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5·18」 20차공판/검찰 증인보충신문 지상중계

「12·12」­「5·18」 20차공판/검찰 증인보충신문 지상중계

입력 1996-07-09 00:00
수정 1996-07-09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유학성씨가 「최 대통령 곧 하야」 전해”­김종환 증인/“김재규 내란목적 살인 증거 없었다”­양병호씨/“선제공격 진술 보안사서 강요 받아”­김인선씨/전씨 합수부에 모든 보고 하도록 조치­김진기씨/노재현 장관 명령으로 출동병력 복귀­박동원씨

12·12 및 5·18사건의 제20차 공판이 8일 상오10시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개정과 함께 이양우·한영석 변호사 등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측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30분간의 휴정을 거쳐 검찰이 양병호 전 대법원 판사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양병호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1월말 보안사 장교가 증인을 찾아와 김재규 내란사건의 상고를 기각해줄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80년 5월20일 상고심에서 증인 등 6명의 대법원판사가 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소수의견을 냈는데 그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양증인=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그후 증인은 같은해8월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3일간 고문을 받으면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당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보안사를 나온 후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을 찾아갔더니 소수의견을 냈던 나머지 5명도 사표를 냈더라는 말을 했지요.

▲양증인=맞습니다.

▲김부장검사=소수의견을 냈던 증인등이 강제사직을 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증인=그 사람들(보안사측)은 내란목적 살인으로 인정했고,우리는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니까 왜 반대하느냐며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김부장검사=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양증인=80년 1월말 법원을 출입하는 육군소령이 찾아와서 상고기각을 요청했었는데 『판사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며 거부하자 밉게 봐서 그런 것같습니다.

○김인선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 경호 장교였던 증인은 당시 입은 총상으로 순천향병원에서 2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퇴원,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15일간 조사를 받았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제가 우경윤대령 등에게 먼저 총을 쏴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진술을 강요받았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당시 총을 쏜 사실도 없고 총 쏠 여유도 없었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진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이었던 증인은 10.26사건으로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계엄사령부 치안처장을 겸직하게 되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비상계엄 선포후 치안본부,중앙정보부 등지에서 계엄사 치안처로 올라오던 각종 정보보고가 11월 중순부터 갑자기 중단된 사실이 있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나중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모든 보고를 합수부로만 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부장검사=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겠다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대통령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인 것은 명백한 반란이며 당시 상황은 내란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김종환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5월14일 내무부장관이던 증인은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시위상황을 보고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시위진압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고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언을 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관계장관 회의에서는 그런 발언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김부장검사=8월10일 롯데호텔 식당에서 유학성 피고인이 증인에게『최규하 대통령이 곧 하야할 것같으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주재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당시 유피고인이 정보제공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동원 증인

▲이재순 검사=수경사령관 작전참모로 근무한 증인은 79년 11월16일부터 같은해 12월12일까지는 장태완 장군을,79년 12월13일부터 80년 8월20일까지는 노태우 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모셨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장사령관이 술에 취한채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습니까.

▲박증인=그렇지 않습니다.원래 성질이 급한데다 불의를 보면 성격이 더 급해져서 그렇지 당시에 내린 지시는 모두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검사=수경사병력을 출동시켰다가 조재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듣고 병력을 복귀시켰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하지만 노장관이 명령을 한 것은 새벽 2시였고 장사령관이 병력을 대기시킨 것은 새벽 1시30분이어서 30분정도 병력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성환옥 증인

▲이재순 검사=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이던 증인은 12월 8일에서 10일 사이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과 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한 협조를 부탁받고 보안유지를 위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요.

▲성증인=그렇습니다.

○김만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증인이 위원장으로 군무하던 중보위 사회정화위원회가 중정·검찰·경찰·보안사 등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고위급 숙정자 15명,B급 1백64명으로 분류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허삼수 피고인도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 참석,숙정대상자 결정과 사회정화분과위원장 선정에 관여했습니까.

▲김증인=북정대상자 결정에는 참여했지만 사회정화분과위원 선정에 참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1996-07-09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