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아니면 쪽박 신세? / 영화계 ‘빈익빈 부익부’ 우려 목소리

대박 아니면 쪽박 신세? / 영화계 ‘빈익빈 부익부’ 우려 목소리

입력 2003-06-13 00:00
수정 200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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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살인의 추억’ 시사회 인터뷰에서 주인공 송강호는 사뭇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살인의 추억’은)9회말 투아웃에서 마지막 타자로 나온 영화”라고.그럴만도 했다.상반기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선생 김봉두’ 말고는 이렇다할 국산 흥행작이 없던 데다,지난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참패 이후 극도로 위축된 투자분위기 역시 회생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 ‘와일드 카드' 외엔 흥행작 없어

그로부터 불과 두 달여.숨통이 꽉 막혔던 충무로가 가까스로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의 연이은 흥행몰이 덕분이다.지난 4월25일 개봉한 ‘살인의 추억’의 성적은 한 달 보름여 만인 11일 현재 전국관객 467만 5421명(CJ엔터테인먼트 집계).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 제작비는 53억여원.전국 200만명을 확보하면서 일찌감치 손익분기점을 넘겼다.지난달 16일 개봉한 ‘와일드 카드’도 12일 현재 전국 130만명을 넘어섰다.총제작비가 38억여원이니,역시 가볍게 손익분기를 넘겼다.두 영화의 제작사들은 각각 전국관객 500만명과 200만명은 무난히 확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시장 전반의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게 영화가의 중론이다.일각에선 충무로의 고질인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오히려 심화됐다는 우려가 터진다.‘살인의 추억’과 올해 최고의 흥행작인 ‘동갑내기 과외하기’(전국 510만명)의 투자·배급사는 모두 CJ엔터테인먼트.한 곳에서 1000만명의 관객을 독식했다는 얘기다.“뭉칫돈 들어간 데는 CJ밖에 없다.”는 소리들이 나올 만도 하다.

●CJ 한곳만 성공… 충무로 돈가뭄 여전

실제로 이렇다할 흥행작을 내지 못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극심해진 영화가의 돈가뭄은 여전하다.캐스팅을 끝내고도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크랭크인을 못하거나,심지어 촬영도중에 ‘엎어지는’ 작품들도 부지기수.캐스팅 0순위인 송강호를 붙잡아놓고도 제작비 50억원을 투자받지 못해 내년으로 촬영을 미룬 ‘남극일기’가 대표적인 사례.126억원짜리 초대형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도 후반작업비가 없어 개봉을 7월로미뤄야 했다.최민수·조재현 주연의 액션사극 ‘청풍명월’도 돈줄이 막혀 후반작업에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주요 촬영분을 거의 다 찍은 뒤 제작중단된 안성기 주연의 코믹뮤지컬 ‘미스터 레이디’,감우성 주연의 공포물 ‘R포인트’,주진모 주연의 ‘방아쇠’ 등도 투자자를 애타게 찾고 있는 작품들이다.

한국영화시장의 이같은 경색국면은 한두 편의 흥행으로 간단히 풀리지는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한결같은 전망이다.투자·배급사인 쇼이스트의 김장욱 이사는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의 동시흥행은,유행소재에만 눈돌려온 투자자들에게 완성도높은 작품쪽으로 새롭게 관심을 유도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면서 “그러나 올 여름 이후 흥행작이 한두 편 정도 더 나와야 투자자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선 제작현장에서는 한숨 돌리고 있는 분위기.‘백조와 백수’‘귀곡산장’‘첫눈’ 등 3편을 기획중인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는 “투자자들이 당장 주머니를 열고 있지는 않지만,덮어놓고 코미디 시나리오만 탐내는 편식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등 실패땐 한국영화 위기 오래갈듯

요즘 어렵사리 기지개를 켜는 충무로에서 국내 대표흥행 감독들의 신작 촬영현장에 기대반 걱정반 시선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한국영화사상 최고제작비(130억원)가 투입될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와,강우석 감독의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실미도’.한 중소제작사 대표는 “한국의 영화제작자라면 무조건 이들 영화의 성공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들의 실패가 향후 1∼2년 동안 영화계 투자될 돈의 씨를 말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지난해 110억원짜리 초대형 블록버스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참패 이후 충무로가 앓아온 후유증을 너무나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수정기자 sjh@
2003-06-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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