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김 실장님 별명이 뭔줄 알아? 교주님이야 교주님. 김 실장님이 ‘이것 사라’고 하면 우르르, ‘저거 된다’고 하면 또 우르르.”
“나야 추천만 하는 사람이고, 결정은 자신들이 하는 거죠.”
증권사 작전세력과 이를 이용한 사기행각을 다룬 영화 ‘작전’(2009년)에 나온 대사다. 작전세력이 유명 애널리스트(증권 분석가)를 매수, 허위정보를 흘려 투자자들의 매입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일확천금의 욕망을 안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이제 그리 새롭지 않다. ‘개미’라고 불리는 소액 투자자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보도도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사실 개미들은 대형 주식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이들은 개미들이 주식 정보에 어둡다는 점을 이용, 허위정보 등을 유포해 주가를 급격히 띄운 다음 자기들이 헐값에 사들인 주식을 비싸게 팔아치우고 사라진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개미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해 새로운 수법으로 피를 빨아먹은 자칭 ‘족집게’들이 등장했다.
●족집게 분석가가 노린 것은 통화료?
전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2일 증권정보 사이트에 거짓 정보를 흘려 특정 주식을 사도록 선동한 조모(36)씨 등 이른바 ‘사이버 애널리스트’ 7명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증권투자정보업체 A사 증권본부장 김모(50)씨와 B사 대표 백모(48)씨 등 4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A사와 B사가 각각 운영한 2개의 사이트는 투자자들 사이에 믿을 수 있는 주식정보 사이트로 알려져 왔다. 조씨 등은 이곳에서 영화 ‘작전’의 ‘김 실장’처럼 회원들 사이에 족집게 분석가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 3개월 전부터 세력들이 줄기차게 매집해 온 차기 급등주’ ‘애플사도 탐내는 결정적인 핵심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정말 기가 막힌 기업’ ‘무상증자, 해외기업 M&A 등 메가톤급 재료 줄줄이 대기!’
조씨 등은 정보에 어두운 개미들을 현혹할 만한 내용들로 사이트 소개글을 띄웠다. 이들은 시중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지라시’(사설 정보지)와 달리 유명 전문가라는 타이틀까지 걸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을 속이기가 더없이 쉬웠다.
이들의 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 “이 시간에도 물량이 떨어지고 있다.”, “작전세력들이 손을 놓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등 시간이 촉박하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특정기업의 주식를 사라는 얘기는 절대로 넣지 않았다.
결국 어떤 종목을 사야하는지는 소개글 하단에 나온 자동응답전화(ARS) 번호로 전화를 해야만 알수 있었다. ARS 이용료는 30초에 2000원. 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2200원이나 됐다. 1분이면 4400원, 10분이면 4만 4000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15~20분씩 국내외 정세 등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 추천 종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ARS 이용료를 벌기 위한 꼼수였다.
오랜 설명을 끝내고도 이들은 개미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 스스로 답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보니 막상 추천한 개별종목들이 기껏 앞서 했던 경제흐름 얘기들과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많았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앞뒤 안맞는 정보가 의심스러웠지만 워낙 고수들이라고 광고를 해놓은 터라 그냥 믿는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말에 속아 3~6개월 동안 주식을 붙들고 있다 큰 돈을 날린 사람들도 있었다.
적발된 애널리스트 7명이 지난 3년간 ARS를 이용해 벌어들인 수익은 15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몸담고 있던 사이트 역시 같은 시기 ARS로만 94억원을 벌어들였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도 ARS를 통한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의 그릇된 행각을 묵인하고 오히려 홍보까지 했다.”고 말했다.
●등록만 하면 누구나…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정체
조씨 등 7명은 대부분 증권관련 업무 경험과 자격이 없는 가짜 전문가들로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중 한명은 주식과 전혀 무관한 방사선과 전공자였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라는 명칭 자체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증권사 소속 연구원 등 정식 분석가와는 다르게 이들은 ‘유사투자자문업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간단한 투자판단과 조언 수준의 일만 하도록 돼 있다.
유사투자자문업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별한 자격 없이도 누구나 금융위원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등록만 하면 된다. 금융위에서 자체적으로 자격심사를 하긴 하지만 까다롭지는 않아 어느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쉽게 통과된다.
문제는 이렇게 양산된 사이버 애널리스트들 중 일부가 증권정보 회사와 계약을 한 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전문가라도 되는 양 과대포장해 개인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보업체들도 이들의 인기에 편승해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같이 홍보에 나서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피의자들이 활동한 곳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이트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쉽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조씨 등은 경찰에서 “이런 일은 업계 관행으로, 다른 애널리스트들도 다 하고 있는 일”이라면서 “왜 나만 단속했느냐.”고 따지기까지 해 경찰을 황당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실제 작전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허위정보 유포의 이면에는 작전이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면서 “단순히 ARS 이용료를 벌려고 이런 짓을 했을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금융감독원에서 거래정보를 받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나야 추천만 하는 사람이고, 결정은 자신들이 하는 거죠.”
증권사 작전세력과 이를 이용한 사기행각을 다룬 영화 ‘작전’(2009년)에 나온 대사다. 작전세력이 유명 애널리스트(증권 분석가)를 매수, 허위정보를 흘려 투자자들의 매입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작전 세력’의 주식사기 전모를 다룬 영화 ‘작전’의 한장면
일확천금의 욕망을 안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이제 그리 새롭지 않다. ‘개미’라고 불리는 소액 투자자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보도도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사실 개미들은 대형 주식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이들은 개미들이 주식 정보에 어둡다는 점을 이용, 허위정보 등을 유포해 주가를 급격히 띄운 다음 자기들이 헐값에 사들인 주식을 비싸게 팔아치우고 사라진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개미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해 새로운 수법으로 피를 빨아먹은 자칭 ‘족집게’들이 등장했다.
●족집게 분석가가 노린 것은 통화료?
전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2일 증권정보 사이트에 거짓 정보를 흘려 특정 주식을 사도록 선동한 조모(36)씨 등 이른바 ‘사이버 애널리스트’ 7명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증권투자정보업체 A사 증권본부장 김모(50)씨와 B사 대표 백모(48)씨 등 4명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A사와 B사가 각각 운영한 2개의 사이트는 투자자들 사이에 믿을 수 있는 주식정보 사이트로 알려져 왔다. 조씨 등은 이곳에서 영화 ‘작전’의 ‘김 실장’처럼 회원들 사이에 족집게 분석가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 1일 적발된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주식투자 사이트에 올린 글의 일부.
‘지난 3개월 전부터 세력들이 줄기차게 매집해 온 차기 급등주’ ‘애플사도 탐내는 결정적인 핵심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정말 기가 막힌 기업’ ‘무상증자, 해외기업 M&A 등 메가톤급 재료 줄줄이 대기!’
조씨 등은 정보에 어두운 개미들을 현혹할 만한 내용들로 사이트 소개글을 띄웠다. 이들은 시중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지라시’(사설 정보지)와 달리 유명 전문가라는 타이틀까지 걸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을 속이기가 더없이 쉬웠다.
이들의 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 “이 시간에도 물량이 떨어지고 있다.”, “작전세력들이 손을 놓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등 시간이 촉박하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특정기업의 주식를 사라는 얘기는 절대로 넣지 않았다.
결국 어떤 종목을 사야하는지는 소개글 하단에 나온 자동응답전화(ARS) 번호로 전화를 해야만 알수 있었다. ARS 이용료는 30초에 2000원. 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2200원이나 됐다. 1분이면 4400원, 10분이면 4만 4000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15~20분씩 국내외 정세 등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 추천 종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ARS 이용료를 벌기 위한 꼼수였다.
오랜 설명을 끝내고도 이들은 개미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 스스로 답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보니 막상 추천한 개별종목들이 기껏 앞서 했던 경제흐름 얘기들과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많았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앞뒤 안맞는 정보가 의심스러웠지만 워낙 고수들이라고 광고를 해놓은 터라 그냥 믿는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말에 속아 3~6개월 동안 주식을 붙들고 있다 큰 돈을 날린 사람들도 있었다.
적발된 애널리스트 7명이 지난 3년간 ARS를 이용해 벌어들인 수익은 15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몸담고 있던 사이트 역시 같은 시기 ARS로만 94억원을 벌어들였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도 ARS를 통한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의 그릇된 행각을 묵인하고 오히려 홍보까지 했다.”고 말했다.
●등록만 하면 누구나…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정체
조씨 등 7명은 대부분 증권관련 업무 경험과 자격이 없는 가짜 전문가들로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중 한명은 주식과 전혀 무관한 방사선과 전공자였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라는 명칭 자체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증권사 소속 연구원 등 정식 분석가와는 다르게 이들은 ‘유사투자자문업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간단한 투자판단과 조언 수준의 일만 하도록 돼 있다.
유사투자자문업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별한 자격 없이도 누구나 금융위원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등록만 하면 된다. 금융위에서 자체적으로 자격심사를 하긴 하지만 까다롭지는 않아 어느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쉽게 통과된다.
문제는 이렇게 양산된 사이버 애널리스트들 중 일부가 증권정보 회사와 계약을 한 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전문가라도 되는 양 과대포장해 개인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보업체들도 이들의 인기에 편승해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같이 홍보에 나서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피의자들이 활동한 곳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이트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쉽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조씨 등은 경찰에서 “이런 일은 업계 관행으로, 다른 애널리스트들도 다 하고 있는 일”이라면서 “왜 나만 단속했느냐.”고 따지기까지 해 경찰을 황당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실제 작전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허위정보 유포의 이면에는 작전이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면서 “단순히 ARS 이용료를 벌려고 이런 짓을 했을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금융감독원에서 거래정보를 받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