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묻지마 패밀리’

영화 리뷰/ ‘묻지마 패밀리’

입력 2002-06-05 00:00
수정 2002-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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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색 웃음.‘기막힌 사내들’‘간첩 리철진’‘킬러들의 수다’로 독특한 웃음 세계를 선사한 장진 감독이 별난 프로젝트에 도전했다.3가지 단편을 묶어 ‘묻지마패밀리’라는 영화를 만든 것.장 감독이 각색과 프로듀서를 맡았고,신인감독 3명이 서로 다른 표정을 연출했다.

가장 매력적인 첫번째 작품 ‘사방에 적’(박상원 감독)은 배신한 여자를 불태우러,아내의 불륜현장을 잡으러,적에게 드라이버 습격을 당해 우연히 같은 호텔에 모여든 이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담았다.4개의 호텔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벨보이의 경험담으로 풀어낸 쿠엔틴 타란티노의 ‘포 룸’과 거의 비슷한 설정.타란티노의 황당무계함과 오밀조밀한 전개를 흉내냈지만,예기치 못한 우연이 인간사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대한 통찰을 담기에는 그릇이 작다.

하지만 얼굴없는 킬러가 일부러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돌리는 장면이나 마지막 싸움을 느린 동작으로 표현하는 연극적 기법 등 영화연출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웃음을 만들어내는 실험정신은 높이 살 만하다.난장판이 되어버린 세상과 다른 한쪽에서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라는 주제의식도 나름대로 잘 살렸다.

이어지는 ‘내 나이키’(박광현 감독)는 나이키에 목숨 건 중학생을 통해 1980년대 풍경을 담은 성장영화이고,마지막편 ‘교회 누나’(이현종 감독)는 교회 누나를 잊지 못하고 입대했다가 휴가 때 사랑을 고백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린 멜로물이다.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3편의 영화지만 웃음은 공통분모로 녹아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등장인물을 추적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다.‘내 나이키’에서 동네 아이들 돈을 뜯는 불량 고교생 정재영은 ‘사방에 적’에서 애인을 죽이러 호텔을 찾는 사이코로 성장했다.

‘내 나이키’에서 깡패를 꿈꾼 류승범은 ‘사방에 적’에서 호텔 종업원이 됐다가 ‘교회누나’에서는 3류 에로배우로 변신한다.

단편영화를 묶어 하나의 영화로 개봉하기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참신한 시도와 형식에 비해 확 내지르는 맛은 부족하지만 큰 기대만 안 한다면 적당히 웃고 적당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지난 주말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김소연기자
2002-06-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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