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박은식선생 역사서 내용

발굴된 박은식선생 역사서 내용

입력 2002-03-20 00:00
업데이트 2002-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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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등에 따르면 백암박은식(白庵 朴殷植·1859∼1925) 선생은 1911년 4월부터만주 환인현 윤세복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천개소문은 연개소문)’‘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 등 6권의 역사서를 저술했다.그동안전해진 세 권 외에 이번에 두 권이 발견됨으로써 이 중 ‘동명성왕실기’만이 실전 상태로 남게 됐다.

당시 만주지역에는 후에 대종교(大倧敎) 3대 교주가 되는윤세복을 비롯해 단군과 관련된 대종교를 신봉하고 이를민족운동의 이념으로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다.박은식선생도 이곳에서 단군이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고 근본임을강조하는 단군민족주의를 확립했음이 이번에 발견된 책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이 책들은 나라를 되찾으려면 국사연구와 교육을 통해 국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선생의 국혼론(國魂論)에 따라 윤세복이 운영하던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 교재로 사용됐으며 이 학교 교사로 있던 운허 이용하(耘虛 李龍夏·후에 출가)가 봉천성에 흥동학교를 설립하면서 이곳에도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박은식 선생은 고구려 초 대장군 전기인 ‘명림답부전’에서 “우리 4천년 역사에 가장 자주독립의 자격이 완전하여 신성한 가치가 있는 것은 고구려시대”라면서 고구려의동명성왕-명림답부를 단군 이래 선교(仙敎)의 계승자로 보았다.‘명림답부전’은 서론 6쪽,본문 38쪽 등 총 44쪽분량에 고구려 2대왕 차대왕(次大王·71∼165)의 포악한불법 전제정치를 뒤엎고 인도주의와 구국구민주의를 실현한 영웅 명림답부 이야기를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대조영(大祚榮·?∼719)의 발해건국에 관한 ‘발해태조건국지’는 서론 12쪽과 본문 54쪽 등 66쪽 분량으로 발해에주목, 우리 민족사를 단군과 이를 계승한 고구려, 발해로체계화하고 있다.박은식 선생은 “단군이 후세 자손을 구하기 위해 대조영을 보내어 발해를 건국하게 하였다.”고발해를 역사의 정통으로 내세운다.특히 고려가 고구려의후손임을 천명하면서도 발해사 서술이 미비했던 점을 비판하고 있다.

개화파 영향을 받은 ‘개신유학자’ 출신이었던 박은식선생은 1905년 실질적 국권상실 이후 대한매일신보 주필등을 맡으며 변법 계몽운동을 통한 국권 회복운동을 펴다가 1910년 망국의 비운을 당하자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자,공화주의자로 전환하게 된다.1910년대 만주 망명시기는 이와 같은 새로운 사상과 역사인식을확립해 가는 중요한 시기로 이번 두 책의 발견은 이 시기박은식 선생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신연숙기자yshin@
2002-03-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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