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대 權철교수 ‘베이징 추이화후퉁’확인

옌볜대 權철교수 ‘베이징 추이화후퉁’확인

김규환 기자
입력 2000-11-20 00:00
업데이트 2000-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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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지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일제 치하 암울했던 1920년대를 전후해 베이징(北京)에서 주요 활동거점으로 삼았던 ‘추이화(翠花)후퉁(胡同·골목)’의 위치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중국 옌볜(延邊)대 조선어언문학과 권철(權哲·71) 교수는 19일 “신채호 선생의 생애에 관심이 많아 선생의 베이징시대 사적지를 집중추적·답사하던 중 그동안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은 채 문헌상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베이징 시내의 추이화후퉁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이번 추이화후퉁의 발견은 우리 민족의 정기를 크게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베이징 시내의 후퉁은 이름이 있는 것이 3,600여개이고 이름이없는 곳을 포함하면 무려 1만여개가 넘을 정도로 많을 뿐만 아니라,후퉁의 대부분이 미로로 이뤄져 있어 선생의 추이화후퉁을 찾아내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며 그러나 “추이화후퉁의 사료적 가치를한 단계 높이려면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도 확인작업을 계속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신채호 선생의 주요 활동거점이 추이화후퉁 내의 어느 집이었는지를 아직 정확하게 찾아내지 못한 탓에 그집을 찾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선생의 베이징 사적지에 대한 답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이징시 시청취(西城區) 추이화제(街) 안에 있는 추이화후퉁은 1919년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내분과 갈등에 회의를 품고 결별한 신채호 선생이 보합단(普合團) 조직에 참여해 실천적인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임시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독립투쟁기구가 돼야 한다는 무력항쟁의 주전론(主戰論)을 적극 폈던 유서깊은 곳.이 시기의신채호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한성 정부의 법통을 따르자고 주장하며 전권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임시정부가강대국의 위임통치를 주장하는 이승만(李承晩)을 대통령에 추대하고좌우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베이징으로 돌아와 임시정부에 맞서 중국 동포들에게 반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했다.

권 교수는 특히 신채호 선생이 베이징에서 부인 박자혜(朴慈惠)여사와 살림을 꾸린 것으로 알려진 추이화후퉁 인근의 진스팡제(錦什坊街)20호와 21호집을 찾아내지 못했고,‘조선사’를 집필하기 위해 머물렀던 보타암(普陀庵) 등의 사적지가 베이징시의 재개발 사업으로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아쉽다고 밝혔다.

khkim@
2000-11-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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