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소뜸/분단의 비극적 현실 영상화(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길소뜸/분단의 비극적 현실 영상화(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양윤모 기자 기자
입력 1995-09-02 00:00
수정 199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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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찾기서 착안… 국제영화제서 수상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85년 화천공사 제작)은 한국 현대사의 농축이다.필자는 북(함경남도)의 아버지,남(제주도)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다.그래서 곧잘 나의 탄생은 분단의 산물이라고 말하곤 한다.성장기 나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명절이면 술타령과 꺼이꺼이 우시는 것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그것이 한의 삭힘이라는 것을….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과의 재회는 물론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자책감과 좌절감을 이기기 위해 쓰디쓴 소주에만 의지했을 뿐이다.끝내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시며 단 한말씀,할아버지를 부르는게 아닌가.

평론가의 문턱에 들어설 즈음,그러니까 꼭 10년전 여름 대한극장 개봉때 관람한 「길소뜸」은 직업상의 이유로 반복해서 볼적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생면부지의 아들을 자신의 장남으로 입적시키기 위해 가족들과 회의를 하는 김동진(신성일 분)의 모습은분단후 모든 아버지 세대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의 고리로 짓누르는 아픔을 더해준다.

추억과 현실,역사와 오늘의 모습이란 무엇일까.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퍼내어도 풋풋한 추억이지만 세월이 훨씬 지나 변화된 모습으로 마주한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33년만의 해후와 애타게 찾던 그 아들(한지일 분)이 눈앞에 있건만 본능의 직감을 거부하고 법의학에 의한 친자확인 결정도 애써 부인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는 민화영(김지미 분)의 현실이 야속한 드라마 작법같지만 이것이 곧 사실주의 미학에 입각한 객관적인 서술의 정직한 태도이다.

대체로 인간은 경우는 다르지만 하나의 인생 안에 두개의 세계를 간직하게 마련이다.동진은 1남2녀와 사려깊은 남편을 둔 화영의 다복한 형편에 비교할때 초라한 모습이다.그는 두개의 가정을 잊어본 적이 없다.현재의 가족인 아내와 다섯아들을 거느리고 달동네에 살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또하나의 가정,즉 추억의 가정을 한번도 기억 밖으로 내몬적이 없다.

이처럼 분단이후 우리사회 내부에 내재하는 또 한번의 비극적 현실을 임권택 감독은 끔찍하리만치 엄격하게 통제된 카메라(정일성)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영화 「길소뜸」의 원인은 TV이며 결과는 필름이다.83년 KBS­TV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TV보다 한층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였다.제36회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제22회 시카고영화제 「게츠 세계평화상」도 수상한 작품이다.<양윤모 영화평론가>
1995-09-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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