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개정안이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도입하는 시점에서 ‘가족이란인가?’‘가족해체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누구와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답한다.“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라.”다양함이라.이들은 ‘이론’이 아닌,생생한 자신들의 이야기로 ‘현실’을 이야기한다.보통사람들에겐 ‘진보적’이란 말을 듣고 20대 여성들에게선 ‘계몽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는다는 이들을 만났다.조형,조한혜정,조옥라,박혜란,이상화,정진경 등 50대의 페미니스트들의 실제 모습을 살그머니 들여다볼 수 있는 책 ‘또하나의 문화’ 17권이 나온 이래 이들은 “페미니스트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듣는단다.
●정상 가족은 없다
이들은 우선 ‘정상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 보였다.그렇다고 페미니스트 가정은 온통 ‘비정상’이라고 지레 단언하는 것은 곤란하다.이들은 가족은 출세할 아이를 기르려는 ‘어머니 CEO’들의 투자 회사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건강한가족 관계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가능해진다.’고 말하며,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혼한 부모를 가졌고,재혼한 부모를 가진 현실에서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안에 들어와 있는 현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해서 아이들을 스스로 피해자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늘 45살에 결혼하겠다.”고 말했던 서강대 조옥라 교수는 정말 40대 중반에 결혼해 10년간 결혼 생활을 했다.아이가 셋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그는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 새엄마이지 엄마일 수는 없다.”고 선언하듯 말하고 시간을 두고 친해지자고 말했다.이런 직설법은 남편은 불편하게 했지만,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자살하지 않으면 탈영하겠다.’는 위협을 달고 군복무를 해 새엄마를 힘들게했던 아들,결혼한 후 여성으로서 고민을 털어놓는 딸은 아버지보다는 오히려 새엄마와 이야기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낸다.
34살에 결혼해서 아이없이 살고 있다는 정진경 씨는 “남자 친구가 좋아서 결혼했고,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나 꼭 낳기위해 병원을 다니지 않았다.대개 아이가 생기면서 부부생활이 달라진다는데 우리는 달라질 기회가 없어서 변함없이 대화를 많이 하며 산다.”고 말했다.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
결코 이혼을 당연시하거나,장려한다는 말은 아니다.50대 부부 중에는 ‘자식이,특히 딸이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살겠다는 부부가 많다.
결혼 20∼30년 후 다시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감성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부부 관계의 질을 한결 높여주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다소 급진적인 견해같지만 “20년이 지난 후 헤어질지 말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을 전제로 결혼하면 20대의 결혼도 한결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는 말에 여성들은 긍정적이다.
여성학자란 사실보다 세아들을 모두 유명 대학에 입학시킨 것으로 더 유명해 쑥스럽다는 박혜란씨.그는 “20대에 연애해서 결혼해 전업 주부로 살다가 39살에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날더러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들 말한다.이 말에는 페미니스트는 불행하다는 편견이 담겨있는 틀린 말이지만.어쨌든 그런 나 역시 아이가 모두 떠난 후 남편과의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요즘 남편이 중국에 가 있으니 우리는 전화로 재미있게 대화하지만 함께 있을 때는 시큰둥해지게 마련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화여대 조형 교수는 “20대의 나는 결혼에 대해 양극의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결혼 안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과 만일 결혼한다면 고전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이룰 것이란 두 가지 생각.미국 유학중 결혼했지만 ‘함께 사는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워’ 결국 먼저 귀국함으로써 별거가 시작됐고,20년이나 지난 후 이혼했다고 그는 ‘어렵게’ 사생활을 밝혔다.“그 시절에 헤어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고,내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최후의 결정을 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느리에게 ‘아들을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앞으로 10년 정도 함께 살 여자친구를 구해놨다고 밝혔다.
●가족 관계의 무거움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친정 부모와 한 건물의 아래위층에서 살았다면서 50대인 자신이 아직도 노모의 ‘치명적인 모정’에 짜증날 때가 있다고 말했다.“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나 그런 것 잘못하는 사람이고,우리 엄마에게는 정작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도 없는데….아마 기존 관계가 주는 무거움과 부담 때문에 더 부모에게는 잘못하는 것같다.”고 말했다.한편 여성학자는 딸에게 뭐라고 결혼을 권할까.“살아보니 애를 낳고 키우는 그 시기가 무척 좋은 시간이더라.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평생 어쩌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고,20년 과제로 생각하고 관계의 나무를 함께 키워갈 사람,아이를 낳고 함께 기를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하지 않은 채 여자친구와 그의 딸,자신의 제자 등 50대 여성 2명과 20대,30대 여성들이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화여대 이상화 교수는 자신의 ‘가족’을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주거 공동체’로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못박았다.“가족은 지원체계다.”는 그는 서로 사랑하고 돕고 사는데 정작 ‘큰 아이’인 제자가 수술을 하게 됐을 때 가족인 세 사람은 아무도 ‘보호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며 “우리는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글 허남주기자 hhj@
사진 도준석기자 pado@
●정상 가족은 없다
이들은 우선 ‘정상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 보였다.그렇다고 페미니스트 가정은 온통 ‘비정상’이라고 지레 단언하는 것은 곤란하다.이들은 가족은 출세할 아이를 기르려는 ‘어머니 CEO’들의 투자 회사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건강한가족 관계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가능해진다.’고 말하며,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혼한 부모를 가졌고,재혼한 부모를 가진 현실에서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안에 들어와 있는 현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해서 아이들을 스스로 피해자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늘 45살에 결혼하겠다.”고 말했던 서강대 조옥라 교수는 정말 40대 중반에 결혼해 10년간 결혼 생활을 했다.아이가 셋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그는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 새엄마이지 엄마일 수는 없다.”고 선언하듯 말하고 시간을 두고 친해지자고 말했다.이런 직설법은 남편은 불편하게 했지만,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자살하지 않으면 탈영하겠다.’는 위협을 달고 군복무를 해 새엄마를 힘들게했던 아들,결혼한 후 여성으로서 고민을 털어놓는 딸은 아버지보다는 오히려 새엄마와 이야기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낸다.
34살에 결혼해서 아이없이 살고 있다는 정진경 씨는 “남자 친구가 좋아서 결혼했고,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나 꼭 낳기위해 병원을 다니지 않았다.대개 아이가 생기면서 부부생활이 달라진다는데 우리는 달라질 기회가 없어서 변함없이 대화를 많이 하며 산다.”고 말했다.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
결코 이혼을 당연시하거나,장려한다는 말은 아니다.50대 부부 중에는 ‘자식이,특히 딸이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살겠다는 부부가 많다.
결혼 20∼30년 후 다시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감성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부부 관계의 질을 한결 높여주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다소 급진적인 견해같지만 “20년이 지난 후 헤어질지 말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을 전제로 결혼하면 20대의 결혼도 한결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는 말에 여성들은 긍정적이다.
여성학자란 사실보다 세아들을 모두 유명 대학에 입학시킨 것으로 더 유명해 쑥스럽다는 박혜란씨.그는 “20대에 연애해서 결혼해 전업 주부로 살다가 39살에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날더러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들 말한다.이 말에는 페미니스트는 불행하다는 편견이 담겨있는 틀린 말이지만.어쨌든 그런 나 역시 아이가 모두 떠난 후 남편과의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요즘 남편이 중국에 가 있으니 우리는 전화로 재미있게 대화하지만 함께 있을 때는 시큰둥해지게 마련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화여대 조형 교수는 “20대의 나는 결혼에 대해 양극의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결혼 안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과 만일 결혼한다면 고전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이룰 것이란 두 가지 생각.미국 유학중 결혼했지만 ‘함께 사는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워’ 결국 먼저 귀국함으로써 별거가 시작됐고,20년이나 지난 후 이혼했다고 그는 ‘어렵게’ 사생활을 밝혔다.“그 시절에 헤어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고,내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최후의 결정을 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느리에게 ‘아들을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앞으로 10년 정도 함께 살 여자친구를 구해놨다고 밝혔다.
●가족 관계의 무거움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친정 부모와 한 건물의 아래위층에서 살았다면서 50대인 자신이 아직도 노모의 ‘치명적인 모정’에 짜증날 때가 있다고 말했다.“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나 그런 것 잘못하는 사람이고,우리 엄마에게는 정작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도 없는데….아마 기존 관계가 주는 무거움과 부담 때문에 더 부모에게는 잘못하는 것같다.”고 말했다.한편 여성학자는 딸에게 뭐라고 결혼을 권할까.“살아보니 애를 낳고 키우는 그 시기가 무척 좋은 시간이더라.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평생 어쩌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고,20년 과제로 생각하고 관계의 나무를 함께 키워갈 사람,아이를 낳고 함께 기를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하지 않은 채 여자친구와 그의 딸,자신의 제자 등 50대 여성 2명과 20대,30대 여성들이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화여대 이상화 교수는 자신의 ‘가족’을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주거 공동체’로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못박았다.“가족은 지원체계다.”는 그는 서로 사랑하고 돕고 사는데 정작 ‘큰 아이’인 제자가 수술을 하게 됐을 때 가족인 세 사람은 아무도 ‘보호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며 “우리는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글 허남주기자 hhj@
사진 도준석기자 pado@
2003-12-09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