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卞盛福 技聖(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8)
◎컴퓨터보다 정확한 ‘鐵의 약제사’/다양한 종류의 철강성분 눈으로 파악 척척 제련 철강재 품질 결정적 좌우/슬래그코팅 등 특허 5개 끊임없는 연구개발 귀감 원가경쟁 美日 추월 주도
흔히 강(鋼)은 카멜레온같은 금속으로 불린다.가열온도와 함유된 성분에 따라 그 얼굴이 천태만상이어서 붙여진 별명이다.순수한 철에 탄소의 함량을 달리해서 넣거나 망간,니켈,규소,텅스텐 등 합금철을 적당하게 혼합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강이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그래서 제철소에서는 이런 임무를 맡은 사람을 ‘철의 약제사’라고 일컫는다.약을 만들듯 철의 성분을 조절,필요한 강을 만드는 데서 생긴 말이다.제강부(製鋼部)의 숙련 기술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제강부는 용광로로 잘 알려진 고로(高爐)에서 철광석과 코크스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쇳물(熔銑)을 전로(轉爐)에 넣어 불순물을 제거한 뒤 수요가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강을 만드는 일을 하는 부서다.
포항제철 제2제강 공장 卞盛福 技聖(57).30여년의 제강공장 일로 그는 철의 약제사를뛰어 넘어 제강에 관한 한 ‘도사’가 됐다.포항제철소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그의 민감하고 노련한 손끝과 눈을 거쳐서 생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상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전로에서 강으로 만드는 시간은 32분이지만 산소를 불어넣어 불순물을 태우는 취련(吹鍊)시간이 16분 정도여서 나머지 시간에 각종 성분의 함량조절을 마쳐야 합니다.철강제품의 품질이 바로 여기서 좌우되기 때문에 그만큼 고도의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卞기성은 16분 동안에 탄소량,온도,산소량,합금철 함량 등 28가지 요소를 감안,컴퓨터보다 정확하게 계산해서 수요가들의 구미에 맞는 강제품을 생산한다.요즘은 컴퓨터가 모든 일처리를 하지만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전부 계산자를 이용,직접 계산해 냈다.
○16분동안 28개 요소 파악
요즘도 최종적인 점검은 컴퓨터보다는 기성들의 감각에 의존한다.어떤 의미에서 컴퓨터보다 더 정확하다는 얘기다.기성이란 2만명의 포철 직원중 단 16명밖에 선발되지 않은 사람들이니 이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卞기성은72년 포철 입사 이후 지금까지 35년 이상을 강을 만드는 일에만 쏟았다.그의 기술력은 포철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독보적일 만큼 탄탄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국내에서 몇 안되는 제강 1급 자격증이나 포철의 경쟁회사인 일본강관이 발급하는 일본제강기능증 등 다수의 자격증과 5건의 특허가 이를 입증한다.전로(轉爐)배(排)가스 후드 폭발장치,고속취련(吹鍊)기술,신(新)슬라그 코팅기술,슬라그 체크볼(slag check ball) 투입기 개발 기술등은 포철의 생산성 향상과 품질향상에 밑거름이 된 기술들이다.
전로 배가스 후드 폭발장치는 개발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그만큼 애착이 간다.전로에서 불순물을 태울 때 생산되는 일산화탄소 따위의 폐가스는 산소와 결합하면 폭발할 위험이 대단히 높다.폭발 위험을 줄여 연속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다.卞기성은 “폐가스에 질소를 투입해서 폭발 위험성을 제거하는 게 핵심”이라고 특허 내용을 설명했다.이 특허를 받은 것이 82년이었다.그 다음해에는 슬래그 체크볼 투입기를개발,또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꼭 10년 뒤 완전히 용해되지 않은 생석회 속의 칼슘을 산화마그네슘으로 용해시켜 전로 내화벽돌에 골고루 퍼지게 하는 ‘슬래그 코팅 기술’로 또 특허를 따냈다.전로의 수명 연장과 직결된 기술이자 생석회 재활용으로 원료비도 절감하는 기술로 꼽히고 있다.이 기술 덕택에 그는 연간 50만원 정도의 기술료를 지급받고 있다.
○1인당 부가가치 2억원
그 전에는 포철의 전로 노체(爐體) 수명이 3천회 정도에 불과했다.卞기성으로 포철은 기술 향상의 전환점을 맞았다.전로 노체 수명이 4천300∼4천500회로 일약 선진국 수준으로 뛰어 올랐다.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은 6천회 정도.卞기성은 “일본은 우리와 전로 활용방법이 다릅니다.일본은 전로 주입전에 탈탄(脫炭)작업을 미리하기 때문에 전로의 수명이 그만큼 길어지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못합니다.더욱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본만큼 자주 보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역으로 보수를 적게 하면서도 이 정도면 세계 최고라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卞기성의 자평이다.
이밖에 전로신속보수기술을 개발,내화벽돌 소모량을 대폭 줄였다.강 1t당 필요한 내화벽돌 비용은 1천193원인데 일본보다 9∼10원정도 낮다.
卞기성과 같은 기술자들의 숨은 노력은 여러가지 지표에서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설비가동률 113%,인당(人當) 부가가치 2억원,인당 조강(粗鋼)생산량 944t,제품 t당 생산시간 2.70 등은 포철의 경쟁력 지표들이다.卞기성 같은 숨은 기술자들의 노력은 포철의 원가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놨다.냉연강판의 경우 포철은 t당 479달러의 원가를 들이지만 일본은 550달러,미국은 511달러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 ‘아시아 비즈니스’는 최근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럽 및 북미의 다국적 기업과 아시아 주요 9개국 기업 249개사중 포철을 ‘위기 대처 능력’이 가장 뛰어난 기업이자 중공업 부문에서도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했다.
○“완전무결한 匠人 없다”
“저는 평소 완전무결한 장인(匠人)은 없다고 후배들에게 강조합니다.저자신도 항상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로 일을 합니다” 卞기성은 금요일인 8일 그는 새벽 3시 40분에 나와서 하오 5시에야 작업을 끝낼 만큼 지금도 열의는 대단하다.1년에 한차례는 일본의 강관업계를 방문,주제 발표도 하고 필요한 서적도 구입한다.
그는 요즘 전로예비처리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용선(쇳물)을 실어나르는 토피도카(어뢰차량)에서 탄소,유황 등 불순물을 처리하지만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이 기술만 완벽하게 개발되면 전로의 수명 연장은 물론 산소 등 부원료의 소비도 줄여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卞기성은 “이 기술만 정상궤도에 이르면 포철이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제강기술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포철이 휴렛 패커드,싱가포르 항공,소니 등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기업으로 평가받은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卞기성이 있기 때문이다.그의 앞에는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포철의 技聖제도/기능숙달 정진 풍토 겨냥 까다로운 심사절차 유명/대우 格上… 이사대우도 정년 연장 장학금 혜택
포철은 지난 75년 기성(技聖) 및 기성보(技聖補)제도를 도입,운영해 오고 있다.기술직 사원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기능숙달에 정진하는 기풍을 조성,그들의 기술수준 향상을 통해 포철의 품질수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서였다.독일의 마이스터제도와 일본의 숙로(宿老)를 본떴다.
지난 76년 12월 제1차 기성보 선발을 시작으로 95년 10월까지 기성보는 7차,기성은 4차에 걸쳐 선발됐다.기성 4명,기성보 12명 등 총 16명이 고로,코크스,제강,연주,열연,선재,냉연,전기강판 등 11개 분야에서 선발됐다.5명이 퇴직해서 현재 남아 있는 기성과 기성보는 11명.
기성은 45세 이상의 직원으로 근속기간이 16년이상이면서 기성보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선발될 수 있다.기성보는 40세 이상으로서 근속경력 10년을 채워야 한다.해당분야 최고 기능보유자로 공장의 핵심요원이며 기술개발 능력이 탁월해 생산성 향상에 구체적 공적이 있는 직원이라는 객관적 평가를 받아야만 된다.
선발과정은 까다롭다.부서장이 자격보유자를 추천하고 인사담당 부서가 4∼5명의 공적심사 위원회를 구성,업무실적 및 기본자료를 상세히 조사한 다음,상벌위원회와 인사위원회를 열어 최종 확정한다.기능수준이 최고에 달하면서도 가정생활에서도 모범이 되는,기능과 인격을 겸비한 기능인을 선발한다.
선발되면 대우가 달라진다.기성은 부장대우인 1급,기성보는 과장대우인 2급이 부여된다.기성 1명은 이사대우를 받는다.월급여 등이 간부급 대우로 상향조정된다.정년 연장과 자녀 장학금지급 등의 혜택도 따른다.정년이 일반직원은 56세지만 기성은 65세,기성보는 60세로 각각 연장된다.입사를 희망하는 자녀는 특별채용되며 모든 자녀에게 대학까지 장학금이 지급된다.
포철 관계자는 “기성과 기성보들은 새로운 조업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해 생산성 향상 및 작업조건의 개선,노후설비 개조,설비 국산화 제작을 통한 설비의 신예화,산 경험에 의한 지식 전파,작업표준 보완으로 작업원의 기능도 향상,제안 및 자주관리 활동 활성화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卞盛福 기성 약력
△61년 부산 해동고등학교 졸업
△65년동국제강 입사
△72년 포항제철 입사
△82년 전로 배(排)가스 후드 폭발장치 특허 취득.전로신속보수기술 개발
△83년 슬래그 체크볼 투입기 개발 특허 취득
△84년 기성보 선발됨
△92년 고속취련기술 개발
△93년 신(新)슬래그 코팅 기술 특허 취득
△93년 10월 기성 선발됨