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세대 주권(외언내언)

자필세대 주권(외언내언)

입력 1992-12-18 00:00
수정 199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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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새파란 회칼로 생선회를 기막히게 뜨는 일식집 주방장 아저씨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아저씨는 마음을 정하셨습니까?』그러자 굵직하고 큰 목소리로 『대통령요?물론이지요.나는 지조지키는 분으로 결정했습니다』묻지도 않는 부분까지 서슴지않고 대답하는 바람에 이쪽이 당황하고 말았다.음식을 날라주는 예쁘고 명랑한 여자종업원에게 같은 질문을 또 해보았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전 그래도 아파트 싸게 준다는 분이 좋은 것같아요』역시 막힘이 없었다.이윽고 저녁나절,이번에는 우아한 저녁모임에서 피아노를 아름답게 치던 무대위의 피아니스트를 좌석으로 초청하여 역시 「결심」이 섰느냐고 물었더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는 역시 안정을 선택하기로 했어요』하고 대답했다.

이런 과정에서 놀랍고 새롭게 생각되었던 것은 온 유권자가 한결같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점이었다.그저 단지 「결심」을 물었을 뿐인데도 자신의 정해진 마음을 쾌쾌히 털어놓고 그 이유도 당당하게 펼치곤 했다.전시대와는 다른 점인것 같았다.

80년대초에 중학생이었던 자녀를 둔 두동료는 같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그중 A씨네 아들은 부모의 의견에는 아무 구애도 안받고 자신은 『검은 두루마기를 선택한다』고 선언했다는 것이었고 B씨네 딸은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나는 바바리코트 입은 신사의 말이 마음에 든다』면서 마음을 바꾸지 않더라는 것이다.그 두집 아이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그들이 똑같이 「교복자율화시대에 성장한 첫 유권자라」라는 점이었다.

다 자란 신체를 교복 안에 구겨넣어 부모들과 교사들이 감시하기 좋은 상태로 학교와 집을 오가며 규격화된 학창생활을 보내던 세대와는 다른 그들도 드디어 유권자로 성장한 것이다.이렇게 다양하고 분방한 의견들이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예상을 허락해 주지않은 선거가 오늘 드디어 결판이 난다.긴장이 엄습해온다.어쨌든 지금 할 일은 투표장으로 가는 일이다.그리고 심판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1992-12-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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