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의 ‘밀희투전’의 인물(한국인의 얼굴:122)

김득신의 ‘밀희투전’의 인물(한국인의 얼굴:122)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7-12-05 00:00
수정 1997-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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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몰래 벌인 투전관 묘사/패 잡은 안경낀 노인 표정 이채

조선왕조 후기는 회화의 한 장르로 속화가 자리매김한 시기이기도 하다.크게 보면 풍속화도 그 장르에 속한다.그러나 풍속화와는 구별되는 일면도 있다.이를테면 당시 사회에 나타난 잡스러운 일이나,민중들이 연출한 여느 풍물의 그림이 속화다.사대부들이 고상한척 격식을 따져 감상한 그림과는 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속화는 민중들이 낄낄거리며 들여다 볼 수 있는 틈새를 열어주었다.긍재 김득신(1754∼1822년)은 그런 속화를 잘 그렸다.단원 김홍도와 더불어 거의 같은 시대를 살면서 함께 화원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그의 속화가단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병아리를 챈 고양이를 쫓아내는 그림 ‘야묘도추’의 인물상 골격은 실제 단원의 필치를 많이 닮았다.

그의 속화에는 ‘밀희투전’이라는 그림이 있다.노인들이 모여 몰래 벌인 투전판을 묘사한 그림이다.투전꾼 중에서 안경을 끼고 패를 쥔 노인은 사뭇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상대방 눈치와 패를 살피느라 백수정 안경알에 어린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할기족족한 눈에는 약간의 핏발이 섰다.행세 깨나 하는 노인인 듯 탕건을 갖추어 썼으나,잡기에 손을 대고나면은 별수가 없는 모양이다.

놀음판에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본디 점잖았을 노인이다.비록 놀음판을 찾았을 지라도 동저고리 바람이 아니고 배자까지 입었다.아직은 초로기라서 소담한 구레나룻 수염이 검다.‘수염이 대자옷이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기왕 노름판에 궁둥이를 붙였으니 기어이 돈량이나 만져보고 말겠다는 눈치다.일찌감치 패를 버리고 들어가 판세를 관망중인 노인과는 대조를 이룬다.

노름패를 잡은 노인은 당시 하이컬러라 그런지 흔치 않은 안경을 썼다.우리나라에서 안경 이야기는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처음 나온다.그 뒤에 1560년대초 ‘오봉집’에도 소개는 되었으나,본래 중국을 거쳐 들어온 외래박물의 하나였다.그런데 투전판 노인은 안경을 썼다.안경이 아직 덜 발달해서 다리대신에 실고리를 걸었다.그리고 코거리를 망건속에 집어넣었다.‘매천야록’의 저자 황현(1855∼1910년) 초상화의 안경에 비하면 너무 구식이다.

이들 노인이 어울려 노는 투전 역시 중국에서 들어왔다.17세기 숙종때 역관 장현이 노는 방법을 배워가지고 돌아와 좀 고쳐 만들었다는 것이다.조선시대 문헌 ‘경도잡지’와 ‘오주연장전산고’에 투전 이야기가 나온다.<황규호 기자>
1997-12-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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