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폐쇄의 빗장」을 푸시오”/강용준

“이젠 「폐쇄의 빗장」을 푸시오”/강용준

강용준 기자 기자
입력 1990-08-14 00:00
수정 1990-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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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 조건」 들어 북녘 망향대열 막아서야 됩니까/김일성주석에 띄우는 어느 작가의 편지(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김일성주석.

이제부터 필자는 비록 제한된 지면인 대로 평소 필자가 『이놈만은…』하고 벼르며 생각해오던 한두가지 고언을 기탄없이 적어볼까 합니다. 피차 멀쩡한 처지에 입에 발린 인사치레 따위는 생략하겠습니다.

지난 71년 8월쯤의 일입니다. 서울의 최두선 한적총재는 1천만 이산가족 찾기운동에 관한 메시지를 귀측을 향해 띄우게 되고 귀측 역시 이산가족 찾기운동은 물론 가족의 자유왕래며 친척·친구 등의 서신교환사업도 아울러 이참에 같이 추가하되 10월중의 제네바가 아니라 당장 내달 9월중 판문점에서 만나자,이렇게 대단히 시원시원하게,순발력있게 대응해나왔습니다. 그 결과 그해 9월20일 제1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고 솔직이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면서도 온 국민들 또한 무언가 이참에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사업 하나가 성사되기는 될 모양이다 싶어 사태의 결과를 긴장감속에서 주시했습니다.

그러나 다 아시다시피 회담은 채 두달이 못가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락정보부장이며 박성철제2부수상등에 의한 평양과 서울의 교차밀행,7·4 공동성명의 그 신선한 충격,다시 뒤이어 발족한 조절위원회의 기능이 귀측의 표현법을 따라 회담의 성사를 「담보」하는 듯한 기미를 한때 보인 적이 없지도 않습니다만 역시 그뿐,귀하의 실제이기도 한 김영주조직지도부장의 이른바 「8·28 성명」이 이쪽의 공동위원장이기도 한 이후락부장을 「민족의 영웅」으로부터 「민족의 반역자」로 일거에 격하,매도해버림으로써 사실상 모든 사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리고 맙니다. 아닙니다. 반도간첩사건,휴전선 내에서의 총격사건,또한 저 끔찍한 도끼만행사건 등 보다 더 도발화·야만화·잔인화된 상황속에서 온 국민은 다시한번 시니시즘과 민족패배주의만을 체험해야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이지만 이에대한 모든 책임은 귀하와 귀하의 충실한 전사들에게로 귀속이 됩니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자인들이 오순도순 조용히모여앉아 1천만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해나가면 그만인 것을,자문위원도 설치 운영하자,남북의 각 정당사회단체들도 초청하여 동석시키자,어쩌고하여 판을 깬 것이 바로 귀측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 대목이 앞에서 필자가 「이놈만은…」하고 벼르어오던 고언들 중의 하나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귀하는 귀하가 통치하는 북쪽의 정치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독재하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귀하가 더 잘알고 있는 바 입니다.

역시 피차 다 알고 있는 얘깁니다만 73년 9월의 평양회담에서 한적측 대표단은 『마침 추석도 임박했고 하여 추석성묘단의 상호방문을 토의 의제로 제기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귀측은 성묘단의 상호방문이 실현되기 위하여는 먼저 남한의 법률적 사회적 장애부터 제거되어야 한다는 응수해왔습니다. 이 경우 법률적 사회적 장애란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을 가리킵니다.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서만주지방의 속담에「삶은 쇠대가리가 다 웃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겨묻은 개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의 속담보다 좀 더 직설적이고 진하게 감정이 개입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또한 바로 이놈이 필자로서 꼬 해두려고 별러온 다른 하나에 해당이 됩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앰네스티 보고서속에는 희한하게도 10만명이상의 정치범들이 적법한 재판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북한의 여러 형무소며 이른바 온성·회령 등 지역의 수용소군도에 수감되어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필자 역시 읽어본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솔직이 어느 편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요컨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봉건왕조 세습적이며 오직 한가지 구호만이 판을 치는 사회,이른바 사회안전법 같은 것은 오히려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법 그 자체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1인독재체제 전체주의 사회에서 정치범 사상범이 겨우 10만명정도에 머물 턱이 없는 일입니다. 이 경우 필자는 확신감을 가지고단언할 수 있습니다. 48년도라고 기억됩니다만 19세안팎의 마을 청소년 셋이 뚜렷한 죄목이며 증거도 없이 야밤에 군내무서로 연행되어가 잔인한 고문의 과정을 거쳐서 7년 내지 8년형의 징역을 언도받고 저 유명한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는데 그 광경을 필자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바가 있습니다. 서울의 무슨 청년단체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것이 마을의 세포원에 의해 밀고된 죄목의 내용이었습니다만,물론 웃기는 얘기지요. 왜냐하면 무슨 연락을 하고 자시고 할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처음부터도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남한의 법률적·사회적 장애부터가 제거되어야 한다고요? 그래야지 성묘단이 오갈 수 있게 된다고요? 참으로 삶은 쇠대가리가 다 웃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바로 달포쯤 전,이른바 그 국회회담의 연기통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한번 더 묻거니와 그 쪽에 진정한 의미의 국회며 국회의원이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에 의하여 지명된 단일후보를 흑백함 투표양식에 의해,그나마도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하면서 투표용지를 집어넣는 투표행위,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민주선거일 수가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여 뽑힌 자가 진정한 의미의 국회의원일 수 있을 턱이 없는 일입니다.

김일성주석.

이제 1백년쯤 전에나 통용되었음 직한 낡은 수법은 거두세요. 며칠전 귀하의 충실한 전사 한 분은 『이쪽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합디다만,오오!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하기야 원초적으로 무슨 문제같은 것이 성립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어느 면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솔직이 너무 촌스럽게,파렴치하게 들립니다.

현하 세계의 대세가 어떤 식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쯤은 귀하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귀하가 해야 할 일도 극히 자명하다고 여기는 바입니다.

개중에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 더러 끼어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1990-08-1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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