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景시대’<조선 숙종∼정조> 사상·예술 총제적 조명

‘眞景시대’<조선 숙종∼정조> 사상·예술 총제적 조명

김종면 기자 기자
입력 1998-04-07 00:00
수정 1998-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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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풍 탈피 ‘고유의 색’ 태동∼개화 분석/식민사관이 왜곡한 조선성리학도 재해석

우리 역사에서 진경시대(眞景時代)란 무엇인가.조선왕조 후기 우리 문화가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며 발전했던 1657년 숙종대에서부터 1800년 정조대에 이르는 125년간을 일컫는 말이다.진경문화는 영조 51년의 재위기간 동안 절정을 누렸다.최근 도서출판 돌베개에서 펴낸 ‘진경시대’(전2권)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진경시대의 사상과 문화,예술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 첫 연구서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등 관련학자 10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조선왕조는 중국의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천명하며 개국한 나라다.그런 만큼 조선 전기에는 문화 전반에 중국풍이 만연했다.그러나 율곡 이이에 의해 조선성리학이 창안되면서 문화전반에 걸쳐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내는 운동이 전개됐다. 율곡의 평생지기인 송강 정철은 한글 가사문학으로 국문학 발전의서막을 장식했고,간이 최립은 독특한 문장형식으로 조선 한문학의 선구가됐다.그런가 하면 창강 조속에 의해 조선의 고유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조속은 인조반정에 참여하기도 했던,조선성리학 이념에 투철했던 선비화가.그는 반정(反正)성공 후에는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시화로 이를 사생해 내는데 몰두했다.이 때 쓴 시와 그림은 진경시와 진경산수화의 한 단초가됐다.진경산수화의 경향은 자연스럽게 조선 풍속화의 출현으로 이어졌다.조선후기 풍속화는 중국 회화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실제 생활모습과 풍속·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진경산수화와 함께 우리 회화의 독자적인 경지를 보여준다.진경시대에는 초상화에 있어서도 조선적인 도상관(圖像觀)이 확립되는 양식적인 변화가 뚜렷했다.숙종대를 전후한 진경시대전기의 초상화에서는 중국식의 채전(彩氈)이 사라지고,그 대신 의답(椅踏)이나 바닥에 조선의 단아한 화문석 돗자리가 등장했다.이는 요란하고 화려한 채전이 조선의 현실에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 조선성리학의 검박한 기풍과도 어울리지 않았기때문이다.

조선후기 문학운동사의 한 흐름으로 주목할만한 것이 중인계층의 위항문학(委巷文學)운동이다.위항문학운동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한시단(漢詩壇)에 중인 출신의 시인군이 대거 참여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18세기 정조대부터 문학운동의 대세를 이뤘다.이 위항문학인들은 새로운 시대사상인 북학사상을 수용,사대부계층을 대신하는 시대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정조는 100여년 동안 사회를 주도해온 진경문화의 바탕 사상인 조선성리학이 사회적 기능을 다했음을 간파했다.청조 고증학을 받아들이려는 북학운동이 일어나자 정조는 규장각 제도를 개편하고 학문활동의 터전을 마련해주는등 적극적으로 지원했다.진경문화는 ‘문예군주’정조의 치세하에서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하고 북학문화로 이어졌다.

조선성리학은 종종 조선후기의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사대주의를 조장하는 피폐한 사상이라는 식으로 매도되기도 했다.이는 조선시대를 파당과 당쟁의 역사로만 기록한 왜곡된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다.이 책은 이런 점을 직시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조선성리학과 그것에 뿌리를 대고 있는 진경문화에 대한 이해가 절실함을 웅변해 준다.<金鍾冕 기자>

1998-04-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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