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연합] 중화민국(中華民國)을 1912년 건국해 중국과 대만 국민 모두에게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손문(孫中山)이 20세기 중국 최고의 풍운아로 뽑혔다.
홍콩의 성도(星島)일보는 23일 홍콩 역사박물관이 관람객 3만6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중국 역사풍운(風雲)인물 20인’ 조사(1인당 5표씩 투표)에서 손문이 2만7,83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97년 2월 사망한 덩샤오핑(鄧小平)은 2만 6,632표로 마오쩌둥(毛澤東)전 주석(2만4,146표)을 2,000여표 차이로 제치고 2위에 올랐으며,4위는 ‘영원한총리’로 사후에도 인민의 존경을 받아온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전 총리(1만6,380표)가 차지했다.
장제스(蔣介石) 전 중화민국 총통(1만3,479표)과 서(徐) 태후로 알려진 자희(慈禧)태후(1만74표)가 각각 5,6위에 올랐으며 7,8위는 작가 루쉰(魯迅.9,077표)과 북양군벌 지도자 위앤스카이(袁世凱)에게 돌아갔다.
작품 ‘차부둬(差不多.대충대충 처리하는)선생’으로 유명한 작가 후스(胡適)는 9위에,청조(淸朝) 체제내의 개혁을 추구한양대 변법(變法)파인 양치차오(梁啓超)와 캉유웨이(康有爲.)는 10,11위에 올랐다.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당시 반우파 투쟁에 희생된 류샤오치(劉少奇)당 부주석은 12위,지난 89년 사망해 6·4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도화선이 된개혁파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은 13위를 차지했다.
‘공화국 제1원수’ 칭호를 얻었던 주더(朱德) 총사령관은 14위,마오전 주석의 부인이자 4인방의 핵심이었던 장청(江靑)은 15위,장징궈(蔣經國) 전 대만총통은 16위에 올랐다.
1921년 7월 상하이(上海)에서 출범한 중국공산당의 초대 총서기를 지낸 천두슈(陳獨秀)와 린뱌오(林彪) 전 국방장관은 17,18위에,또 베이징(北京)대학 교장(총장)을 지낸 차이위앤페이(蔡元培)와 난징(南京) 정부 당시 일본의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왕징웨이(汪精衛)는 각각 19위와 20위에 올랐다.
홍콩의 성도(星島)일보는 23일 홍콩 역사박물관이 관람객 3만6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중국 역사풍운(風雲)인물 20인’ 조사(1인당 5표씩 투표)에서 손문이 2만7,83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97년 2월 사망한 덩샤오핑(鄧小平)은 2만 6,632표로 마오쩌둥(毛澤東)전 주석(2만4,146표)을 2,000여표 차이로 제치고 2위에 올랐으며,4위는 ‘영원한총리’로 사후에도 인민의 존경을 받아온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전 총리(1만6,380표)가 차지했다.
장제스(蔣介石) 전 중화민국 총통(1만3,479표)과 서(徐) 태후로 알려진 자희(慈禧)태후(1만74표)가 각각 5,6위에 올랐으며 7,8위는 작가 루쉰(魯迅.9,077표)과 북양군벌 지도자 위앤스카이(袁世凱)에게 돌아갔다.
작품 ‘차부둬(差不多.대충대충 처리하는)선생’으로 유명한 작가 후스(胡適)는 9위에,청조(淸朝) 체제내의 개혁을 추구한양대 변법(變法)파인 양치차오(梁啓超)와 캉유웨이(康有爲.)는 10,11위에 올랐다.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당시 반우파 투쟁에 희생된 류샤오치(劉少奇)당 부주석은 12위,지난 89년 사망해 6·4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도화선이 된개혁파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은 13위를 차지했다.
‘공화국 제1원수’ 칭호를 얻었던 주더(朱德) 총사령관은 14위,마오전 주석의 부인이자 4인방의 핵심이었던 장청(江靑)은 15위,장징궈(蔣經國) 전 대만총통은 16위에 올랐다.
1921년 7월 상하이(上海)에서 출범한 중국공산당의 초대 총서기를 지낸 천두슈(陳獨秀)와 린뱌오(林彪) 전 국방장관은 17,18위에,또 베이징(北京)대학 교장(총장)을 지낸 차이위앤페이(蔡元培)와 난징(南京) 정부 당시 일본의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왕징웨이(汪精衛)는 각각 19위와 20위에 올랐다.
1999-11-24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