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마피아 오만과 편견 / 버나드 골드버그 著 ‘뉴스의 속임수’

美 언론마피아 오만과 편견 / 버나드 골드버그 著 ‘뉴스의 속임수’

입력 2003-06-11 00:00
수정 200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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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152년 전통의 뉴욕 타임스 하월 레인스 편집인과 제럴드 보이드 편집국장이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표절사건 등 잇따라 발생한 기사 관련 스캔들로 물러났다.이 사건은 세계 최고의 권위지 뉴욕 타임스의 명예에 적잖은 손상을 입혔다.뉴욕 타임스는 어떤 권력암투가 진행되든 외부엔 일절 알려지지 않는 크렘린 혹은 마피아 조직인 돈 코를네오네 패밀리 같은 집단이란 비판도 따랐다.

미국의 거대 미디어와 그 종사자들의 오만함과 권력남용,그리고 무책임은 때론 도를 넘는다.미국의 한 언론인은 미디어 엘리트들의 병폐를 이렇게 꼬집었다.“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은 변호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지상에서 유일한 사람들이다.”

●성역 속 ‘댄 사람들’

언론의 힘은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는 대중의 믿음에서 나온다.하지만 일반 대중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뉴스가 과연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까.알게 모르게 뉴스의 속임수에 넘어가 왜곡되고 편향된 실체를 사실로 믿게 되는 것은 아닐까.

‘뉴스의 속임수’(원제 BIAS·버나드 골드버그 지음,박정희 옮김,청년정신 펴냄)는 미국 언론의 어두운 면과 허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저자인 골드버그는 미국 3대 공중파 TV의 하나인 CBS의 베테랑 특파원 출신.그는 99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스티브 포브스의 공약에 대한 CBS의 편파보도에 분노,뉴스의 왜곡을 고발하는 칼럼을 월스트리트저널에 썼다가 배신자로 낙인찍혀 회사를 떠났다.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미국 공중파 TV뉴스의 실체를 밝히고 저널리스트들의 잘못된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CBS 저녁뉴스의 앵커이자 편집전무인 댄 래더와 ‘댄 사람들(The Dan)’을 신랄히 비판한다.CBS 뉴스 사람들은 ‘댄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을 두려워한다.‘댄 사람들’은 시칠리아 마피아식으로 사람들을 친구가 아니면 적으로 구분한다.앤드루 헤이워드 사장을 비롯한 CBS 뉴스 종사자들은 댄의 관심사항을 시청자들의 그것보다 우선시한다.1980년대 CBS 뉴스엔 ‘댄 래더 담당 부사장’이란 비공식 직함이 있었을 정도다.TV뉴스의 스타 앵커는 ‘미국의 왕족’이라 할 만하다.

●신문 따라가는 방송

미국의 공중파 TV뉴스엔 진보적 편향의 보도가 만연돼 있다.하지만 공중파 방송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사물을 통찰하는 올바른 방식으로 간주한다.한마디로 모든 선(善)은 그들의 것이다.저자는 공중파 뉴스들은 신문에서 모든 논제를 도둑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예컨대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일률과세에 반대하면 TV뉴스는 이 신문들이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노숙자,에이즈,인종문제 등 미국 공중파 TV의 편향보도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뉴스 앵커를 비롯한 진보주의자들은 노숙자나 소수인종 등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무자비한 짓이라고 말한다.언론 엘리트들의 이런 사고방식은 정부로부터 보다 많은 자금을 따내야 하는 ‘노숙자운동단체’ 같은 이익집단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진실과는 다른 모습으로 현실을 왜곡한다.

TV의 편향보도는 어떤 역기능들을 낳고 있을까.저자는 언론의 여권(女權)에 대한 지나친 편향이 남성에 대한학대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완고한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할 사람은 주류 미디어에 아무도 없다고 단언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푸츠(putz,얼간이)”란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미디어 엘리트들은 이를 문제삼지 못한다.

이 책은 내부 고발자에 대한 거대 언론의 증오가 어느 정도인지를 생생히 보여준다.나아가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미국 방송사의 현실을 고발한다.

●핏발 선 뉴스마피아

TV뉴스의 편향성을 지적한 골드버그의 칼럼이 신문에 실리자 댄 래더로 대표되는 ‘뉴스 마피아’들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댄 래더와 그의 사람들은 골드버그를 ‘우익 정치꾼’으로,그의 폭로를 ‘우익 인사의 언론음해’ 공작으로 몰아붙였다.골드버그는 미디어 엘리트들을 진정한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선민의식으로 무장된 ‘달나라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미디어 내부에서 미디어 엘리트들을 공격하는 것은 골드버그의 예에서 보듯 섶을 안고 불을 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골드버그는 CBS ‘댄 사람들’의 신성한 침묵의 코드,즉 오메르타(omerta)를 위반했기에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마피아의 ‘똑똑한 놈들’과 방송사 뉴스쟁이들의 삶과 죽음은 바로 이 코드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 관련,저자는 세계 최고를 자임하는 뉴욕 타임스에도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들개 잡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선거기사를 1면에 실을 만큼 여유만만한 뉴욕 타임스가 편향보도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그토록 침묵의 규율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가 반문한다.

미국 공중파 TV의 편향성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저자는 TV뉴스가 정치가나 고위공무원,종교인 등에겐 지나칠 정도로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조금만 비판받아도 사납게 반발하는 한 개선의 여지는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TV뉴스들이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있는 것은 뉴스 수요자들이 그런 편향적 태도에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뉴스 마피아들은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싫증난 엘리베이터 음악처럼 편향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공중파 뉴스의 시청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2003-06-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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