한 성격의 대학강사.함께 출연하는 김태우가 “지금껏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사변적이고 묵직한 역을 소화하느라 몸무게를 20Kg이나 늘렸다.
그러나 카메라가 멈추고 난 촬영장에서는 막내같다.리허설 장면을 찍은 녹화필름을 보다가 “노숙자 같다.”고 말해 웃음을 번지게 하거나 자신의 대사 장면을 보면서 연신 소리내 웃으며 팽팽하게 당겨진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든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욕심은 남 못지않다.“감독님과 생각이 다르면 주저없이 말하는 ‘야당 성격’”이라고 자평한다.이어 “그렇다고 홍감독님이 작품에 반영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성현아나 김태우처럼 “꼭 한번은 홍감독과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참여 동기를 들려줄 정도로 ‘홍상수 마니아’배우의 하나다.
이종수기자 vielee@
꿈결같은 여자 성현아
“이제 다음 영화는 무슨 재미로 찍죠?”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 성현아(30).아직도 촬영해야 할 분량이 적지않게 남아있지만,극중 ‘선화’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벌써부터 서운한 듯했다.그만큼 ‘선화’역에 푹 빠져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내가 과거에 ‘선화’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공감하며 촬영에 임했다.”면서 “연기자로서의 경력에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역할”이라며 활짝 웃었다.
‘보스상륙작전’이후 2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녀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믿음 하나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어떤 역할인지,작품 내용은 또 어떤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평소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감독님의 작품 모두를 좋아했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꼭 출연하고 싶었죠.”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과거와 현재,미래를 넘나들고 문호(유지태)와 헌준(김태우) 사이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면서도 “내 습성·말투 하나하나를 극중 캐릭터에 그대로 살려주는 감독님 덕택에 시간이 갈수록 역할을 소화하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고 다시 홍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이영표기자 tomcat@
2004-01-09 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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