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t 트럭에 제네시스급 부담 줄 경유값 인상

[사설] 1t 트럭에 제네시스급 부담 줄 경유값 인상

입력 2017-06-26 20:52
수정 2017-06-2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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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경유값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경유를 연료로 쓰는 자동차를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한 결과다. 기존의 수송용 연료값은 휘발유, 경유, LPG의 비율이 100대85대50이다. 그런데 정부의 시나리오에는 경유값을 휘발유값의 최소 90%에서 최고 125%까지 올리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환경정책평가연구원·교통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이 수행한 용역 결과라고 한다. 경유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치고 이 소식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는 당장 “경유값을 125%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아주 비현실적인 주장이 보도됐다”면서 “영세 자영업자 대책 등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도 “정부가 미리 방향을 정해 놓은 것은 없다”면서 “용역 안의 10개 시나리오를 모두 올려놓고 논의할 것”이라고 펄쩍 뛰었다고 한다. 물론 경유값을 하루아침에 휘발유값의 125%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인상률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 ‘경유값을 올린다’는 원칙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서민 생계를 담보로 세수를 늘리겠다는 뜻인지 궁금하다.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정책 추진 과정에서 철저하게 앞뒤가 뒤바뀐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미세먼지가 국민의 생명에 위협을 미치는 상황에서도 그 원인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 6월 미세먼지 특별 대책에서 수도권 초미세먼지는 발생 원인의 29%가 경유차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몇 달도 지나지 않은 10월 환경부 국감에서는 시멘트 공장과 연탄 공장의 비산먼지가 원인의 38%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이런데도 경유차 소유자들이 기름값 인상을 수용할 수 있겠는지 당국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어 보라.

경유값 인상은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시급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양극화 해소에도 어긋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이 쓰는 1t 트럭 포터Ⅱ는 자동변속기 기준 경유 1ℓ로 8.9㎞를 달린다. 최고급 승용차인 3300㏄급 제네시스 G80의 휘발유 공인연비도 8.9㎞/ℓ로 같다. 경유값을 조금이라도 올린다면 1t 트럭 사용자들이 제네시스급 기름값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먼저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국민이 수긍할 수 있게 밝히기 바란다. 대책은 그 이후에 내놓으라.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해도 서민은 맨 나중 순위가 돼야 한다.

2017-06-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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