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좋은 의사를 가려내는 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좋은 의사를 가려내는 법

입력 2015-06-03 10:46
수정 2016-06-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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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한 실력파 의사? 실력보다는 친절한 의사?

 

사실, 일반인이 몸이 아파 병원을 갈 때,특정 의사를 찾아서 가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병원 이름을 먼저 봅니다. “저 정도 병원이면 거기에서 진료하는 의사야 당연히 뛰어나겠지”라고 믿는 것이지요. 물론 지명도가 높은 의사에게는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 서울의 내로라 하는 대학병원 전문의 중에는 벌써 1년 이상 진료 예약이 밀려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겠다고 예약진료를 신청하면 “진료 예약일이 2016년 2월 17일 입니다” 이런 식의 예약 통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정이 급하지 않다면야 못 기다릴 것도 없겠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가 의사 한번 만나기 위해 1년 정도를 기다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요. 물론, 그 병원도 아픈 환자더러 1년 후에 오라는 뜻으로 예약을 받아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약조차 받지 않는다면 비난이 쏟아질테니 “상황이 이렇습니다. 알아서 판단하세요” 정도의 의미로 예약신청을 받아주는 것이겠지요.

 좋은 의사를 찾는 것은 환자의 권리

 이 대목에서 ‘좋은 의사’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참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얼굴만 보고, 또 입소문만 듣고 의사의 좋고 나쁨을 가늠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그래서는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사가 모두 같지 않으니 어쩌면 환자의 생사가 걸린 국면이라면 그 중 ‘누가 좋은 의사인가’를 가리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를 두고 ‘의사들 등급 매기기’라고 폄하할 일은 아니지요. 내 돈을 들여 치료받는 의료 수요자들이야 아무리 하찮은 병이라도 보다 나은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어 하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또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병을 꼭 치료하고 싶다면 인품이나 취향을 따질 것 없이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의사를 택하면 될 것이고, 당장 목숨이 걸린 병은 아니지만 치료 절차가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병을 가졌다면 당연히 좀 더 친절한 의사에게 마음이 끌릴 것입니다.

 

 유능한 의사를 찾는 게 중요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의사의 기준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기준은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의사입니다. 누가 뭐래도 의사는 병을 정확하게 진단할 줄 알아야 하고, 병증에 따라 가장 적합한 치료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에 더해 자신의 진단과 치료를 통해 병증의 개선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짚어야 할 문제는, 지금도 수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무능이나 성실하지 못한 태도, 안일함이나 장비의 문제 등으로 생각보다 많은 오진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진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치료로 이어지는데, 그러고도 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환자야 당장 오진 여부를 알기도 어렵고, 설령 오진 사실을 알더라도 대부분은 문제 삼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밉든, 곱든 나를 치료해주는 사람한테 밉보여 득될 게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유능한 의사를 찾아내는 일은 환자에게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의사에게는 실력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이 대목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가령, 실력은 좀 떨어지지만 친절하고 성실해 환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의사와, 실력은 있지만 환자에게 친절하거나 성실하지도 않은 의사를 어떻게 견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상상이라고 했지만 이 상황은 현실입니다. “실력을 좋은데 사람 됨됨이가 영…”인 의사도 많으니까요.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좀 기분 나쁘고, 병의 경과를 설명해 주지 않아 답답하더라도 잘 낫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후자를 고르는 데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병 정도면 어떤 의사라도 다 고만고만 치료할 수 있으니 맘 편하게 해주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면 전자를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실력도 좋은 데다 좋은 품성까지 갖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런 의사가 흔치 않으니 고민이지요.

 문제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열에 여덟, 아홉은 의사의 능력이나 됨됨이 등을 따로 따지지 않고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의료도 경쟁이라지만 실력이 부족한 의사가 더 성찰하고,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인성이 비뚤어진 의사가 자신을 되돌아볼 생각을 못하게 되고, 여기에서 배태된 문제는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런 의사도 있긴 합니다. 제가 아는 대학병원의 의사 한 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찬바람이 쌩∼돌만큼 냉랭하고 단호합니다. 그러니 회진 때나 외래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그 의사에게 말 한 마디 붙이려 해도 쭈뼛거리기 일쑵니다. 그러나 우연히 사사로운 자리에서 만난 그 분의 속내는 전혀 달랐습니다. 원래는 무척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 환자를 큰 시야에서 살피지 못해 몇 번 아픔을 겪었고, 그 때부터 일부러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환자의 상태를 보게 되더라구요. 그 후 저는 환자에게 일부러 살갑게 굴기 보다 그 환자가 가진 질병 치료에 전념하는 게 내 일이고,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임을 깨달은 거죠. 그렇다고 환자에게 할 얘기를 안 하는 건 아녜요. 필요한 얘긴 다 하는데, 환자들이 그런 저를 좀 어렵게들 여기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또다른 의사는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의사 말을 잘 들으면 건강하게 살지만, 의사를 따라서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없다’는.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의사는 전문적인 판단으로 환자에게 강요와 유사한 수준의 강한 권고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환자에게 가볍게 보이면 더러는 의사의 이런 지시까지도 가볍게 여겨 병을 키우기도 합니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환자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지요.”

 전문적인 능력은 의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왜냐 하면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환부만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상처 난 마음까지 치료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환자는 마음의 병을 갖고 있습니다. 병이 크던, 작던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아픔은 십중팔구 마음의 아픔으로 전이되고, 그래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다들 눈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병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환자들이 유능한 의사를 만나 병을 고치는 건 정해진 치료 패턴입니다만, 그 유능하다는 의사들도 어지간하면 개입하기 싫어하는 게 바로 환자의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안 보이니 딱히 치료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애매한 마음도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금방 치료책이 손에 잡힙니다. 마음에는 마음으로 대응하는 것이 상책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환자에게 “이 병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든가 “최선을 다할테니 걱정 말고 같이 노력해 보자”라든가, 아니면 “어렵지만 함께 애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등 치료 결과에 상관없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말 한 마디가 바로 처방전에 적어낼 수 없는 명약이지요. 그런 의사의 마음씀이 때로는 어떤 약이나 치료보다 효과적으로 환자의 병을 고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의사들이 말하는 “의사는 치료로 말한다”는 인식은 너무 원리적이고 고답적입니다.

 사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그들은 작다 못해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위안을 얻습니다. 그 감동과 위안이 질병의 치료에 자신감을 부여하고, 치료 효과를 키운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사가 환자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가를 따지는 것도 의사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병원이 ‘앓는 영혼의 양지’라면 의사는 ‘앓는 영혼의 구원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근엄하고 과묵한 의사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너무 근엄한 의사들이 제발 그 ‘근엄’ 좀 덜어냈으면 합니다. 아니, 온 나라, 방방곡곡에 근엄이 넘치니 수퍼갑은 언감생심 평생 갑 한번 되어보지 못한 을족들은 기가 죽어 몸 붙일 데가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 국회의원과 장·차관, 법률가, 교수, 심지어는 그러지 말아야 할 공무원과 경찰까지 근엄하기만 하니, ‘개콘’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에는 근엄한 사람과 근엄하지 않은 사람만이 있을 뿐”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오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면 근엄이라는 게 편리하기는 합니다. 눈 좀 내리 깔고, 적당하게 목을 곧추 세우고, 입꼬리를 아래로 바짝 땡긴 뒤 눈에 힘 좀 주면 그런 인상 자체가 넘기 어려운 벽이 되어 세상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들 접근하지 못하고, 내 구린 모습을 감추는 효과는 확실하지요.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근엄은 곧 소통의 단절이며, 이해의 고립일 뿐입니다. 그것을 편하게만 여기면 이내 고립의 수렁에 빠져 종국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위엄 속에 갇히고 맙니다.

 그런 거추장스러운 근엄보다 생각을 좀 바꿔 쾌활 모드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꽉 닫힌 입꼬리만 풀어도 그걸 바라보는 환자들은 가슴 속의 얼음장이 풀리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없는 약을 먹여도 못 고칠 마음의 병을 한 방에 고칠 수 있다는데, 왜 한사코 그걸 마다 하고, 어려워들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릴없이 실실거리거나 넋이 나간 듯 헤헤거리라고 주문하는 건 아닙니다. 근엄의 빗장을 조금만 풀면 거기에 마치 석류알 같은 상큼한 명랑이 깃들 것이고, 그런 표정으로 환자들을 토닥거려 준다면 그가 바로 수많은 환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바로 그 ‘명의(名醫)’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까지 좋은 의사를 선별하는 나름의 기준을 제시해 봤습니다만, 의료계를 모르는 일반 환자들이 겪어보지도 않은 의사를 가리고, 품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입소문을 캐고, 더러는 줄도 대보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보려고 하면 보이는 게 또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당장 인터넷을 뒤져도 꽤 쓸만 한 정보가 많고, 그 보다 더 정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인터넷의 뉴스 정보를 뒤지는 것도 의미있는 정보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일선 기자들이 쓰는 기사는 대체로 기사 준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사실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매체의 기사를 일별하는 것도 좋은 의사를 가려내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 기사화할 연구 성과나 임상 실적이 없는 데도 무작정 대문짝처럼 펼친 기사는 배경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요새는 더러 광고성 기사가 신문에 버젓이 실리기도 하고, 또 특별한 능력도 없으면서 뻔질나게 공중파나 종편, 케이블 채널을 기웃거리는 ‘날탕’ 의사도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의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의사가 허접한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시덥잖은 소리나 해대고, 말도 안 되는 변설을 건강정보랍시고 늘어놓는 걸 보면 부아가 치민다”고요. 저도 상당 부분 공감하는 말입니다. 텔레비전에 얼굴 내미는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제가 봐도 하품 나올 ‘짓’들을 하긴 하더군요. 그래도 명색 ‘사’자 가진 전문직업인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방송에서 히히덕거리거나 거기서 한다는 말이 “햄버거도 좋은 걸 골라 먹으면 괜찮다”는 등 한심하다 못해 냉소를 자아내는 수준이어서 그렇습니다.

 수많은 불특정 시청자가 보고, 듣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는 의사는 어떻습니까. 한 출연자가 “그러면 비타민제를 자주 먹는 게 감기나 독감 예방에 좋겠네요?” 그러자 의사라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비타민은 인체의 면역 기능을 강화해 당연히 감기 예방효과가 있지요.” 제 생각에 그가 제대로 된 의사라면 비타민을 자주 먹으라고 말하기에 앞서 “평소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기초체력을 다지고, 손을 자주 씻으며,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는 게 보다 정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 의사가 정답을 몰랐을 리는 없으니 그렇게 말했다면 일단 ‘저의’를 의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거기에서 보고 듣는 게 다 정답이고, 진실이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바보되기 십상입니다. 왜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는지 곰곰 되짚어 볼 일이지요. 인터넷은 어떠냐구요?그거야 많은 부분을 신문이나 방송 컨텐츠를 모아서 전달하는 것이니 신문,방송과 다를 게 없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허접한 방송 프로나 광고성 신문기사 보고 의사를 고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 스포트라이트의 그늘 속에 숨어있는 좋은 의사가 훨씬 많다는 사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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