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보길도의 바보 시인

[녹색공간] 보길도의 바보 시인

최성각 기자 기자
입력 2003-03-24 00:00
수정 2003-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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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더 이상 제국주의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미국예외주의에 빠져 있는 ‘제국주의’,그 자체다.전쟁을 스포츠중계하듯이 보도하는 매스컴의 목소리에는 생기마저 배어 있는 듯하다.실시간에 반전이나 비전(非戰)의 마음이 전세계인과 함께 소통되는 새로운 세기에도 이 제국주의의 호전성과 오만방자함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전쟁의 신앙심으로 잘 무장된 ‘조지 부시’로 상징되는 전쟁광들의 마음은 마치 세워지면 안 될 댐의 견고함을 연상시킨다.

흐르는 게 본성이어서 흘러야 할 물을 완강하게 막고 버티는 ‘죽음의 댐’이나 성취하고 유지해야 할 평화의 소망을 여지없이 묵살하고 차단시키는 호전적 마음이나 그 어불성설과 완강함에서 다르지 않다.이미 역사상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규정되고 있는 이라크전의 포화에 묻혀 지금 이 땅 남쪽의 한 섬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 시인의 ‘무기한 단식’은 다뤄지기 힘든 뉴스일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이라크 민간인들의 죽음이나 그곳 인간방패들의 목숨이나,한 시인이 극한의 단식투쟁에 들어간 일을 우리는 차별해 볼 수가 없다.

보길도의 시인은 참 바보일지도 모른다.그는 왜 하필 미국이 개전의 명분을 찾으려고 끈질기게 세계를 긴장시키던 이 나쁜 시기에 단식을 선택했을까.‘보길도댐건설을 재고하라.’는 요구를 내건 그에게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간인 학살이나 섬의 불필요한 댐건설 강행이 그 난폭성과 어리석음,파괴의 속성에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14일,금정산-천성산 관통도와 관련해 38일간의 극한적 단식을 풀며 내원사의 지율스님이 호소했던 말도 산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명의 충고였다.

‘안정적인 수돗물 공급’이라는 미명 아래 관로공사에 이어 댐확장공사에 들어간 보길면 상수원댐은 바닷물 담수화라는 확실한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문화재청의 사전심의도 묵살하는 탈법적인 과정속에서 강행되고 있다.

댐이 들어서면 ‘윤선도’로 상징되는 보길도만의 재생성되지 않는 문화재는 훼손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시인은 댐건설비용을 환경부에 반납하고 바닷물 담수화시설을 선택한 여수시(거문도)와이미 하루 정수량 1000t과 500t이 가동중인 제주도(우도,추자도)의 선택을 모범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악할 일은 전체 270억원 예산 중 200억원이 환경부 예산이라는 점이다.비슷한 곳인 ‘우도와 추자도에는 바닷물담수화 추진,보길도에는 댐건설추진’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강행하는 환경부는 어떤 곳인가.지켜야 할 국립공원내 해창산을 파괴해 사업목적도 증발해버린 새만금갯벌에 퍼붓도록 허락해준,바로 그 환경부다.그래서 ‘환경부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가 모를 일이다.

듣자하니,공사 강행의 배후에는 여권의 정치가도 있고,전직대통령의 인척도 있다고 한다.완도군의 거의 모든 토목공사를 특정 시공업체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도 단식 중인 시인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다.보길도 댐건설 역시 이 나라의 모든 토목범죄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댐반대운동은 반전이 그렇듯이 세계적인 추세다.미국 안에서만 465개의 댐이 해체되었다고 한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강원도의 ‘도암댐 해체운동’도 그런 맥락이다.

불필요한 전쟁처럼,보길도 댐건설이 국민들의 무관심속에서 탈법적으로 강행되어서는 안 된다.시인이 하루빨리 단식을 풀고,염소를 치면서 시를 쓰게 만들어야 한다.

최 성 각
2003-03-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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