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한국성’ 속에 숨겨진 치열한 예술혼

‘脫한국성’ 속에 숨겨진 치열한 예술혼

입력 1999-08-14 00:00
수정 1999-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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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예술가는 빠르든 늦든 ‘한국적’이란 문제와 운명적으로 맞닥뜨린다.이 운명적 문제를 바쁜 길을 막는 바윗돌인 냥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예술가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오히려 보편적·세계적 예술성의 광활한 하늘로 솟구치는 그네로 삼으려 한다.

바윗돌이 가뿐한 그네가 되기 위해선 예술가는 자기와 피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미술 작품이 이런 내면투쟁의 아름다운 뒷모습일 때 보는 이는 즐겁다.

갤러리 현대는 ‘최선호-시적 변용’과 ‘박윤정-팽이:시간·공간’ 두 전시회를 나란히 20일부터 연다.흔한 그룹전도 만남전도 아닌 두 전시회는 우연히 물리적 전시공간만 같은 ‘따로따로’ 전처럼 보이나 양 작가는 ‘한국’ ‘한국적’이란 관점에서 우연찮은 인연과 기맥 상통함을 보여주고 있다.

최선호는 한국화를 가운데 두고 두번의 변신을 단행한 작가다.70년대 말 대학 전공을 도중에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바꾸었으며 한국미술 전문인 간송미술관에서 10년동안 동양화를 연구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 서양미술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한국화를 버리고 미술을 새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전통회화와 전위적 서양미술의 접목을 꾀한 것이나 그의 작품은 얼핏 서양화,그것도 선과 색의 단순화에 온 힘을 기울이는 미니멀 아트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력은 작품을 보다 진정하게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서양화 같은 외양이 작가의 한국화에 대한 열정에서 솟아난 변신임을알 때 그림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실제 어떤 거리를 지키려는 절제력이 돋보이는 그의 미니멀 아트적 그림은 조금 있으면 온기가 느껴진다.캔버스에 아크릴릭으로 그냥 채색한 것이 아니라 한지를 배접하듯 부치고 그 위에 염료와 아크릴릭을 혼합 사용했고 한국 전통적 색상인 쪽빛,노란 치자색,다홍을주로 쓰고 있다.모시나 삼베를 겹쳐서 생겨나는 촉감과 헝겁을 이어서 생기는 선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이번 전시회 그림은 주로 직선을 사용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가공되지 않고,다듬어지지 않은 선들로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진다(박규형 갤러리현대 아트디렉터)는 것이다.

이처럼 최선호가 한 줄의 직선긋기를 통해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려고 끈기있게 노력하고 있다면 60년대 말 한국을 떠난 뒤 한국에서 첫 전시회를 갖는 박윤정의 ‘한국’은 한번만 정통으로 겪으면 끝인 무지막지한 격통같은 것이다.

한국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한 그는 미국유학과 동시에 한국에서 배운 미술공부를 비롯 한국적 미개념에 일대 혼란을 느꼈고 절망과 방황 끝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한국’은 저 밑 내면으로 침전된 지 오래였다.

30여년 간 미국에서 9회의 전시회를 열고 현재 샌디에이고 시립대 교수로재직하고 있다.박윤정의 흙을 이용한 조각,부조,설치작업은 한국적 관점에서 보면 이국적일 만큼 주변이나 남의 시선에 괘념치 않은 강렬한 집중력을 내비친다.

박윤정의 이번 전시회 주제는 팽이로 작가는 “팽이가 만든 자국은 우리 인생의 흔적이요,팽이가 주는 그림자는 시간의 흐름이다”고 말한다.우주 공간에서의 인간 모습을 팽이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단순하나 스케일 큰 개념,소수의 강한 색채,단호하고 자신에 찬 형상 등이 어필하는박윤정의 팽이에서 우리는 한국과 상관된 주저흔이나 여백을 발견하지 못한다.한국전시회에서 강조될 수 밖에 없는 박윤정의 이같은 ‘탈’한국성은 작위적인 망각이아니라 드문,보다 생산적인 기억상실로서 오히려 상큼해 보인다.

9월2일까지.(02)732-6111.

김재영기자 kjykjy@
1999-08-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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