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프랑스가 최근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을 전담할 권위자로 자크 살로와(58)를 선정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다시 관심이모아지고 있다.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은 6년 넘게 끌어 온 한국과 프랑스간의 현안으로 지난 9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교환 기본원칙이 합의됐다.프랑스가 도서를 영구 임대형식으로 돌려주고우리나라는 그에 상응하는 고문서를 제공한다는 것으로 이른바 등가(等價)의 문화재 교환방식이다.그러나 추후 실무자들간의 협상에서 교환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도서반환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답보상태를 거듭해온 도서반환 문제는 지난해 4월 새로운 해법이 제시됐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양국 역사 문화 전문가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최근 자크 살로와의 선임 사실을 통보하고 우리측에 전문가를 선정해줄 것을 요청해왔다.자크 살로와는 감사원 최고감사위원이지만 박물관 협회 회장(89∼93년),문화부 박물관장(90∼94년)을 지내 문화계,학계에서도 폭넓은 교분과 지명도를 갖고 있다.지난해 9월에는 피에르 족스 감사원장을 수행,방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통상부는 현재 교육부,문화관광부의 협조를 받아 전문가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지난달 말에는 교육부와 문화부에서 추천한 10명의 명단을 놓고관계 부처 협의를 가졌다.전문가는 추천인물에 대한 검토작업을 거쳐 이달말 쯤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외교부는 가능하면 정치외교적 감각과 문화적 식견이 있으면서도 국민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인물이 뽑히기를 기대한다.문화재 반환이라는 좁은 시각보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양국의 전반적인 관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전문가 선임은 도서반환 협상의 첫 단추를 연 것이지만 섣부른 예단은 갖지 말 것을 주문한다.서로 반환협상에 부담을 느끼는 탓이다.외교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한 파리 특파원발 기사에서 주불대사가 “등가의 문화재 교환원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양국 문화교류 확대,유물 보전기술전수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개인의견이 확대 해석된 것으로 현재로선 완전한 백지상태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전문가가 선임되면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해준 뒤 준비과정을 거쳐 프랑스와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그러나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심각한 견해차이를 보여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일례로 프랑스는 당시 책을 가져간 것은 서고가 불에 탔기 때문이며 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한다.또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내법상 공공재산으로 등록돼 있는 국가재산이라며 미리 못을 박는다.
영국,프랑스 등 문화선진국들은 2차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전시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협약(1954년),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이전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 등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도 않았다.더욱이 외규장각 도서의 해외 유출사건은 19세기 후반에 발생,전시문화재에 대한 국제협약의 적용을 받지도 않는다.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될 것이라는 점도 부담이다.미국과 영국 등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관계 전문가들은 경제협력 등 정치적 해결보다는 학술,학문적으로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즉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법,판례,문화인류학적입장 등을 토대로 반환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역사적 진실 앞에서는 어느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한다.이들은 한 나라의 왕실재산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국가재산인 만큼 프랑스가 외규장각도서를 자국의 공공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한다.또 문화선진국들은 문화재 보존기술이 낙후돼 있는 후진국들에게는 귀중한 문화재를 맡길 수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으나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75년 발견당시 이미 훼손된 상태여서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한다.또 덴마크가 아이슬랜드의 중세문학 필사본을 250년이 지난 뒤 반환한 데에서 보듯 불법으로 빼내간 문화재는 원소유국으로 반환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라고 말한다.한마디로 정치적 타결보다는 각종 관련 국제법에 의한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의 일지]▒1886년 외규장각 도서 피탈▒1975년 박병선씨 외규장각 도서 발견▒1991년 10월 서울대 외무부 통해 반환요청▒1993년 9월 한불 정상회담에서 합의로 해결하기로 합의▒1994∼97년 한불간 협의 난항▒1998년 4월 한불 정상회담에서 전문가 협의로 해결하기로 합의▒1999년 1월 프랑스,전문가 자크 살로와 선정- 외규장각 도서란 외규장각 도서는 세자 및 왕비의 책봉행사와 결혼,국장(國葬) 논의 및 준비과정,의식절차 및 경비,행사 유공자들의 포상 등을 규정한 왕실 의전 궤범이다.보통 4권으로 만들어져 4대 서고에 보관된다.이 가운데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도서는 왕이 보던 어람(御覽)용으로 원본인 셈이다.관청 등에서 이를 복사,보관해왔기 때문이다.게다가 국내 보관본의 3분의1 정도는소실된 상태라 프랑스 보유 문서의 학술적 가치는 매우 높다.외규장각 도서는 188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가 빼앗아 갔다.현재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지난 75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씨가 베르사이유 별관 파손창고에서 처음 발견,세상에 알려졌다.파손 도서는 이후수리 복원됐으며 현재는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돼 있다.고서 반환은 91년 10월 서울대총장이 외무부에 추진을 의뢰,이듬해 7월 주불 한국대사관이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최근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을 전담할 권위자로 자크 살로와(58)를 선정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다시 관심이모아지고 있다.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은 6년 넘게 끌어 온 한국과 프랑스간의 현안으로 지난 9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교환 기본원칙이 합의됐다.프랑스가 도서를 영구 임대형식으로 돌려주고우리나라는 그에 상응하는 고문서를 제공한다는 것으로 이른바 등가(等價)의 문화재 교환방식이다.그러나 추후 실무자들간의 협상에서 교환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도서반환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답보상태를 거듭해온 도서반환 문제는 지난해 4월 새로운 해법이 제시됐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양국 역사 문화 전문가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최근 자크 살로와의 선임 사실을 통보하고 우리측에 전문가를 선정해줄 것을 요청해왔다.자크 살로와는 감사원 최고감사위원이지만 박물관 협회 회장(89∼93년),문화부 박물관장(90∼94년)을 지내 문화계,학계에서도 폭넓은 교분과 지명도를 갖고 있다.지난해 9월에는 피에르 족스 감사원장을 수행,방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통상부는 현재 교육부,문화관광부의 협조를 받아 전문가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지난달 말에는 교육부와 문화부에서 추천한 10명의 명단을 놓고관계 부처 협의를 가졌다.전문가는 추천인물에 대한 검토작업을 거쳐 이달말 쯤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외교부는 가능하면 정치외교적 감각과 문화적 식견이 있으면서도 국민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인물이 뽑히기를 기대한다.문화재 반환이라는 좁은 시각보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양국의 전반적인 관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전문가 선임은 도서반환 협상의 첫 단추를 연 것이지만 섣부른 예단은 갖지 말 것을 주문한다.서로 반환협상에 부담을 느끼는 탓이다.외교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한 파리 특파원발 기사에서 주불대사가 “등가의 문화재 교환원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양국 문화교류 확대,유물 보전기술전수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개인의견이 확대 해석된 것으로 현재로선 완전한 백지상태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전문가가 선임되면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해준 뒤 준비과정을 거쳐 프랑스와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그러나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심각한 견해차이를 보여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일례로 프랑스는 당시 책을 가져간 것은 서고가 불에 탔기 때문이며 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한다.또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내법상 공공재산으로 등록돼 있는 국가재산이라며 미리 못을 박는다.
영국,프랑스 등 문화선진국들은 2차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전시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협약(1954년),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이전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 등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도 않았다.더욱이 외규장각 도서의 해외 유출사건은 19세기 후반에 발생,전시문화재에 대한 국제협약의 적용을 받지도 않는다.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될 것이라는 점도 부담이다.미국과 영국 등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관계 전문가들은 경제협력 등 정치적 해결보다는 학술,학문적으로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즉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법,판례,문화인류학적입장 등을 토대로 반환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역사적 진실 앞에서는 어느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한다.이들은 한 나라의 왕실재산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국가재산인 만큼 프랑스가 외규장각도서를 자국의 공공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한다.또 문화선진국들은 문화재 보존기술이 낙후돼 있는 후진국들에게는 귀중한 문화재를 맡길 수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으나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75년 발견당시 이미 훼손된 상태여서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한다.또 덴마크가 아이슬랜드의 중세문학 필사본을 250년이 지난 뒤 반환한 데에서 보듯 불법으로 빼내간 문화재는 원소유국으로 반환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라고 말한다.한마디로 정치적 타결보다는 각종 관련 국제법에 의한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의 일지]▒1886년 외규장각 도서 피탈▒1975년 박병선씨 외규장각 도서 발견▒1991년 10월 서울대 외무부 통해 반환요청▒1993년 9월 한불 정상회담에서 합의로 해결하기로 합의▒1994∼97년 한불간 협의 난항▒1998년 4월 한불 정상회담에서 전문가 협의로 해결하기로 합의▒1999년 1월 프랑스,전문가 자크 살로와 선정- 외규장각 도서란 외규장각 도서는 세자 및 왕비의 책봉행사와 결혼,국장(國葬) 논의 및 준비과정,의식절차 및 경비,행사 유공자들의 포상 등을 규정한 왕실 의전 궤범이다.보통 4권으로 만들어져 4대 서고에 보관된다.이 가운데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도서는 왕이 보던 어람(御覽)용으로 원본인 셈이다.관청 등에서 이를 복사,보관해왔기 때문이다.게다가 국내 보관본의 3분의1 정도는소실된 상태라 프랑스 보유 문서의 학술적 가치는 매우 높다.외규장각 도서는 188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가 빼앗아 갔다.현재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지난 75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씨가 베르사이유 별관 파손창고에서 처음 발견,세상에 알려졌다.파손 도서는 이후수리 복원됐으며 현재는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돼 있다.고서 반환은 91년 10월 서울대총장이 외무부에 추진을 의뢰,이듬해 7월 주불 한국대사관이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1999-03-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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