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플라자/ 한평생 독립·통일운동 구익균翁 ‘한반도 영세중립’ 꿈꾸는 老사상가

통일플라자/ 한평생 독립·통일운동 구익균翁 ‘한반도 영세중립’ 꿈꾸는 老사상가

입력 2002-08-21 00:00
수정 2002-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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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이 존경하는 사람은 도산뿐이었어요.상하이 임시정부의 정책,활동 방향,경제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도산 선생이 있었죠.”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비서실장으로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具益均·95)옹은 20일 기자와의 회견에서 그동안 도산 선생이 ‘온건한 계몽주의자’ 정도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구옹은 “이상 사회를 꿈꿨던 혁명가 도산 선생은 민족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민주주의자는 물론 사회주의자,테러리스트까지 포괄했던 큰 인품을 갖춘 지도자”라고 말했다.

도산의 사상을 고스란히 체현한 ‘95세의 노(老) 독립운동가’ 구옹이 요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활동은 바로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이다.

지난 83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91년 뉴욕에서 ‘코리아 영세중립화 추진본부’를 꾸린 뒤 국제사회에 한반도 영세중립국 보장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영세중립통일협의회’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을벌이고 있다.

현재 스위스·벨기에·오스트리아 등이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한반도 영세중립화는 미·중·일·러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이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또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한반도를 영세중립국으로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구옹은 이에 앞서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와 이념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세중립화가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외국의 도움이나 개입없이 통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방법”이라고 역설했다.구옹은 이어 “한반도가 영세중립국이 되면 남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외교와 국방은 동시에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주의자도,자유민주주의자도 아니다.그저 같은 민족의 북쪽에 사회주의가 있고,남쪽에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남북이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지내며 전쟁과 대결을 거부하기를 바라는 평화주의자일 뿐이다.이와 더불어 지구상 어디에서도 대결과 전쟁도 없이 평화롭게 어울려지내야 한다는 확신과 철학을 지닌 순수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은 도산 선생의 사상과 맥이 맞닿았다고 주장한다.

“도산의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아서 복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지요.

‘대공주의(大公主義)라고 불렀는데 이건 중국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처럼혼돈된 나라에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사상이었어요.”

구옹은 “혁명가로서 도산 선생의 사상이 한국내 흥사단의 친일이나 제자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적 등에 의해 왜곡된 점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혁명적 이상사회를 꿈꾸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사상가이자 모든 사람들을 독립운동의 대열에 세우려 노력했던 품이 넓은 혁명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벌써 잊은 듯 그가 세상을 향해 지르는 외침에도 별울림이 없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요즘도 그는 통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한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영세중립화밖에 없어요.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반도를 어느 특정 외세가 주도한다면 한반도는 항상 분열과 전쟁의 장으로 전락할 위협에 놓이는 거지요.”

박록삼기자 youngtan@

■구익균옹은 누구

구익균옹은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을 생생히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다.구옹은 190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1928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 시절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는 ‘신의주고보 학생사건’을 주도했고,일제의 검거령이 떨어지자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안창호 선생이 일제에 검거되기 전까지 비서실장을 지냈고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모시는 등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두 차례나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렀다.또한 중국 광둥 중산(中山)대학에서 조교수를 하며 민족에 힘이 되는 인재를 양성했다.

구옹은 1945년 해방이 된 뒤 1947년 서울로 들어와 남북이통일될 수 있는현실적 방안을 추구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념과 다른 체제로 갈라진 한반도 현실에서 구옹은 ‘이방인이자 범법자’일 수밖에 없었다.

광복 이후 영세중립화 통일 및 평화를 주된 가치로 하는 혁신정당 운동에 힘쓰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의해 다시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2002-08-2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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