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인터넷서 살아났다

‘반민특위’ 인터넷서 살아났다

김성수 기자
입력 1998-08-15 00:00
업데이트 1998-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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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친일논쟁’ 참가자 80명 모여 결성/‘겨레의 거울’ 개설… 친일파 100명 행적 띄워/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삶 재조명도

지난 96년 5월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때아닌 ‘친일 논쟁’이 붙었다. 이화여대의 한 신입생이 “성경시간에 金活蘭 박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그렇게 훌륭한 분인 줄 몰랐다”라는 글을 올린게 발단이었다. 곧 다른 대학생이 “金박사는 대표적인 친일인사”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논쟁은 다른 친일인사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한달 이상을 끌었다.

이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뒤 ‘인터넷 반민특위’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48년 정부수립 후 설치됐다 친일파의 공작으로 사라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부활한 것이다. 이 모임은 독립운동가로 잘못 알려진 친일파 인사들의 행적을 제시,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생을 주축으로 20∼30대의 미국·영국 유학생,회사원 등 80여명이 회원이다. 따로 모임은 갖지 않고 인터넷에서메일로 정보를 교환한다.

인터넷 반민특위는 96년 광복절에 ‘겨레의 거울’(banmin.ifp.or.kr)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관료,정치인,문인,여성계 인사 등 100여명의 친일행적을 그대로 실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인사가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뽑힌 조선인을 독려했던 전문(全文)을 게재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기초자료는 일제때 신문이나 잡지에서 얻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99인’ 등 관련 서적도 큰 도움이 됐다. 회원들은 전자우편을 통해 정보수집,자료요약,번역,웹사이트 구축 등 업무를 분담한다.

인터넷 반민특위는 최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 최후의 레지스탕스’인 金始顯 선생과 광복군 총사령관 池靑天 장군의 둘째딸로 광복군의 첫 여군 소위였던 지석영 여사의 업적을 조명하는 일 등이다.<金性洙 기자 sskim@seoul.co.kr>
1998-08-1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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