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 프로젝트’음악적 영감-궁상맞은 현실’재조립’앨범

‘어어부 프로젝트’음악적 영감-궁상맞은 현실’재조립’앨범

임병선 기자 기자
입력 2000-06-19 00:00
수정 2000-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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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왼쪽 구석에 주전자 바라보다 일그러진 자신을 보네.샌드백 흔들리고흩날리는 먼지를 혀에다 듬뿍 바르네. ’영화 반칙왕에 흐르던 ‘사각의 진혼곡’을 기억하는가.대중가요 어법을 정면으로 거스른 듯한 노랫말과 값싼오페라 냄새가 풀풀 나는 이상야릇한 음악에 자극받은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마부와 장영규,두 사람이 활동하는 프로젝트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가 세번째 앨범 ‘21c 뉴헤어’를 발매했다.본명이 백현진인 마부는 1집에선 어어부,2집에선 저자로 이름을 바꾸어왔다.팀 이름도 어어부밴드-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어어부 프로젝트의 변천사를 보였다.

사운드란 말이 빠졌다.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가겠다는 욕심을 드러낸 것.음울하고 모호한 감이 없지 않지만 두 사람은 방송 활동을 자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KBS는 연주곡 ‘미지근한 물’만을 사전심의에 통과시켜 이들은 큰충격을 받았다.방송출연에 애착도 작지 않다고 한다.

수록곡 제목만 간추려도 아직 이들의 방송활동이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초현실 엄마,레이다 이마,미지근한 물,중국인 자매,멀고 춥고 무섭다,종점 보관소,양떼구름,술꾼,밭가는 돼지,살이 많은 거구등등.

낯설어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마저 일으키는 낱말들이지만 이를 형상화하는 음악의 힘은 결코 아마추어적이지도,값싼 페시미즘에 기대지도 않는다.

개소리를 흉내내 마부는 소리를 지르고 꽹과리 바라 태평소 피리 시타 비타등 동양악기는 물론 트럼펫 트럼본 등 서양의 관악기까지 어느 오케스트라못지 않은 음악편성을 보란 듯이 해낸다.

‘내 아들아,난 니 엄마다.엄만 수술을 받았단다.…이제는 엄마가 나같은 남자라니’(초현실 엄마)더욱 기가 막힌 것은 ‘멈칫거리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며 뺨에 키스를 했네’라는 대목.어어부가 그린 인물들은 현실에 넌더리가 난 이들.‘변기에다 머리를 박고 희망이란 괴물을 토해내고’(중국인 자매) ‘주민 모두가 서로를 등쳐먹기 제법 바쁜’(멀고 춥고 무섭다) 마을에서 아둥바둥 살아간다.어어부(漁魚父)는 고기잡는 사람과 고기의 아버지를 역설적으로 합성한 것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트위스트 김이 아스팔트 위에서 손발이 묶인 채 몸부림치는 장면을 재킷에실은 97년 1집 ‘손익분기점’은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흥행성적을 올렸다.‘달파란’ 강기영이 기타를 치고 이상은이 보컬,‘도시락특공대’로 유명해진김형태가 톱을 연주했다.

다음해 2집 ‘개,럭키스타’는 원일이 세션으로만 참여,전반적으로 분위기가많이 그로테스크해졌다. 한편의 그림집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71분 러닝타임의 이 앨범은 얼터너티브 록과 테크노를 기본틀로,‘불충분 조건’‘하수구’‘면도칼 계시록’ 같은 감각적인 록음악까지 투시하는 능력을선보였다.

3집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마술적 리얼리즘 영화 ‘집시의 시간’에 흐르던,유장한 맛의 느릿느릿한 리듬과 관악세션을 닮았다.처참하고 희망없는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소년이 날개달린 천사에 의해 구원받는 영화내용도 앨범 알맹이와 관련이 깊다. 싸구려 유랑악단의 오페라 흉내같다고말하는 순간 뭔가 미진하다. 필설로 설명이 불가능함을 용서하라. ‘초현실엄마’에선 개 짖는 소리가,‘밭가는 돼지’에선 정말 돼지가 꿀꿀대는 소리를 마부는 내지른다.이상은이 ‘중국인 자매’ 상당분을,성우 송도순이 ‘지금 다른 한통의 전보가 도착했습니다’(양떼구름)고 목소리를 보탰고 ‘술꾼’이란 곡에선 홍대앞 대포집에서 녹음한 쌍소리가 깔린다.‘콜라쥬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지지리도 궁상맞은 현실을 ‘재조립’한 이들은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음악으로 진공상태를 만들기 원한다.버스 안에서 라디오 볼륨은 한없이 높아지고 아줌마들은 떠든다고 상상해보자.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버스에서 뛰어내리거나,아줌마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애원하고 이도저도 아니면 눈을 감고 속으로 딴 생각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세상은 아름답고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노래하고 싶지는 않다.공연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끈을 놓쳐서는 안된다.사람들이 내면을 바라볼수 있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다음달 중순 대학로 라이브극장 개관기념공연에 나오고 하순에 단독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다.

임병선기자 bsnim@
2000-06-1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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