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사건사고 결산/잇단 대형사고… 인재라 더 충격
◎열차전복·폐리침몰 등 사회기강해이 탓/한·약분쟁은 “국민 볼모로 업권 싸움” 비난/입시부정·슬롯머신수뢰 등 사회병리현상 노출
문민정부가 출범한 93년은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한해였다.
지난 시대의 그늘을 제거하기위한 개혁의 돌풍속에서도 구시대의 산물이었던 뿌리깊은 무사안일 풍조때문에 각종 사건과 사고가 꼬리를 무는 이중적인 사회현상이 표출되기도 했다.
○우암아파트 붕괴
경찰과 검찰의 「합작비리」였던 슬롯머신사건,부패한 군 내부의 치부가 드러났던 율곡사업비리,지도층 인사들의 부도덕을 여실히 보여준 재산공개 은폐 및 누락,상아탑의 자존심과 대학인의 긍지에 먹칠을 한 대학입시부정사건 등은 우리 사회의 자정과 개혁을 더욱 가속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입증했다.
또 청주시 우암아파트 붕괴사고에 이어 부산 구포열차전복사고 ,아시아나항공기추락,위도 서해훼리호침몰사고 등 땅·하늘·바다에서 대형사고가 잇따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적당주의와 인명경시의 비뚤어진 의식,안전에 대한 무감각,관리·감독의 허술등에서 빚어진 인재의 전형이 줄을 이은 것이다.
특히 한·약분쟁사건등에서는 타인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를 드러내 우리시대의 도덕적 지표를 다시 세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1월7일 사망자 28명,부상자 48명을 낸 충북 청주시 우암아파트붕괴사고는 70년 일어난 서울 와우아파트붕괴 이래 최대의 복합건물 붕괴사고로 기록됐다.
부실시공이 주원인으로 밝혀진 이 사고로 대형 건축물공사에는 단계별로 책임공무원을 둔다는 제도가 마련됐으나 사고 아파트의 준공검사 과정에서 관계공무원들의 독직 및 직무유기 등 관련부분을 아직 밝혀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78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3월28일의 구포열차 전복사고 역시 우리 사회의 원시성과 구조적인 무사안일의 병폐를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한국철도 1백년사상 최대의 인재로 기록됐다.
이 사고는 결국 노후화된 철도시설과 무분별한 지하터널 굴착공사,하도급비리,행정적당주의등이 문제점으로 떠올라 각종 관급공사에 일대 메스를 대게하는 촉발제가 됐다.
○3부처장관 경질
여기에다 4월19일 충남 논산군 논산읍 서울신경정신과의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소외계층에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20분만에 진화된 불에 입원한 정신질환자 41명 가운데 34명이 숨졌다.조사결과 병원측이 환자들의 난동을 우려,링거병줄등으로 손발을 묶고 현관문을 잠가 놓는 바람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밝혀져 정신질환자들의 격리수용등의 안전관리가 치료보다 우선하는 정신병동의 비윤리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형사고는 올상반기를 넘어서면서도 끊일 줄 몰랐다.
7월26일 하오 3시40분쯤 승객1백4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서울발 아시아나항공 733편이 전남 해남군 운거산에 추락,66명의 희생자를 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기는 악천후로 2차례나 착륙에 실패한뒤에도 무리하게 고도를 낮춘 상태에서 착륙을 강행하다 끝내 추락했다.
이어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던 10월10일 일요일 아침,전북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에서 승객과 선원 3백60여명을 태운 서해훼리호가 풍랑에 휩쓸려 침몰했다.
○국회의장 등 사퇴
2백92명의 희생자를 낸 이 사고는 탑승인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구조등 조사작업에 원시성을 보여준 것은 물론 과적,초과승선,국민 특히 서민들의 생명보호에 대한 허술과 해상예보의 부적확,정비불량등 우리 사회의 허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숨진 백운두선장(57)의 생존설에 대한 추측 기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여과없이 보여주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형사고속에서도 당시 여객기가 떨어진 마천의 주민들과 위도면 사람들은 각각 부상자의 구조와 인양에 나서 희생자를 줄이는 한편 자신의 일처럼 부상자들을 돌봐 슬픔속에서도 훈훈한 인간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와함께 문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야기된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시비는 김영삼대통령의 첫 조각과 재산공개,대학입시비리등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조각후 불과 10일만에 보사부장관을 포함,3부처 장관과 서울시장이 도덕성의 도마위에 올려졌다.
따라서 부동산투기가 문제가 된 박량실보사부장관,토지형질변경등의 불법을 저지른 김상철서울시장이,자녀의 특례입학문제로 박희태법무장관이,재직시 비위문제로 허재영건설부장관이 각각 여론의 질책으로 경질되기에 이르렀다.
또 헌정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공직자재산공개는 「공직자청렴운동」이란 점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을 모은 만큼 파장역시 심했다.
두차례에 걸쳐 모두 1천1백67명의 1급이상 공무원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공직자들의 도덕성과 정직성이 심판대에 올랐다.
그 결과 공직자 1인 평균 재산이 14억여원에 이르렀고 당시 박준규국회의장,김덕주대법원장이 재산 축적과정에 대한 충분한 해명 없이 사퇴하는등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2월부터 터져나온 대학입시부정은 광운대등 5개 대학이 관련되고 사회저명인사등 1백55명이 개입,이 가운데 59명이 구속돼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교육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특히 입시부정이 단순히 대학과 학부모간의 연계가 아니라 일선 고교교사와 전문 입시브로커들이 대학생을 고용,대리시험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점에서 큰 충격을 던졌다.
게다가 지난 5월 전국을 강타한 슬롯머신 태풍은 일확천금의 꿈에 젖은 사람들과 업소들과 유착된 권력층,조직폭력배등으로 뭉뚱그려진 우리 사회의 부정을 그대로 나타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허가된 복마전으로 일컬어진 이 사건은 탈세등 불법을 자행한 정덕진씨와 정씨의 정·관계 배후세력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 「5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의원이 구속되는 사태로 번졌다.
또 이건개전대전고검장,천기호전치안감,엄삼탁전병무청장,이인섭전경찰청장등이 슬롯머신의 태풍에 휩쓸렸다.
○박철언의원 구속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3백여곳에 이르는 전국 슬롯머신업소를 95년까지 폐쇄키로 하는 한편 검찰은 환부를 도려내는 자정의 불을 댕기기도 했다.
한편 지난 3월15일 정부의 약사법시행규칙의 공포가 몰고온 한·약분쟁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이었다.
약국들의 한약조제권을 둘러싸고 번진 한의생들의 집단수업거부로 시작된 3천여명의 한의대생들의 유급사태,약국들의 2차례에 걸친 휴업등 한약분쟁은 정기국회말인 지난주 약사법개정안 통과로 어느정도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또 연말 제네바에서 불어온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의 돌풍은 쌀시장개방 절대반대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케 해 각종시위와 집회등을 전국적으로 촉발시켰다.이밖에 지난 4월 정오 서울 도심을 뒤흔든 육군 임채성일병(20)의 무장탈영 총기난동,6월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내 네거리에서의 시위학생들에 의한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김춘도순경(27)의 폭행치사사건,연천 예비군훈련장 폭발사고등도 올해를 특징짓는 사건들로 꼽힌다.
새정부 원년의 국민들은 그러나 입시부정의 근원을 발본색원하려는 의지와 슬롯머신업계비리의 단죄,민생 침해사범의 대대적인 소탕작업등에서 지난날의 어두웠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보다 앞으로의 희망에대한 기대를 새롭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