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행방불명
    2025-05-08
    검색기록 지우기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09
  • 생존 후유장애인 김옥선·수형인 양이운씨 등 153명… 4·3희생자로 새롭게 인정

    생존 후유장애인 김옥선·수형인 양이운씨 등 153명… 4·3희생자로 새롭게 인정

    제주 4·3 희생자 153명과 유족 4187명이 추가 결정됐다. 특히 4·3 생존 후유장애인 김옥선씨가 행정소송에서 처음으로 불인정 처분이 취소된 후 재심의를 통해 새롭게 희생자로 인정받았다. 또한 수형인 가운데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인천 형무소에서 복역했던 양이운씨도 포함돼 다른 4·3수형인들의 재심 청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도는 지난 4월 29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제36차 회의에서 4340명(희생자 153명, 유족 4187명)을 4·3희생자 및 유족으로 추가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희생자 153명 가운데 사망자는 77명, 행방불명자 41명, 후유장애 1명, 수형인 34명이다. 이번 결정은 제8차 추가신고 기간(2023년 1월1일~6월 30일)에 접수된 신고 건 중 세 번째 심의·결정사항이다. 이로써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13만 9434명(희생자 1만 5088명, 유족 12만 4346명)이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으로 공식 인정됐다. 생존 후유장애인 김 씨의 경우 재심의를 통해 공식 인정받음에 따라 외래진료비, 입원비, 건강검진비 등 의료비 지원과 함께 매월 70만원의 생활보조비를 받게 된다. 수형인 34명에 대해서도 추가 결정이 이뤄졌다.이 가운데 양 씨는 인천형무소 출소 후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실종선고 청구 심사에서도 1명이 신규 결정됐다. 이로써 실종선고 심사 완료자는 총 232명이 됐다. 아울러 장애를 앓다 사망한 분들의 유형을 후유장애인으로 심사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도는 새롭게 인정된 희생자들을 위해 상반기 중으로 제주4·3평화공원 봉안실에 위패를 설치할 예정이다. 특히 행방불명 희생자로 인정된 41명을 위해서는 별도의 표석도 신속히 설치할 계획이다. 생존희생자와 75세 이상 1세대 고령 유족(1950년생까지)에 대한 생활보조비 지원 등 복지 안내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생존희생자에겐 매월 70만원이 지원되며 희생자 배우자에겐 30만원, 75세 이상 1세대 유족에겐 10만원이 지급된다. 도는 새롭게 인정된 유족들에게 유족결정통지서와 함께 4·3유족증 신청서를 발송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항공·선박·주차료 감면 등 복지혜택 안내문도 포함된다. 유족복지 혜택 등 기타 자세한 내용은 제주도청 누리집 4・3종합정보시스템(http://peace43.jeju.go.kr)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도는 지난해 접수된 제8차 추가신고건에 대해 매월 4·3실무위원회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8차 추가신고에서는 총 1만 9559명(희생자 734명, 유족 1만 8825명)이 신청했으며, 4·3실무위원회는 올해 4월말까지 18회에 걸쳐 1만 8206명(희생자 479명, 유족 1만 7727명)에 대한 심사를 완료했다. 심사가 완료된 건에 대해서는 4·3중앙위원회에 최종 심의·결정을 요청하고 있다. 김인영 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2023년에 접수받은 제8차 희생자 및 유족 신고 건 중 이번이 세 번째 심의·결정이라면서 “앞으로 미결정된 희생자 및 유족들이 빠른 시일 내에 결정돼 유족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도는 롯데시네마, 제주4·3평화재단과 ‘4·3희생자 및 유족 영화관람료 감면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제주4·3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영화 관람료 감면을 지원한다. 이번 협약으로 4·3희생자와 유족들은 1일부터 롯데시네마 제주연동점과 서귀포점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감면 대상은 제주4·3특별법 제2조에 의해 결정된 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이며, 본인 포함 동반 3인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반관은 1만원, 리클라이너관은 1만 2000원으로 이용 가능하다.
  • “3개월 전 행방불명”…日 아이돌 출신 톱배우, 숨진 채 발견

    “3개월 전 행방불명”…日 아이돌 출신 톱배우, 숨진 채 발견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 이타가키 미즈키(24)가 실종 3개월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의 유족은 지난 17일 고인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이타가키 미즈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음을 알려드린다”며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유족은 “이타가키는 지난해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왔으며 올해 1월 말부터 행방불명이 됐다”며 “경찰과 친구들의 협력 하에 수색을 계속해왔지만 전날 도쿄도 내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팬 여러분께 소식을 늦게 전해드리게 돼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타가키는 항상 팬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자 연예 활동에 성실히 임해왔다. 최근에는 활동 복귀를 준비하던 중이었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것은 본인에게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유족은 “생전 응원해 주신 팬, 관계자분들께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작별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렇게 알리게 됐다. 현재까지의 활동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응원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타가키 미즈키는 2000년생으로, 2014년 일본 보이그룹 밀크(M!LK)로 데뷔했다. 이후 2020년 배우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팀을 탈퇴한 뒤 영화 ‘솔로몬의 위증’, ‘첫사랑 로스타임’, 드라마 ‘에일’, ‘기린이 온다’, ‘바보 야로의 키스’, ‘정직 부동산 2’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솔로몬의 위증’으로 2015년 제25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에서 신인남우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돌연 소속사와 계약이 해지됐으며, 팬클럽과 공식 SNS가 폐쇄되는가 하면 한달 간 종적을 감춰 팬들의 걱정을 산 바 있다.
  • 슬픔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아픔을 찾아나서는 ‘다크투어’ [세책길]

    슬픔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아픔을 찾아나서는 ‘다크투어’ [세책길]

    대학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는 처음이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구경했는데, 지금도 가장 많이 기억나는 건 제주도 남서쪽 대정읍에 있는 알뜨르 비행장이었다. 사실 알뜨르 비행장에는 별로 볼만한 게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주민들이 무심하게 밭일을 하는 너른 평지가 이어지고 그 너머 남해바다가 보이는 다소 심심한 풍경 뿐이기 때문이다. 딱 한가지, 콘크리트로 뭉뚝하게 지은, 건물인지 창고인지 알 수 없는 게 띄엄띄엄 보일 뿐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군에 맞서기 위해 건설한 공군비행장이고, 정체모를 콘크리트는 전투기 격납고였다. 우리가 서 있었던 평지는 사실 활주로였다. 근처 바닷가에 있는 송악산에 있는 포진지와 지하동굴까지 함께 연결시키면 뭔가 서늘한 생각이 든다. 일본을 향해 전진하던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과 몇 달에 걸친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데, 생각해보면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이 제주도 몫이 될 수도 있었다. 사실 그게 일본군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알뜨르 비행장을 둘러본 다음에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에 가보면 제주도가 겪었던 비극이 어떤 연속선 속에 존재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평화공원에 길게 늘어선 희생자 추모비를 봤을 때였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망날짜가 이어지는데, 어느 순간 똑같은 이름이 연달아 나오는 게 눈에 띄어서 유심히 살펴봤다. “김계생의 자 1, 4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김계생의 자 2, 3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김계생의 자 3, 3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김계생의 자 4. 1세 남. 1948년 11월 13일 사망” 내게 4·3이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어야 했던 아이들, 그리고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네 아들의 어머니로 남았다. 여행이란 즐거운 것이다. 혹은 즐거움을 위해 여행가방을 챙긴다. 어떤 이들은 슬픔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슬픔을 되새기고 그 슬픔 속에서 삶의 희망을 되짚는 여행을 찾아 나선다. 이름하여 ‘다크 투어’다. 이름도 없이 같은 날 죽어야 했던 아기 4형제얄궂은 노릇이다. 제주는 여행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좋은 경치와 맛있는 먹거리도 많지만 다크 투어를 위한 재료도 차고 넘친다. 알뜨르비행장이나 제주4·3평화공원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양민학살 흔적이 자리잡고 있다. 작심하고 다크 투어를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민단체까지 있을 정도니 할 말 다했다. ‘제주 다크투어’라는 곳이다. 어쩌다 보니 아는 사람이 얼마전에 이 단체 대표가 됐다. 김잔디 대표는 참여연대에서 처음 만났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일하는 활동가였는데 사회복지사 출신이라고 했다. 보건복지 관련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의견을 물어보고 사회복지관 시절 경험담을 들었다. 몇 해 뒤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변신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실력 발휘를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 이번엔 제주도다. 서울 토박이가 어쩌다 제주도까지 가게 된 걸까. 참여연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이 4·3을 알리기 위해 이 단체를 처음 만들었는데 처음 얼마간 후원회원을 했단다. 그러다가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자원했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다보니 어느덧 4년차 제주도민이 되었고, 올해 초에는 아예 새 대표로 승진(?)까지 했다. 김 대표는 “여행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를 고민하자는 게 단체의 설립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뭔지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주로 4.3과 관련한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대만이나 오키나와처럼 제주도와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는 곳까지도 찾아가고, 그 곳에서도 제주도를 찾게 하는 다양한 국제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슬픔을 찾아 뚜벅뚜벅 걷는다는 것다크 투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는 여행”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물론 처음 다크투어를 알게 해준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라는 책에 나오는 표현이다. 인권운동단체인 인권연대에선 해마다 ‘올해의 인권책’을 선정하는데 2021년에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다크 투어>는 당시 후보작이었다. 저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다 이 책을 쓸 당시엔 서울 용산구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에서 일하며 알게 된 동네 할머니들의 한국전쟁 기억을 다룬 <그해 여름>으로 2020년 제8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이 책 <다크 투어>로 2020년 제28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도 수상했다.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 행방불명돼 버린 오빠를 평생 그리워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저자는 그 오빠의 흔적을 찾아 목포에서 장흥까지 걷는다. 그 길을 따라가며 숱한 양민학살과 전쟁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극을 직시하기로 결심하면서 저자의 ‘다크 투어’가 시작된다. “할머니의 오빠를 찾기 위해서 걷는 길은 할머니가 나에게 내민 삶의 초대장이었다… 여행의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오빠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47쪽).” 그렇게 저자는 1965년 대학살이 벌어졌던 인도네시아, 1948년 바탕칼리 학살의 현장인 말레이시아, 1947년 2.28 사건이 휩쓸었던 타이완을 찾아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저자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다시, 제주도다. 토벌대에 아버지를 잃고 열두살에 가장이 돼 버렸다는 김평담 할아버지가 길벗이다. “그는 가매기 모른식게(까마귀도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지내는 제사) 드리던 시절, 귤 따는 것도 내팽개치고 매일 성산의 마을들을 돌면서 4.3사건의 유족들을 만났다. 그는 매일 밤 피해자의 이름과 학살 장소를 기록하면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조부와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성산4·3유족회를 만들고 진실규명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돈을 모아 위령비를 세우고, 성산에서 학살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돌비석에 이름을 깊이 새겨 넣었다(161~162쪽).” 그러고 보면, 2018년 세상을 떠났다는 김평담 할아버지는 저자와 함께 ‘다크 투어’를 했던 것이리라. 잊지 않기 위해서, 아픈 역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비극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나도 되뇌어 본다. “김계생의 첫째 아들 4세, 김계생의 둘째 아들 3세, 김계생의 셋째 아들 3세, 김계생의 넷째 아들 1세.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동백 동맹… 동백 동행… 슬픔의 꽃에서 희망의 꽃으로

    동백 동맹… 동백 동행… 슬픔의 꽃에서 희망의 꽃으로

    “유족 DNA 검사를 통한 행방불명인 신원 확인, 4·3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4·3특별법 개정 등 핵심 과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3일 4·3생존희생자 및 유족들과 오찬간담회를 열고 “추념식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우원식 국회의장의 발언을 통해 4·3 해결을 향한 정부와 국회의 의지를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 지사는 이날 4·3의 완전한 해결 의지를 재확인하며 4·3생존희생자 및 유족들과 함께 이를 이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는 4·3생존희생자들의 무사안녕과 건강을 기원하고,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제주도정의 의지를 4·3생존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간담회에는 오 지사를 비롯, 김동연 경기도지사, 강기정 광주시장, 김창범 4·3유족회장, 오인권 후유장애인협회장을 비롯한 4·3생존희생자 및 유족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오 지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석해 유족들에게 큰 위로를 전해준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제주도와 경기도, 광주시가 긴밀한 협력으로 공동 발전의 길을 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는 재작년 4·3 유가족들의 비무장지대(DMZ) 초청에 이어 현재까지 경기도 북부청과 남부청에서 4·3전시회를 진행하며 제주4·3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면서 “1420만 경기도민들과 함께 제주4·3의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제주4·3에 대한 진상 규명과 보상,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가 이뤄지면 제주4·3의 백비에도 5·18민주화운동과 같은 이름이 새겨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광주의 5·18과 제주의 4·3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4064기 중 147명의 신원이 DNA 검사를 통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나, 아직도 3917기의 표석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추념식 현장에서는 DNA 채혈 부스가 2개 동으로 확대 운영됐다. 한편 이날 제주도와 서울시교육청이 제주4·3의 가치와 정신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평화·상생의 교육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 협력을 다짐하며 4·3평화공원에서 기념식수 행사를 마련했다. 4·3평화재단 이사를 지낸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제안으로 제주4·3을 상징하는 동백나무를 심었다. 동백꽃은 4·3희생자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간 아픔을 담은 상징물로, 제주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는 매개체다. 정근식 교육감은 “70여년 동안 제주4·3의 슬픔을 상징해온 동백꽃이 미래세대에게는 희망의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백나무를 선택했다”면서 “이 자리가 서울시교육청과 제주도 간 영혼적 교감을 새롭게 다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강기정 시장 “제주, 광주와 함께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강기정 시장 “제주, 광주와 함께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이어준 5·18과 4·3이 ‘평화 연대’의 길을 함께 걷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4·3의 숨결은 역사로, 평화의 물결은 세계로’를 주제로 열린 제77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 희생자 유족 등을 위로하고 헌화·분향했다. 강 시장은 추념식에서 “광주와 제주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아픔의 역사가 있고, 한강 작가는 5·18과 4·3을 다시 한번 이어줬다”며 “4·3의 이름을 찾는 정명(正名)과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더 단단한 민주주의,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밝혔다. 강 시장은 “5·18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손을 잡아준 덕분에 인권평화의 상징으로 보편성을 갖게 됐다”며 “많은 이들이 평화연대를 통해 광주를 민주주의 도시로 꽃피워준 만큼, 이제 광주가 그 고마움을 되돌려드려야 할 때이고, 이는 4·3과의 평화연대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이어 “참혹한 아픔인 4·3을 딛고 제주공동체를 이뤄낸 유족들의 노력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77년이 흘렀음에도, 4·3은 여전히 이름이 없고 생존희생자 등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진상규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같은 활동을 통해 4·3에 이름 붙이는 정명(正名)이 반드시 필요하고 광주는 이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강 시장은 추념식에 앞서 4·3희생자인 고 양천종 씨의 딸 양두영 어르신 등 생존 희생자들을 만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고 양천종 씨는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75년여만에 유해가 발굴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광주와 제주는 지난해부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과 4·3희생자 추념식에 시장 등 대표단이 교차 참석하며, 평화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해 강 시장은 오영훈 제주지사와 인권·평화와 번영을 위한 ‘상생발전 업무협약’을 체결, ▲제주4·3-광주5·18 평화·인권 교류 ▲국립트라우마센터 운영 내실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틀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한 강 시장은 첫날인 2일 제주4·3평화기념관 유족회 사무실에서 ‘한강이 이어준 4·3과 5·18 광주↔제주 동행 간담회’를 열어 ‘평화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는 평화·인권 교류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 연대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강 시장을 비롯해 4·3희생자유족회 김창범 회장과 양성주 상임부회장·양성홍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차호준 센터장과 오수경 제주센터장, 5·18기념재단 박강배 상임이사, 4·3기념사업위원회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는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 사적지 상호 교류 홍보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전액 국비 운영 등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및 책임 강화를 위한 공동 대응 ▲5·18과 4·3 왜곡·폄훼 공동 대응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초청 등 교류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력을 하고 있는데, 그 롤모델이 5·18이다. 5·18이 있었기에 4·3은 외롭지 않았고, 역사는 진전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5·18과 4·3이 서로 상생의 길을 걸으며, 대한민국이 진정 평화인권을 누릴 수 있는 민주국가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오월광주는 5·18의 손을 잡아준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가 있는 그늘진 곳에, 먼저 손을 내미는 도시여야 한다”며 “5·18 45주년은 대한민국이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광주는 제주와 평화연대 기반을 공고히 구축해 4·3과 함께 뚜벅뚜벅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5·18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 ‘챗GPT 지브리’ 열풍…미야자키 하야오 아들, AI에 ‘이렇게’ 말했다

    ‘챗GPT 지브리’ 열풍…미야자키 하야오 아들, AI에 ‘이렇게’ 말했다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이용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화풍의 이미지를 만드는 유행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가운데 스튜디오 지브리의 거장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 AI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2일(현지시간) AFP 통신은 지난주 일본 도쿄 인근 스튜디오 지브리 작업실에서 미야자키 고로(58)와 가진 인터뷰를 보도했다. 고로는 미야자키 감독의 장남으로 건축가로 활동하다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전향,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2006),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 등을 연출했다. 부친의 최근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에서는 제작 프로듀서를 담당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매니징 디렉터인 고로는 “2년 후 완전히 AI로만 제작된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면서 “언젠가는 애니메이터가 AI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관객들이 완전히 AI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할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고로는 “AI가 애니메이터의 직업을 빼앗을 위험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탄생시킨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의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고로는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은 “예상치 못한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고로의 인터뷰는 오픈AI가 지난달 25일 신규 이미지 생성 AI 모델 ‘챗GPT-4o 이미지 생성’을 출시하기 전인 24일(도쿄 현지시간)에 이뤄졌다. 이 모델은 사진이나 설명을 지브리나 디즈니, 심슨 가족 등 인기 애니메이션 화풍의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기능으로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픈IA가 AI 학습에 원작을 무단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정 화풍이 저작권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AI 학습 과정에 특정 콘텐츠가 활용된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다. 오픈AI는 개별 아티스트의 스타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은 막아놓고 있으나 “제작사의 광범위한 스타일은 허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픈AI는 “우리의 목표는 이용자에게 가능한 한 창작의 자유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4·3 기록물은 과거사 해결 모범… 세계적 가치 인정받는다

    4·3 기록물은 과거사 해결 모범… 세계적 가치 인정받는다

    ‘제주 4·3사건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유력시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3월 19일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가 ‘제주 4·3사건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권고했다”며 “최종 등재 여부는 4월 2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결정된다”고 31일 밝혔다. 사실상 추인 과정만 남은 셈이라는 얘기다. 제주도는 기록물 등재 목록을 준비할 때 자발적 진상 규명 운동인 시민사회운동의 기록인 동시에 화해와 상생의 기록이라는 점에 주력했다. 또한 “기록물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사건보다 기록물에 맞춰 그 중요성을 입증하는 게 관건”이라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의 조언도 참고했다. 이에 제주도는 세계적인 독창성, 중요성, 진정성, 희귀성, 원형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자료 선별에 나섰다.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때 중요시하는 점은 4·3사건 자체가 아니라 4·3 당시 기록물”이라며 “4·3 기록물이 왜 인류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가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도는 ‘크게 억압된 기억에 대한 기록’과 ‘화해와 상생의 기록’으로 구분해 목록을 정했다. 이 가운데 남아 있는 4·3 당시 기록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수형인 명부와 형무소에서 온 엽서 정도가 고작이었다. 신문 기사 같은 2차 가공 자료는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수형인 명부는 4·3 당시 억울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을 재심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기록물이다. 1999년 9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추미애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발견했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에서 군사재판 직권재심을 맡았던 변진환 검사(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부부장검사)는 “수형인 명부에는 성명, 직업, 나이, 본적, 형무소, 형량, 선고 일자는 있었지만 군사재판에서 있어야 할 범죄 사실을 알리는 판결문은 없었다”며 “그러나 유족들이 4·3 때 실종된 할아버지, 아버지 등 가족의 행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됐다”고 전했다. 수형인 명부에 나온 희생자는 2530명이었다. 현재까지 합동수행단의 군사재판 직권재심 등으로 명예를 회복한 희생자는 이날 기준 2148명에 이른다. 하지만 남은 382명 가운데 84명은 이름만 있을 뿐 이명, 아명, 본적이 실제와 달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무소에서 보내 온 엽서 25건도 생생한 그날의 증거다. 4·3 당시 34세의 나이에 희생된 북제주군 제주읍 이호리 출신 고두정은 “아버님 전상서. 집 떠난 이후로 부모님 기력이 어떠하십니까. 형님과 자식 모두 평안한지요. 이 못난 아들은 타지에서 자고 먹는 것은 여전하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며 속 깊은 애정을 적어 보냈다. 이같은 엽서는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의 벽에도 전시돼 있다. 그 내용의 일부는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위령단에 있는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이 밖에 ‘진상 조사의 바이블’ 같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초안·최종 공식 보고서), 1978년 작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고 진아영 할머니의 증언 영상 등 진상규명·화해를 위한 기록들도 포함됐다. 문서만 1만 3976건을 비롯해 도서 19건, 엽서 25건, 소책자 20건, 비문 1건, 비디오 538건, 오디오 94건 등 총 1만 4673건에 달한다. 군사재판 피해자 가운데 생존 희생자 18명에 대한 첫 재심 청구(2017년)에 앞장섰던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4·3 진실 규명에 힘써 온 사람들의 노고도 잊히지 않도록 반드시 등재되길 바란다”면서 “다만 등재될 목록에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4·3 기록물은 냉전과 분단 정세 속에 국가 폭력으로 인한 집단 희생의 아픔을 딛고 ‘진실·화해·상생’을 이뤄낸 역사의 기억이자 기록”이라며 “무엇보다 과거사 해결 모범 사례의 선도적인 기록물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게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 여든살 아이들의 편지, 평산책방 북토크, 그리고 영화… 4·3의 이름으로

    여든살 아이들의 편지, 평산책방 북토크, 그리고 영화… 4·3의 이름으로

    제77주년 제주4·3추념식이 다가오면서 4·3을 주제로 한 행사들이 잇따라 열려 주목받고 있다. #28일 제주4·3 제77주년 스물네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여든살 아이들의 편지제주4·3연구소는 28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제주4·3 제77주년 스물네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증언본풀이마당은 4·3체험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당으로, 마음속에 쌓여온 기억을 풀어냄으로써 자기를 치유하는 ‘트라우마의 치유마당’이며, 4·3의 진실을 후세대들에게 알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리움에 보내는 여든살 아이들의 편지-아픈 항쟁의 세월을 넘어’라는 주제로 임충구, 강은영씨가 나와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4·3 때 폭도로 몰려 산으로 갔다가 행방불명된 임원전 씨의 아들 임충구(82) 씨는 75주년 제주4·3추모식에서 제주바람에 흰 백발을 휘날리며 무죄 판결문을 들어 보였다. 그는 4·3 때 아버지를 잃고,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어머니까지 잃었다. 당시 경찰과 계엄군, 서북청년회 단원 등은 집에 아들이나 아버지가 없으면 ‘빨갱이 가족’으로 보고 일가족을 고문·취조한 뒤 무참하게 학살했다. 임 씨는 지난 2009년 제주국제공항 유해 발굴 때 60년 만에 백골의 모습으로 아버지와 재회했다. 반면 강은영(83)씨는 서귀포 법환리 출신으로 서귀면장까지 역임했던 강성모(1907년생)씨의 딸이다. 부친 강씨는 한국전쟁 발발이후 토벌대에게 연행돼 1950년 7월 16일 제주항 앞바다에서 수장당했다. 이번 행사에선 강덕환 시인이 시낭송을 하며 문성호씨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 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 제주4·3관련 북토크…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경남 양산시 평산책방에서 제주4·3 관련 북토크가 4·3 추념식 행사 당일에 열린다.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가 2018년 제70주년 4·3 추념식 때 취재차 만난 생존 희생자와 유족들의 구술, 그간 발굴한 국내외 사료 등을 모아 2023년 엮어낸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에 대해 책이야기마당이 펼쳐진다. 책 제목의 숫자는 공식적인 4·3 첫날과 마지막 날짜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시기는 물론 퇴임 이후에도 4·3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2018년, 2020년, 2021년 등 세차례에 걸쳐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을 찾아 제주도민을 위로했고, 퇴임 이후인 2023년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한 바 있다. 특히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평산책방 누리집에 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이 실린 바 있다. 평산책방 쪽은 21일 오전 10시부터 23일 오후 5시까지 북토크에 참가할 30명을 모집한다. 모집대상은 ‘평산책방 책친구(북클럽)’로 책친구 누리집(https://www.psbooksmember.kr) 소식 게시판에서 신청할 수 있다. #4월 11~13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2025 서울 4·3 영화제’제주4·3 77주년을 맞아 ‘2025 서울 4·3 영화제’가 다음달 11일부터 13일까지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2주에 걸쳐 진행하는 서울지역 기념행사 중 하나로 마련한 올해 4·3영화제에서는 4·3 관련 최신작과 평화·인권 관련 영화들이 소개된다. 지난 2022년부터 시작된 이 영화제는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에서 진행하는 제주4·3영화제와는 별개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다. 올해 서울 4·3영화제는 기존 ‘4·3의 오늘’ 섹션 외에 ‘나, 우리, 그리고 재일조선인’, 그리고 ‘계엄의 그늘’ 섹션으로 나눠 장·단편 10편이 상영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전회 무료 상영하고 매회 해외 작품을 제외하고 감독이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동시에 일본과 미국 작품을 특별상영 형식으로 초청하고, 재일조선인 감독과의 화상 연결을 진행하는 등 외연을 확장했다. 백경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장은 “지난 영화제를 통해 서울 4·3영화제의 가능성과 4·3에 대한 서울·경기 지역 관객들이 폭넓은 참여와 관심이 확인됐다”면서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번 영화제는 4·3 신작은 물론 재일 조선인을 소재로 한 영화와 계엄 관련 국내외 영화까지 폭을 넓히면서 4·3의 친구들로 부를 수 있는 다채로운 영화인들이 함께 하고 있는 만큼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제주도립미술관, 6월 8일까지 ‘4·3 미술 네트워크: 빛과 숨의 연대’특별전제주도 제주도립미술관은 4·3 미술제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4·3 미술 네트워크: 빛과 숨의 연대’ 특별전을 지난 11일부터 6월 8일까지 기획전시실 2(2층)에서 열리고 있다. ‘빛과 숨의 연대’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동학농민운동, 대구 10월항쟁, 제주4·3사건, 광주 5·18민주화운동,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민중운동을 예술로 재조명한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이 보여주는 민중들의 호혜관계를 조명하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이어진 민중의 역사를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해 보여준다. ‘제주4·3사건’은 세 번째 섹션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평등과 자치를 요구하다가 군사적 탄압을 받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제주도민의 저항과 희생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그 희생과 저항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리는 장”이라며 “관람객들이 예술을 통해 역사를 되새기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탐라미술인협회가 주최하고 4·3미술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31회 4·3미술제 ‘봄은 불꽃처럼’이 4월 2일부터 30일까지 예술공간 이아와 산지천갤러리에서 열린다.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총 46명(팀)이 참여한다.
  • 77년 만에 찾은 이름…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77년 만에 찾은 이름…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4·3희생자 유해 2구에 대한 신원확인 결과보고회가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에 확인된 희생자들은 예비검속 희생자 고 김희숙(1921년)씨와 9연대 군인 희생자 고 강정호(1926년)씨다. 김 씨의 아들 김광익씨는 “4·3관계자 여러분, 아버지 유해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며 목메어 불러보고 싶은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었을까. 그동안 참아왔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세번씩 외치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치 만세하듯 두손을 불끈 올리며 울먹이자 장내가 숨죽인 듯 숙연해졌다. 그동안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마다 알뜨르 비행장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을 만지며 소리쳤던 회한의 세월을 떠올렸다. 강씨의 조카 강중훈씨도 “작은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그렇게 덧없는 세월이 어느덧 70여년이 흘렀다.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했던 숙부님 이름을 이제야 불러본다”며 “당시 제 나이 8살 되던 해, 숙부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형제 모두 성산포 터진목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 사연을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하소연 못하고 숨기며 살아왔다”고 통한의 세월을 토로했다. 그는 “가슴 아픈 혼돈의 세월이었다”며 “제 나이도 85살이 됐으며 돌아가신 가족을 추모하던 어머니도 102살에 세상을 뜨셔서 이제 우리 곁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늦었지만 그래도 숙부님 신원이 확인된 건 하늘의 은혜”라고 말한 뒤 “4·3평화공원에도 환한 봄기운이 찾아든다. 용서와 화해의 기운으로 샘솟고 있다”며 부디 영면하길 기원했다. 제주4·3 당시 최대 학살터로 알려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아래 묻혀 있던 두사람. 그동안 이름표 없이 번호로만 안치됐던 유해의 신원이 유가족의 채혈로 확인되면서 70여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한림면 저지리 출신 김 씨는 2007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서북편에서 발굴됐다. 한경면 저지리에 거주하던 고인은 고인은 1948년 소개령이 내려지자 해안마을인 고산리로 이주해서 살다가 저지리 마을재건 명령 떨어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6·25전쟁 발발 직후 시행된 예비검속으로 인해 1950년 7월쯤 이유도 모른채 모슬포경찰서로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2009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편에서 수습된 희생자 강 씨는 성산읍 오조리가 고향으로 1948년 제주 출신 9연대 소속 군인들이 집단 희생당했을 때 함께 끌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강씨는 모슬포에서 군인으로 복무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1948년 4·3이 발발했을 때, 제주에 들어온 9연대는 강경진압작전에 나섰지만 이에 동조하지 않은 일부 군인들이 탈영 이후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애초에 두 분은 섯알오름과 모슬포에서 각각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번 신원확인을 통해서야 제주공항에서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역사의 어둠 속에서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야 했던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령들이 하루빨리 제 이름을 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직계와 방계 유족의 추가 채혈을 해주길 바란다”며 “제주도정은 4・3평화재단과 함께 4・3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밝히고, 그들이 가족 품에 돌아와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상봉 도의회의장은 “오랜 세월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두분의 유해 신원 확인됐다. 여전히 이름을 찾지 못한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이름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한 분도 잊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4·3 진실을 기억하고 알리는 모든 과정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김광수 교육감도 “제주4·3은 아직도 진행형인 역사이며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다”며 “신원 확인과정이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승국 시인(제주작가회의 회장)은 ‘속절없이 울고 가는 정뜨르 바람이여/ 빈 들판 풀잎을 흔들리 마라/목숨하나 허덕이는 처절한 모습일지라도/ 동녘이슬 소박하게 맞아/동백꽃 붉게 붉게 눈물로 피워낸다//…사멸의 불바람이/휩쓸고 간 죽음의 시대/돌아오지 않을 새 봄을 꿈꾸며/허지기진 배 쥐어잡고/간절했던 목숨하나 호소했건만/아, 고향땅 성산포/마룻장 밑 짧은 사랑이여/말한마디 손가락질 하나가/죽음으로 가는 죄였구나//… 칠십오년 세월 사뿐히 건너/태 사른 땅 한라의 대지에서 편히 쉬세요/작별하지 않을 약속을 위해/우리 제주섬 후손들 손 꼭 잡아주세요’ 라며 헌시 ‘진혼애가’를 바쳤다. 한편 4・3평화공원에는 행방불명인 표석 4064기가 아직 주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7명이다. 도내에서 발굴된 유해 417구 중 아직 272구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 활주로서 학살됐다니… 번호만 있던 4·3희생자 이름 찾았다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 활주로서 학살됐다니… 번호만 있던 4·3희생자 이름 찾았다

    제주4·3 당시 최대 학살터로 알려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아래 묻혔던 4·3 희생자 유해 2구의 신원이 18년 만에 확인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2024년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사업을 통해 지난달말 제주4·3 행방불명 2명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희생자들은 2007년과 2008년에 제주공항 부지에서 발굴된 유해로, 예비검속 희생자 1명과 9연대 군인 희생자 1명이다. 한림면 저지리 출신 김희숙(당시 29세·남)씨는 1948년 소개령이 내려지자 해안마을인 고산리로 이주해서 살다가 저지리 마을재건 명령 떨어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발발후 예비검속돼 모슬포경찰서로 끌려가서 소식이 끊겨 섯알오름에서 희생당한 걸로 추정하고 있었다. 75년이 지나서야 김씨가 섯알오름이 아닌 정뜨르비행장서 희생됐다는 알게 된 셈이다. 4·3평화재단 관계자는 “앞서 지난해에는 안덕면 동광리 출신 故강문후(당시 48세)씨도 1950년 7월 예비검속돼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제주공항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발견된 사례였다”면서 “지금까지 채혈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신원확인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다른 희생자인 성산면 오조리 출신 강정호(당시 22세)씨는 1948년 제주 출신 9연대 군인들이 희생될 당시 행방불명된 경우다. 강씨는 모슬포에서 군인으로 복무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1948년 4·3이 발발했을 때, 제주에 들어온 9연대는 강경진압작전에 나섰지만 이에 동조하지 않은 일부 군인들이 탈영 이후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희생자의 신원은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유전자 검사 참여로. 김씨는 손자의 채혈이, 강씨는 조카의 채혈이 신원 확인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도는 2006년 제주시 화북동 화북천(11구) 유해발굴을 시작으로 도내 곳곳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해왔다. 2007~2009년 제주국제공항(388구), 2010~2021년 표선면 가시리 외 8개소(12구), 2023년 안덕면 동광리(2구), 2024년 애월읍 봉성리(4구) 등에서 총 417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 대전 골령골 등 도외 발굴 유해 2명을 포함해 총 147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희생자들의 신원을 찾기 위해 올해도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2023년 도외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를 토대로, 대전 골령골 학살터와 경산 코발트광산, 전주 황방산일대에 암매장된 유해 가운데 4·3 수형인들도 포함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내기 위해 유전자 감식과 대조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4·3희생자 2명에 대한 결과보고회는 오는 24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다. 그동안 이름표 없이 번호로만 안치됐던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77년 만에 이름을 새기게 됐다.
  • [데스크 시각] 아스팔트 위 대한민국

    [데스크 시각] 아스팔트 위 대한민국

    뼛속까지 시릴 정도의 얼음장 같은 겨울 아스팔트의 기억이 또렷해지는 요즘이다. 1994년 말이었던 것 같다. 아니, 1995년 초였을 수도 있겠다. 인천항에서 뱃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약 70㎞를 가면 굴업도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1994년 12월 정부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분하는 방사성 폐기장을 이 섬에 짓겠다고 고시했고, 지역사회는 물론 환경 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각종 단체들이 연대한 반핵 집회가 꾸준히 열렸다. 대학가에서도 큰 이슈였던 터라 관련 집회에 몇 차례 참가했다. 그중 한 번은 반핵 퍼포먼스에 힘을 보탤 기회가 있었다. 눈만 뚫린 흰색 가면을 쓰고 노란색 방호복을 입고 핵폐기물이라고 표시한 모형 드럼통을 끌며 행진했다. 그저 걷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핵으로 인한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중간중간 도로에 엎드려 몸부림치거나 기어가는 장면을 연출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겨울철 아스팔트의 냉기는 뼛속까지 덮쳐 왔다. 추위를 주체하지 못하고 도로에 엎드린 채 덜덜덜 몸을 떠는 모습을 지켜보던 집회 참가자들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굴업도 방사성 폐기장 건설 계획은 지질 조사를 다시 하는 과정에서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활성 단층이 확인돼 약 1년 만에 백지화됐다. 오래된 기억을 불현듯 끄집어낸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한겨울 영하의 날씨를 무릅쓰고 거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TV 뉴스를 통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에 더해 30년 전 아스팔트의 한기가 되살아나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 및 구속 기소에 이어 헌법재판소 심판이 진행되고, 형사 사건 재판부 배당도 이뤄졌지만 사회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고,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여서인지 마음은 더욱 시려 온다.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는 걸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하게 맞서겠다던 대통령은 손바닥을 뒤집듯 변명과 궤변을 반복하고 책임 회피와 떠넘기기를 거듭하고 있다. 여당 또한 극우 유튜버의 음모론에 빠져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군을 보낸 대통령과 결별하기는커녕 지키기에 골몰하고 있다. 앞서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이 했던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는 오히려 극렬 지지 세력을 부추기며 사회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입만 열면 ‘국민’과 ‘국가’를 이야기하는 정치권이지만 불확실성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국민과 국가가 과연 안중에 있기는 한지 서글플 정도다. 격랑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화와 타협은 찾아볼 수 없고, 여당은 야당 탓을 하고 야당은 여당 탓을 하기 바쁘다. 승복과 포용도 없고, 서로를 덮어놓고 비난하고 반대하고 깎아내리는 이전투구만 도드라져 보인다. 상처 입은 국민들을 어루만지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마당에 내 편, 네 편을 가르며 대립을 조장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이후 끊이지 않는 한국 정치의 비극은 ‘행방불명된 정치’가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대통령 5명 가운데 3명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었다. 수사 대상이 된 것은 4명째다. 작금의 분열이 깊어진다면 제도를 바꾼다해도 비극은 필연이 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정치를 보여 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더이상의 불행이 없게 하려면 말이다. 대선이 언제 열려야 유리한지 주판알을 튕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 흔들기를 멈추고 탄핵심판과 재판 결과를 기다리자. 상호 존중과 대화, 타협의 자세로 분열의 생채기를 치유하는 게 시급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국민을 거리로 등 떠밀 것인가. 홍지민 문화체육부장
  • 中배우 이어 20대 男모델도 태국서 ‘행방불명’…가족 “인신매매” 주장

    中배우 이어 20대 男모델도 태국서 ‘행방불명’…가족 “인신매매” 주장

    중국 배우가 태국에서 범죄 조직에 납치됐다가 미얀마에서 삭발 상태로 구출된 가운데 중국 20대 남성 모델 실종 사건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가족들이 주장했다. 지난 9일 중국청년보 등에 따르면 모델 양쩌치(25)의 가족은 전날 소셜미디어(SNS)에 “양쩌치가 지난달 20일 태국 방콕에 도착했으나 태국·미얀마 국경에서 연락이 끊겼다”고 적었다. 가족들은 배우 왕싱(31) 실종 사건과 경위가 상당히 비슷하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태국 경찰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중국 매체들이 태국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왕싱의 구출 이후 보도된 양쩌치의 실종 소식은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앞서 왕싱은 드라마 오디션을 위해 태국에 도착했다가 태국·미얀마 국경에서 실종된 뒤 지난 3일 미얀마에서 발견됐다. 태국 경찰은 왕싱이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왕싱도 중국 범죄 조직에 납치됐다고 진술했다. 왕싱이 끌려갔던 미얀마 미야와디는 온라인 사기 등을 일삼는 범죄 조직 근거지로 유명하다. 이들은 콜센터에 인력을 감금하고 범죄에 가담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싱이 발견된 날 다른 미얀마 실종자 174명의 가족 487명도 자신들의 가족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 참사에 제주항공·여행사 주가 급락했는데…12% 급등한 에어부산, 이유는?

    참사에 제주항공·여행사 주가 급락했는데…12% 급등한 에어부산, 이유는?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 가운데, 참사의 영향으로 30일 장 초반 제주항공[089590]의 주가가 대폭 하락 중이다. 30일 오전 9시 23분 기준 제주항공은 전 거래일보다 10.11% 내린 7380원에 거래됐다. 개장 직후 14.01% 하락으로 출발해 개장 직후 15.71%까지 낙폭을 키우기도 했다. 제주항공의 지분 50.3%를 보유한 AK홀딩스[006840]도 9.66% 급락세다. 진에어(-1.31%), 티웨이항공(-0.60%), 대한항공(-0.64%) 등도 소폭의 약세를 나타났다. 참좋은여행[094850](-5.94%), 하나투어[039130](-5.05%), 모두투어[080160](-3.79%), 노랑풍선[104620](-2.45%), 롯데관광개발[032350](-1.29%) 등 여행사 주가도 일제히 내리는 모습이다. 다만 제주항공과 같은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부산[298690]은 12.11% 급등했다. 아시아나항공(2.16%), 한진칼(2.15%) 등도 올랐다. 에어부산의 경우 항공업계에서 유일하게 2013년부터 현재까지 10만편 이상을 운항한 국내 항공사 가운데 항공기 사고·준사고가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사고의 기준은 ▲승객의 사망·중상 ▲행방불명 항공기의 중대한 손상·파손 또는 구조상의 고장 ▲항공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거나 항공기에 접근이 불가능할 경우 등을 이른다. 준사고는 항공기 사고 외 항공기 사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경우를 포함한다. 지난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179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수색 초기 구조된 승무원 2명(남성 1명, 여성 1명)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여객기에는 한국인 173명과 태국인 2명을 포함해 모두 175명이 탑승했고, 승무원은 6명이었다. 기체 후미에 있던 생존자 2명은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고 있다. 동체 착륙 당시 활주로를 벗어난 여객기는 공항 외벽에 부딪히며 대형 화재가 발생해 꼬리 부분을 제외하고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파손됐다. 이와 관련해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해당 항공기는 약 10억 달러 배상 책임 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희생자 지원에 모자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태국인 승객 2명에 대해선 “대사관을 통해 탑승 사실을 전달했고 (가족들의) 입국이든, 사고 현장 이동이든 모든 방안을 동원해 현장에 다다르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예약편 변경·취소를 원하는 고객에 대한 지원도 충실히 하겠다고 했다. 현재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내년 1월1일 오전 5시까지 무안공항 활주로를 폐쇄했다. 제주항공은 이 기간 동안 무안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예정인 승객에 대해 인천 또는 부산을 통해 귀국을 도울 예정이다.
  • [데스크 시각] 마지막까지 ‘갑툭튀’ 남긴 尹

    [데스크 시각] 마지막까지 ‘갑툭튀’ 남긴 尹

    제주에는 헛무덤이 많다. 제주 4·3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보니 가족들은 시신 없는 무덤이라도 만들어 억울한 고인의 한을 달랬다. 살기 위해선 ‘속솜’(침묵의 제주어)해야 했다. 엄혹한 시절엔 연좌제에 걸릴까 봐 밤에 몰래 제를 올리는 집도, 차마 비석에 가족 이름을 새기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인 양성홍 할아버지 가족도 75년간 헛무덤 2곳에 술잔을 올렸다. 뭍으로 끌려간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였다. 지난 17일 헛무덤 주인의 유해가 고향 땅 제주로 돌아왔다. 2019년 12월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에서 발굴된 261구의 유해들 속에 할아버지의 다리뼈가 있었다. 백발이 된 94세 딸도, 노인이 된 78세 손주도 원통함에 목 놓아 울었다. “난리 통에 마을 청년들에게 보리쌀 한 되를 건넨 게 할아버지가 끌려간 이유였어. 그뿐이야.” 아집일까 아니면 승부수일까. 비상계엄 사태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던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榜)하나를 붙였다. 공석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탈북단체를 운영하는 강성 우파 성향인 박선영 전 의원을 앉혔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후 자신의 운명조차 시시각각 변하던 시기 나온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인사였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나 인권에 대한 생각을 인사를 통해 보여 줬다. 진실화해위원회, 국가인권위원장, 독립기념관장이 그랬다. 뉴라이트에 이념적으로 편향된 극우인사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대통령실은 “능력만 고려한 인사였다”고 일축했다. 여당 내부에서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누구도 대통령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2022년 진실화해위원장에 오른 김광동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5·18 당시 신군부 헬기사격을 ‘명백한 허위사실’, 북한군 개입설을 ‘가능성 있는 의혹’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임기 내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 등을 주장하는 등 자신의 이념적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월 취임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역시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의 핵심적 수단이라는 주장이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해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윤 대통령 인사권의 마지막(?) 수혜자가 된 박 위원장도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박 위원장은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직후 자신의 SNS에 “파렴치한 범죄자들 처리를 못 했기 때문에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라면서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 판치는 대한민국, 청소 좀 하고 살자”는 글을 올렸다. 시민단체들은 진실화해위원장이 외려 비상계엄을 옹호한다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탄핵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이미 우린 경험한 바가 있다. 국민의 관심도 신임 진실화해위원장이 과거사를 제대로 처리할까보다는 갑툭튀 인사가 헌재 재판에 어떤 변수가 될까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법적으로 활동할 기간은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전쟁 전후부터 권위주의 정권 시기까지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과 인권침해, 조작 의혹 사건 등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를 중재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다. 광활한 시험 범위를 한 번이라도 짚어 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양씨 가족은 이번 설에도 헛무덤에 술을 올려야 한다. 1949년 대전형무소로 7년 형을 받고 끌려갔다 행방불명된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살아생전 아버지를 찾지 못할 듯해 팔순을 바라보는 아들은 마음이 급하다. “적어도 진실도 화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았으면 해.” 2024년 12월 현재 4·3평화공원 행불인 표지석은 4007기다. 국가폭력의 후유증은 그렇게 현재 진행형이다. 유영규 전국부장
  •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 4·3 행불 희생자 모두 돌아오길”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 4·3 행불 희생자 모두 돌아오길”

    “할아버지, 이제서야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수다. 편히 영면헙서예.” 영문도 모르고 광주형무소에 끌려가 생을 마감한 4·3 희생자 양천종씨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향 제주의 품으로 돌아왔다. 4·3 희생자의 유해가 제주로 봉환된 것은 지난해 북촌리 출신 고 김한홍씨에 이어 두 번째다. 제주 연동리 출신인 고인은 4·3사건 당시 살던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으로 피신했다. 양씨는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宣撫·특정 방향으로 민심을 유도하는 행위) 공작으로 하산해 한 달간 수용 생활 후 풀려났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불과 5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24일 가족들은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가족들은 고문에 의한 사망으로 생각했지만 사망 원인에 대한 기록도, 유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19년 옛 광주교도소 무연분묘에서 신원 미상 유해 261구가 발굴됐고, 제주도는 유해들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 유전자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했다. 광주를 떠난 양씨의 유해는 17일 오후 2시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백발이 된 딸 양두영(94)씨와 손자 양성홍(78) 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유해를 받아 안고 “이제야 도착했수다”라며 참았던 눈물을 글썽였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양씨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 만 75년이 걸렸다. 이날 고인의 귀향길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창범 4·3유족회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함께했다. 양 회장은 “늦게나마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른 4·3 희생자들의 유해도 하루빨리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봉환식에서 오 지사는 “75년이라는 긴 세월 유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4·3 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대전, 경산 등과 협조해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처럼… 4·3 행불 희생자들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길”

    “75년 만에 귀향한 할아버지처럼… 4·3 행불 희생자들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길”

    “할아버지, 이제서야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수다. 편히 영면 헙서예(하십시오).” 광주형무소에서 숨진 4·3희생자 고(故) 양천종씨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향 제주의 품으로 돌아왔다. 도외 지역에서 발굴된 4·3희생자의 유해가 제주로 봉환된 것은 지난해 북촌리 고(故) 김한홍 씨에 이어 두 번째다.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고인은 4·3사건 당시 가옥이 전소되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으로 피신했다.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하산해 주정공장에서 한 달간 수용생활 후 풀려났으나,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같은 해 12월 2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고자 밭을 처분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고인은 1949년 11월쯤 가족들에게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안부 편지를 끝으로 55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9년 12월,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에서 261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1971년 광주형무소를 이전하면서 그전 형무소의 유해도 함께 매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5·18기념재단은 5·18 행방불명인으로 추정했지만 유전자 정보 대조 결과 일치된 시료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제주4·3 희생자일 가능성이 제기돼 제주4.3 유족들의 유전자와 대조한 결과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의 유전자와 일치된 유해를 찾아낸 것이었다. 양 회장과 유족들은 전날 16일 제주도,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 등 17명과 함께 부여 영호추모공원을 찾아 법무부 광주지방교정청으로부터 4·3 희생자 양천종씨의 유해를 건네받고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줄만 알았던 고인과 재회한 유족들은 한맺힌 슬픔을 토해내듯 울음을 터뜨렸다. 고인의 유골은 이날 오후 세종시은하수공원으로 옮겨 화장됐다. 17일 오후 2시 제주국제공항 도착장. 친손자인 양성홍(78) 4·3행방불명인협의회장과 유족들의 품에 안긴 고인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향 제주에 귀향했다. 일찌감치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창범 4·3유족회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도의회 의원들이 고인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아버지를 품에 안고 있던 딸 양두영(94)씨와 양 회장 등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글썽였다. 백발이 돼버린 딸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듯 유해함을 끌어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할아버지 뿐 아니라 아버지(양두량씨)마저 1949년 대전형무소로 7년형을 받아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됐다는 양 회장은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4·3으로 희생된 모든 행불 희생자들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봉환식에서 “75년이라는 긴 세월 유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유족들의 먹먹한 세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추도했다. 이어 “행방을 알 수 없는 수형인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며 “정부와 유전자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면서 대전 골령골을 비롯한 경산 코발트 광산과 전주 황방산, 김천 등 4·3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제주 4·3 재판부 “비상계엄, 다시는 없길 바란다”

    제주 4·3 재판부 “비상계엄, 다시는 없길 바란다”

    제주지법 4·3 재심 재판부가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재판장에서 언급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주지법 4·3 전담 형사 4부(방선옥 부장판사)는 이날 열린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옥살이를 한 고(故) 김묘생 씨 등 30명에 대한 제57차 군사재판 직권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방 부장판사는 “1년 남짓 재심을 전담하면서 만난 유족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혀왔다”면서 “4·3 당시 계엄으로 인해 부당한 피해자가 생겼는데 (12·3 계엄 때문에) 다시 이런 재판을 하려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주엔 계엄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막아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며 “유족은 삶이 아주 힘들었을 텐데 무죄 선고로 위로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도 선고에 앞서 불법 계엄을 비판했다. 국선변호인 김정은 변호사는 “지금 시대에 4·3이 반복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그러나 지난주부터 이어진 계엄 사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음을 봤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 대상자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이뤄진 불법 군사재판에 넘겨져 전국 각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이다. 제주 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당시 제주에는 1948년 11월 17일부터 그해 말까지는 불법 계엄령이 선포됐다. 총살되거나 행방불명된 인원만 최대 3만여 명에 달한다. 전날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선 제주4·3을 ‘폭동’이라고 명시해 제주 지역사회에서 반발을 사기도 했다.
  • “요즘이 어느 시댄데” “5월 공포 떠올라”… 대구·광주도 ‘발칵’

    “요즘이 어느 시댄데” “5월 공포 떠올라”… 대구·광주도 ‘발칵’

    대구 야권·시민단체 尹 퇴진 시위대학가에도 곳곳에 ‘탄핵’ 대자보‘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 열고 규탄5월 단체 “또 피를 봐야 하나 싶어” “나라 운영이 장난인교? 요즘이 어느 시댄데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단 말이고.” 4일 오전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대구 중구 달성로 서문시장. 이곳에서 만난 건어물상 이호선(57)씨는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잘하겠다고 해서 나라를 맡겨 놨더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면서 “대통령이 한밤에 내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상인과 시민들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떡을 팔던 한 상인은 고객에게 “‘전쟁 나는 것 아니냐’고 울면서 걱정하는 딸을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좌판에 앉아 유튜브를 검색하며 전날 벌어진 일을 뒤늦게 챙겨 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보수의 심장인 대구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75.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문시장에서 약 10년째 빵과 음료를 파는 강진욱(50대)씨는 “서민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저런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빵을 사던 손님은 “술김에 저지른 일 아니겠냐”며 거들었다. 이날 대구지역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도 동대구역과 대구시청 앞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 100여명은 ‘윤석열 OUT’,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역 노동계와 법조계도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발했다. 분노한 대구 민심은 대학가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북대 캠퍼스에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었다. 한 사범대생은 “국민이 동의하지 못하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당장 사과하고 스스로 거취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충격과 공포감 속에 밤을 새웠다. 1980년 5월 계엄령으로 군홧발에 도시 전체가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광주시민들은 “악몽이 되살아난 듯한 밤”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만난 시민 김모(59)씨는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다”면서 “그날의 공포가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날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윤석열 일당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새벽부터 5·18민주광장에 나온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또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광주시민은 반드시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창 시절 5·18을 겪었다는 박모(62)씨는 “고등학생 때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런 비극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분노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부상자 수도 2617명에 달했다.
  • ‘보수의 심장’ 대구도, ‘민주화 성지’ 광주도…尹 깜짝 계엄에 화났다

    ‘보수의 심장’ 대구도, ‘민주화 성지’ 광주도…尹 깜짝 계엄에 화났다

    “나라 운영이 장난인교? 요즘이 어느 시댄데,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단 말이고.” 4일 오전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대구 중구 달성로 서문시장. 이곳에서 만난 건어물상 이호선(57)씨는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잘하겠다고 해서 나라를 맡겨놨더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다”면서 “대통령이 한밤에 내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상인과 시민들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 이야기를 나눴다. 호떡을 팔던 한 상인은 고객에게 “‘전쟁 나는 것 아니냐’고 울면서 걱정하는 딸을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좌판에 앉아 유튜브를 검색하며 전날 벌어진 일을 뒤늦게 챙겨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보수의 심장인 대구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75.14%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문시장에서 약 10년째 빵과 음료를 파는 강진욱(50대)씨는 “서민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저런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빵을 사던 손님은 “술김에 저지른 일 아니겠냐”고 거들었다. 이날 대구지역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도 동대구역과 대구시청 앞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참가자 100여 명은 ‘윤석열 OUT’,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앞서 지역 노동계와 법조계도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발했다. 분노한 대구 민심은 대학가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북대 캠퍼스에서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었다. 한 사범대생은 “국민이 동의 못 하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다. 당장 사과하고 스스로 거취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충격과 공포감 속에 밤을 새웠다. 1980년 5월 계엄령 속 군홧발에 도시 전체가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광주시민들은 “악몽이 되살아난 듯 한 밤”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만난 시민 김모(59)씨는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다”면서 “그날의 공포가 떠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이날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윤석열 일당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새벽부터 5·18민주광장에 나온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또 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광주 시민은 반드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창 시절 5·18을 겪었다는 박모(62)씨는 “고등학생 때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런 비극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분노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부상자 수도 2617명에 달한다.
  • “계엄군 총·칼에 짓밟힌 ‘5월 악몽’ 되살아나”…광주시민들 충격·분노

    “계엄군 총·칼에 짓밟힌 ‘5월 악몽’ 되살아나”…광주시민들 충격·분노

    “비상계엄 발동 뉴스를 보는 순간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힌 ‘5월 광주’가 떠올랐습니다. ‘또다시 피를 흘려야만 하나’라는 생각에 온 몸이 떨려왔습니다.” 지난 3일 밤 45년 만에 비상계엄령 선포되고 총과 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지켜본 광주시민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되새기면서 충격과 공포로 밤을 지샜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 ‘5월 민주화운동’의 현장인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을 찾은 시민 김 모 씨(59)는 “광주는 5·18당시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계엄군에게 학살당한 아픔이 있는 도시”라면서 “그날의 충격과 공포가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민 박 모씨(62)씨는 “1980년 5월 고등학생 시절 도청에 장갑차가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다니며 군인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세대로서 그런 비극을 또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분노했다. 박 모 씨(55·여)는 “국회 앞에 헬기와 함께 장갑차까지 등장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너무도 두려워 TV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며 “서울에 있는 딸에게 연락해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게 어떻게 현실의 2024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며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모씨(32)는 “영화에서나 봤던 일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충격을 받았다”며 “당장 주식시장이 붕괴되는 등 경제를 비롯한 모든 일상이 단번에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개탄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계엄선포 뉴스를 보자마자 1980년 생각이 나면서 ‘또 다시 피를 봐야 하나’ 싶었다”면서 “계엄령이 해제돼 다행이긴 하지만 광주 시민은 반드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5·18을 경험하지 못한 최 모씨(31)는 “지금은 유튜브나 SNS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데, 언론이 통제된 5·18 당시에는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안 된다”며 “총칼을 든 계엄군과 학살의 공포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용기를 내 준 광주시민이 존경스럽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27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4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시국 대회에 참석한 강기정 광주시장은 “계엄의 밤은 가고 심판의 시간이 돌아왔다. 5월의 아픔을 기억하고 배운 우리는 이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퇴진하는 그날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한편, 1980년 5월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진입한 광주에서는 166명이 사망하고 76명이 행방불명됐다. 당시 부상으로 사망한 이도 113명에 이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