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감 남긴 ‘로또 광풍’

허탈감 남긴 ‘로또 광풍’

김유영 기자 기자
입력 2003-02-10 00:00
수정 2003-02-1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전 국민을 ‘한탕주의’로 몰아가던 로또복권 추첨이 ‘1등만 13명’이라는 대이변을 연출하며 마감됐다.‘800억 독식’의 꿈은 깨졌고,로또복권 발행에 대한 법정분쟁도 구체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로또광풍’이 한풀 꺾일지 주목된다.

인터넷복권 위탁발행업체인 R사 이모 사장은 이달 중 건설교통부,행정자치부,노동부 등 복권발행기관을 상대로 연합복권 판매금지 가처분신청과 연합복권 발행중지 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라고 9일 밝혔다.오는 20일 전후로 로또복권 판금 가처분신청과 함께 연합복권 발행에 따른 손실에 대한 배상 등을 요구하는 소송도 낼 예정이다.

이 사장은 “연합복권은 법적 근거도 없이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으로 당장 발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로또복권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군소 복권업자들도 연대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예상된 결과지만 돈을 날린 대부분의 복권구입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이번에 복권을 산 사람은 모두 1300만여명으로,한 사람이 최소 2만원어치(10게임)를 산 것으로 추정된다.하지만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인 1200만명은 적어도 1만원 이상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억세게’ 운이 좋아 1등에 당첨된 13명은 소득세 22%를 제외하고 각각 50억 1574만원씩을 손에 쥐며 ‘인생역전’에 성공했다.행운의 숫자 6개중 5개를 맞히고 보너스 숫자로 ‘6’을 맞힌 2등은 모두 236명으로 각각 4081만 3400원의 목돈을 챙겼다.3등(당첨금 85만 6400원)은 1만 1247명,4등(당첨금 2만 7300원)은 70만 3234명이었다.1만원의 고정상금을 받는 5등은 341만 846명에 달했다.

한편 대박이 가장 많이 터진 곳은 역시 수도권이었다.1등 13장중 9장이 수도권에서 팔렸다.경기도에서 6곳,서울에서 3곳이었다.경기도에서는 부천시 2곳을 비롯,의왕·고양·이천·안양에서,서울은 관악·성동·구로구에서 각각 1등 당첨자가 나왔다.나머지 4곳은 경북 칠곡군,대구 북구,충남 아산시,부산 금정구였다.

김유영기자 carilips@kdaily.com

◆1등확률, 강원랜드 카지노 잭팟보다 낮아

로또복권 1등은 매주 10만원어치씩 3100년간 꼬박 사야 한 번 당첨될까 말까 할 정도다.1등 당첨확률(814만분의1)은 주택복권 1등 당첨(540만분의1)이나 강원랜드의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릴 가능성(209만분의1)보다 훨씬 낮다.

이런 희박한 승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로또 복권 구입에 매달리는 이유는 1등 당첨자가 없을 경우 상금이 이월돼 매회차 판돈보다 당첨금이 커질 수 있는 특성 때문이다.

또 복권이 본전조차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자신이 당첨될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도박사의 오류’라는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

따라서 지난 8일 10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1등 당첨자가 13명으로 한꺼번에 무더기로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이전까지 1등 당첨자는 2·3·6회 각 한 명씩이었지만 당첨금이 이월되고 당첨액수가 적어도 수백억원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지난 10회 때에는 유달리 판돈이 커졌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판매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지난해 12월 1회의경우 36억원이 팔리는 데 그쳤으나 10회의 경우 2608억원으로 뛰어올랐다.또 전체 매출액은 지난 10주 동안 4077억원을 기록했다.지난 2002년 국내에서 판매된 전체 복권 매출 9000여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판매사업자인 국민은행도 10회 판매분까지 81억 4700만원(전체 판매액의 2%)의 수수료 수입을 거두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처음에는 예상보다 수익이 저조해 일부 지점의 경우 직원 1인당 로또복권 30장을 할당해 팔도록 시켰으나 지금은 로또복권만 사러 온 사람들로 창구가 붐빈다.”며 “연초에 잡은 200억원의 로또 판매 수수료 수익 목표를 수정해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로또복권을 발행하는 10개의 정부부처도 ‘돈방석’에 올랐다.10회차 판매분까지 1200억원대에 달하는 수익금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로또복권의 수익금의 50%는 균등분배,나머지는 99년 말 현재 복권 시장점유율에 따라 배분되는데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중소기업청 순으로 많이 나눠갖는다.

김유영기자

★10회 추첨 시청률 25.4%

지난 8일 오후8시44분부터 3분 동안 SBS에서 방송된 ‘제10회 로또복권 추첨’의 시청률이 25.4%로 이날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1위에 올라 폭발적인 관심을 반영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점유율도 33%로 TV를 켠 3가구 중 1가구는 방송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층별로는 여자 30대가 19.4%로 가장 높았고,여자 40대가 15.2%,남자 30대가 14.8%로 뒤를 이었다.지역별로는 부산과 대구가 각각 26.4%로 가장 높게 나왔다.

채수범기자 lokavid@kdaily.com

*** 사상 최고액의 복권 당첨금이 걸린 로또복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판매소마다 장사진을 이뤘던 지난주에는 가는 곳마다 ‘로또’가 화제였다.

대박의 꿈이 이뤄진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바꾸겠다.’는 우스갯소리부터 ‘춥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아름다운 얘기까지 로또를 소재로 온갖 말들이 무성하게 오갔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상선의 북한 비밀송금에 대한 법조계의 비유는 압권으로 꼽힌다.일부 법조인들은 복권액수가 하도 커지다 보니 현대상선이 비밀 송금했다는 4000억원도 ‘별게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

이에 대한 자금 회수 방안도 제시됐다.이들은 “북한사람들에게 로또복권을 살 수 있도록 하면 한달 안에 본전을 뽑을 수 있을 텐데 이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직장인들은 대박의 꿈이 이뤄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보험회사 대리인 김모(31)씨는 “회사를 통째로 사버려 현재 괴롭히는 간부들을 실컷 부려먹고 싶다.”면서 “머슴살이(?)하는 회사원들은 신분상승을 꿈꾸며 이와 비슷한 생각들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과천청사 내 어느 과에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상 1등 당첨자에 대한 모의 인터뷰를 벌이기도 했다.

한 사무관은 “그동안 즐거웠다.괴로웠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하겠다.앞으로는 인간답게 살라.”며 상사의 등을 토닥거려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반면 로또에 대해 비판을 담은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사이버상에는 사행심 조장하는 ‘로또를 깨버리자.’는 사이트도 등장했다.한 사회학자는 “과거 군사정권은 각종 스포츠로 국민들을 망가뜨리더니,현정부는 카지노로 시작해서 로또로 국민들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들도 “현정부는 로또라는 도박판에서 ‘손 안 대고 코푸는 식’의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비아냥댔다.

유진상기자 jsr@
2003-02-10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