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이명욱의 「어초문답도」(한국인의 얼굴:108)

조선중기 이명욱의 「어초문답도」(한국인의 얼굴:108)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7-06-21 00:00
수정 1997-06-2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호걸풍 어부­선비풍 나무꾼 기묘한 만남 사실적 묘사

조선중기의 화가 이명욱은 「어초문답도」라는 그림 하나만을 달랑 남겼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조선회화사 뒤안으로 사라졌을 인물인지 모른다.어느 집안에서 언제 태어나서 얼마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지 알 길이 없다.다만 임금 숙종이 아끼던 17세기 화원으로 당시 도화서 화원이자 교수 한시각(1621∼?)의 사위라는 사실 정도가 알려졌을 뿐이다.

그의 유일한 작품인 간송미술관 소장품 「어초문답도」는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를 묘사한 그림이다.어부와 나무꾼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이 그림에는 사실 그대로를 그리려는 사의성이 짙게 배었다.그래서 어부와 나무꾼의 얼굴은 물론 몸뚱이와 옷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정교한 필치로 그렸다.그리고 대각선이 서로 맞물려 지나가는 화면 한복판에 인물을 그려 넣었다.

그림의 구도부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그래서 정교하게 묘사한 인물의 표정과 동작이 살아서 가까이 다가왔다.무슨 말인가를 어부가 먼저 건넨듯 한데 나무꾼은 눈길을 먼데로 돌렸다.그러면서 나무꾼이 입을 연 모양이다.어부는 나무꾼 화답만으로는 모자라 나무꾼 표정을 살피고 있다.화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부의 얼굴이 급기야는 흐뭇해졌다.두 인물은 곧 의기가 투합되어 문답을 계속할 것이다.

어부의 체구가 나무꾼에 비해 더 우람하다.얼굴 윤곽이 굵거니와 근육질의 팔다리를 드러낸 어부는 갓 잡은 물고기를 꾸러미에 꾀어 왼손에 들었다.그리고 오른손에 쥔 낚시대를 어깨에 턱 걸쳤다.나무꾼은 긴 작대기를 어깨에 메었다.그런데 옷이 낡아 어깨께를 다른 헝겊으로 기워 입은 나무꾼은 작은 손도끼를 허리춤에 찼다.나무꾼은 체면을 차려 치포관을 썼으나,어부는 차양만 달린 모자 위로 맨상투를 내놓았다.호걸풍 어부와 선비풍 나무꾼의 기묘한 만남이다.

어부와 나무꾼이 하는 일은 서로 극명하게 다르다.그러나 어부와 나무꾼을 어초라는 말로 자주 썼다.고사에 어초가 나오는가 하면,중국 북송의 문인 동파소식이 1082년에 지은 「적벽부」에도 들어있다.「나나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잡고 나무하고,고기와 새우와 짝지어 놀고,큰 사슴 작은 사슴과 벗이나 하며…」라는 내용의 글이 그것이다.「어초문답도」는 동파의 이 산문과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황규호 기자>
1997-06-21 1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당신의 국민연금 개혁 방향은?
최근 연금개혁청년행동이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 관련해 어느 쪽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여론조사를 실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래 재정 안정을 우선시하는 ‘재정안정론’, 연금 수급액 확대를 중점으로 한 ‘소득보장론’, 그외에 ‘국민연금 폐지’ 등 3가지 안을 제안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재정안정론
소득보장론
국민연금 폐지
모르겠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