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리츠코 교수의 「사치향락의 중국사」

이나미 리츠코 교수의 「사치향락의 중국사」

김종면 기자 기자
입력 1997-05-27 00:00
수정 1997-05-2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사치·향락 역사의 역설적 깨우침/은 주왕∼청 서태후의 방탕과 몰락 조명/정사감각 마비 일부층 과소비에 경종

절세 미녀 달기를 옆에 끼고 충신 비간의 심장을 도려낸 주지육림의 원조 주왕,국가 세입의 6분의 1을 생일잔치에 쏟아 부은 서태후의 사치벽,마약복용과 선문답으로 날을 지샌 육조시대의 오렌지족 하안….중국사의 한 단면을 이루는 사치향락의 전례를 집중 조명한 역사교양서 「사치향략의 중국사」(이은숙 옮김)가 도서출판 차림에서 나왔다.지은이는 중국문학 전공학자인 이나미 리츠코(정파률자,국제일본문화센터 교수).전문학자의 글인 만큼 쉽게 풀어쓴 역사물이 범하기 쉬운 「사실성의 오류」를 허락치 않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그들의 스케일만큼이나 엄청난 과소비와 사치의 행태를 발견할 수 있다.황제로부터 귀족과 상인,「사치의 블랙홀」인 환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벌인 사치향락 행각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재물의 힘으로 가능했다.때문에 그들의 사치향략은 물질에서 시작해 물질로 끝났다.그러나 송대의 문인 소동파처럼 물질지향적인 사치를 외면하고 해방감으로 가득찬 정신적 사치를 추구한 사람들도 있다.일탈의 정서를 특징으로 하는 이같은 「지적 사치」는 세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는 지식인들의 자유분방한 기백으로 표현된다.

중국 역사상 절대권력을 손안에 거머쥔 천자가 끝없는 향락에 빠진 예는 수없이 많다.이 책에서는 특히 은왕조의 주왕,13세에 진나라 제위에 올라 26년만에 중국 천하를 통일한 시황제,수나라 2대 황제인 양제 등 3명의 사치행태를 비교 고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주왕,시황제,양제로 이어지는 중국 사치향락사의 궤적을 좇다보면 웬지 숨이 가빠진다.그들의 사치에는 「지옥」을 즐긴다고나 해야할 듯한 광적인 처절함이 배어있을 뿐,평안하고 한가로운 해방감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양제의 사치는 은나라 주왕의 「주지육림식」 사치행태와 비슷했다.주왕이 별궁의 모래언덕에 말린 고기 숲을 만들었다면,양제는 서원을 능견 꽃과 능견 잎으로 장식하는 등 재물의 힘을 빌어 자연의 순리조차 거스르려고 했다.또 양제는 결벽증이 있는 어머니의 영향 탓인지 마구잡이로 호색본능을 폭발시켜 색을 탐했지만,음탕한 어머니를 둔 시황제는 미녀보다는 신선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현실적 쾌락에 기우는 양제와 현세초월적 성향이 강한 시황제의 차이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중국의 사치향락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존재가 바로 지식인 집단인 사대부다.사대부의 사치는 죽림칠현 이래 대체로 정신의 사치,정신의 방탕이 중심을 이뤘다.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유영의 글은 정신적 사치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는 자신이 남긴 단 한편의 산문 「주덕송」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하늘을 지붕삼고 땅을 이불삼아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멈출 때는 술잔을 손에 들고 움직일 때는 술잔과 호리병을 매달고 간다』 유영의 이 유유자적한 술찬가에서는 생성과 소멸의 넉넉한 섭리에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존재의 모습이라는 노장사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읽힌다.

이 책은 기원전 12세기의 은나라 주왕에서 금세기초 청나라 서태후를 관통하는,3천년에 이르는 중국의 사치향락사를 다룬다.그 역사에 등장하는 향락행태는 오늘날 정사감각이 마비된 채 과소비와 사치를 일삼는 우리 한쪽의 모습과 적잖이 닮았다.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한다고 했던가.이 책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역설적인 깨우침을 안겨준다.<김종면 기자>
1997-05-27 13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11월 5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 미국 국민은 물론 전세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각종 여론조사 격차는 불과 1~2%p에 불과한 박빙 양상인데요. 당신이 예측하는 당선자는?
카멀라 해리스
도널드 트럼프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