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어느 피고의 법정 대화/손성진 사회부기자(현장)

판사와 어느 피고의 법정 대화/손성진 사회부기자(현장)

손성진 기자 기자
입력 1990-03-13 00:00
수정 1990-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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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통일관에 답답함만이…

12일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전 「전대협」의장 임종석피고인(25)에 대한 2차공판이 끝나갈 즈음 재판장인 정상학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임피고인의 통일관 등에 관해 신문을 했다.

많은 공안사건을 맡아 재판을 해오며 운동권학생들의 통일관이나 정부에 대한 인식을 잘 알고 있는 정판사였지만 가장큰 학생조직인 「전대협」의장을 지냈던 임군의 생각을 직접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인 듯했다.『남북통일이 7천만 동포의 염원이자 이상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나 분단은 현실이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서로 달리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판사는 어느때보다 부드럽고 진지한 목소리로 임군에게 물었다.

『45년동안 분단상태가 계속되면서 사상과 체제에 차이가 벌어진 점은 인정한다. 이를 극복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차이를 먼저 받아들이고 통일의 주체로서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소 숙연해진 표정을 한 임군이 재판장에게 한 답변이었다.

정부장판사는 이어 『그렇다면 지난60년대말부터 최근까지 북한이 무력수단으로 우리를 계속 괴롭혀온 사실을 알고 있는가. 또 이 사건들이 통일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반문하면서 울진ㆍ삼척지구 간첩침투사건,1ㆍ21청와대 기습사건,판문점도끼 만행사건,버마 아웅산폭발사건,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그리고 최근의 제4땅굴사건까지 일일이 예로 들었다.

임피고인은 그러나 『들어서 알고 있다』고만 말할뿐 이런 사건들을 사실로 인정하는지와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임군은 『이러한 사건들이 군사적 대치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역으로 북이 남으로부터 그러한 위협을 받을 수도 있을것이다. 1년에 한번씩 대대적으로 하는 팀스피리트훈련과 같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돌렸다.

이날 재판을 마치고 판사실로 돌아가는 정판사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못했다.

재판때마다 법정에서 박수를 치고 재판부의 신문에 큰소리로 웃는 방청객들의 태도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임군에 대한 신문에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했던 때문인것 같기도했다.
1990-03-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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